[인왕산에서] '87년 체제', 극복이 아니라 완성이 문제다-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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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87년 체제', 극복이 아니라 완성이 문제다-윤효원

윤효원 69 04.03 10:07


'87년 체제', 극복이 아니라 완성이 문제다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7공화국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의힘도 개헌을 말한다. 현행 헌법이 6공화국 헌법이니, 개헌은 7공화국 헌법을 만들자는 말이 된다. 물론 개헌과 새로운 공화국을 만드는 것은 다른 말이다.


1공화국은 이승만 정권기(1948~1960)를 말하며, 2공화국은 4·19 혁명 이후 단명했던 민주당 정권기를 말한다. 3공화국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기(1962~1972), 4공화국은 박정희의 일인 장기독재를 허용한 유신체제(1972~1981)다. 5공화국은 12.12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기(1981~1988)다. 그리고 6공화국(1988~현재)을 만들어낸 현재의 헌법은 ‘헌법 제10호’다. 열 번째 헌법 개정의 결과 등장한 것이 ‘87년 체제’다.


6공화국은 2공화국과 같은 경로를 거쳐 출범했다. 민중들의 항쟁이 그것이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60년 체제’는 2공화국을 만들었고, 6월 항쟁으로 탄생한 ‘87년 체제’는 6공화국을 만들었다. 2공화국은 1960년 6월 개정된 헌법인 ‘헌법 제4호’를 기반으로 했다가 1년도 안 돼 군사반란으로 무너졌다. 하지만 6공화국은 1987년 10월 개정된 ‘헌법 제10호’를 바탕으로 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7공화국이 좋은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윤석열 일당이 주도한 12.3 내란이 성공했다면 쿠데타 세력은 무력으로 6공화국의 기반이 된 ‘87년 체제’를 갈아엎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개헌을 통해 7공화국을 수립했을 것이다.



3.1운동과 4·19혁명을 부정하는 세력


1987년 10월 29일 전부 개정돼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헌법 제10호, 즉 6공화국 헌법은 그 개정이 수구정당과 보수정당 사이에 이뤄진 물타기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민중의 항쟁으로 성취한 것이다. 보름달이 차면 기울 듯이 ‘87년 체제’로 상징되는 6공화국도 자신의 역사적 과업을 완료했다면 사라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6공화국 헌법으로 상징되는 ‘87년 체제’가 완료됐는가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밝히고 있는 헌법 전문이 대한민국에서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고 국가 체제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느냐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법통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구한다. 대한민국이 그때 건국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정권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나아가 헌법 전문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4·19 민주이념은 이승만 정권을 타도한 민중의 민주주의 혁명 정신이다. 4·19와 이승만은 대척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핵심 인사들까지 이승만이 ‘한국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데올로기를 신봉하고 있다.


12.3 내란은 3.1운동의 정신과 4·19혁명의 이념을 부정하던 세력이 일으킨 ‘87년 체제’에 대한 전복 시도였다. 이들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헌법을 기반으로 4공화국을 출범시켰던 군사퍄쇼 세력과 동일한 이념의 소유자들이다. 어찌 보면 12.3 내란세력은 유신세력보다 역사 인식에서 더 반동적인데, 4공화국 세력조차 부정하지 않았던 3.1운동의 정신과 4·19혁명의 이념을 12.3 내란세력은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근로의 권리’와 ‘노동의 권리’ 문제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와 관련해 보더라도 ‘87년 체제’의 과제는 미완에 머물고 있다. 6공화국헌법은 제32조1항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근로의 권리는 ‘일할 권리’(the right to work)와 ‘고용될 권리’(the right to employment)를 말한다.


그리고 제32조2항과 3항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지닌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문제에서 이런 헌법적 과제들은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가. 노동시장 이중구조하에서 ‘근로의 권리’를 누리고 근로조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으로 나뉜 지 오래다. 이러한 문제를 국가는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고 일부러 방치하고 있다. 법리의 해석과 적용에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 범위가 노동조합법보다 훨씬 좁고 엄격한 현실은 이러한 현실을 방증한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한 헌법 제33조 역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근로자(workers)’ 중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동시에 노동조합법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이들이 많다.



5·18 광주와 87년 체제 


‘87년 체제’의 등장은 5·18 광주항쟁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5공화국 세력이 민중의 민주화 압력에 부딪혀 ‘비상대권’을 이용한 계엄선포를 포기하고 6공화국으로의 평화적 이행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5·18이라는 정치적 충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5·18 정신이 6공화국 헌법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87년 체제’는 민중의 혁명적 진출에 의해 가능했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6공화국 헌법은 “혁명적 전환이 아니라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타협’에 의해 이뤄졌다”(《제5공화국》, 강원택, 2024). 민중의 진출은 구체제를 완전히 후퇴시키지 못했던 거다. 역으로 구체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민중의 진출을 일정 수준에서 법·제도적으로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6공화국 체제가 갖는 고유한 성격인 구체제와 민중 간 힘의 균형과 타협이 무너져야 7공화국은 등장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반(反)민주세력이 민중의 진출에 밀려 역사의 박물관으로 완전히 퇴장하거나, 반대로 신체제를 지항하는 민중의 진출이 구체제의 반격으로 완전히 좌절될 때 7공화국의 등장은 가능할 것이다. 12.3 내란은 후자의 시나리오를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 체제’의 극복과 ‘87년 체제’의 완성


‘87년 체제’와 6공화국이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민주화가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 시기 ‘K-POP’의 겉멋에 빠져 ‘문재인 보유국’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K-민주주의’를 수출해야 한다는 경박한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는 12.3 내란사태의 발발과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저강도 내전(low-intensity civil war)’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2022년 대선 당시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똑같다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가역적이라 누가 정권을 잡든 상관없다는 이들이 있었다. 포퓰리스트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느니 자유민주적 법치주의자인 윤석열이 되는 게 낫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윤석열 정권 치하 3년과 12.3 내란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바에 따르면, ‘K-민주주의’로 상징되는 ‘87년 체제’는 그 역진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반(反)민주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사이의 힘의 균형은 여전히 팽팽하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과 세력 간 타협이라는 대한민국 사회가 관통하고 있는 역사적 국면을 고려할 때, ‘87년 체제’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완성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판단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부정하는 체제는 역사적으로 ‘조선총독부 체제’와 연결돼 있다.


따라서 현 시기 우리가 극복할 체제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조선총독부 체제’다. ‘조선총독부 체제’는 12.3 내란세력이 꿈꿨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군국주의의 세계이기도 하다. 노동3권의 보편적 보장이라는 ‘87년 체제’의 역사적 과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4월호  *이 원고는 3월 20일 참여와혁신(https://www.laborplus.co.kr)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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