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 벨기에노총 “2022년 ‘주 4일제 법’은 살인 행위”-윤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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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 벨기에노총 “2022년 ‘주 4일제 법’은 살인 행위”-윤효원

윤효원 54 06.02 09:35


벨기에노총 “2022년 ‘주 4일제 법’은 살인 행위”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벨기에 우익-좌익 연립정부는 2022년 2월 국회에서 7개 정당 간 합의로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패키지’(Job Deal)의 일환으로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주 5일 분량의 소정근로시간(통상 주 38~40시간)을 4일 동안 몰아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노동자가 원할 경우 하루 최대 9.5~10시간까지 일하고 3일간의 주말을 갖도록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벨기에, 주 4일제 법 도입…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미명


2022년 11월 이 법이 발효됨으로써 벨기에는 아이슬란드와 뉴질랜드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주 4일제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벨기에 주 4일제법의 특징은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날을 줄이기 위해 하루의 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 것이다. 자유당 출신의 알렉상드르 드크로 수상은 “(이 법의) 목적은 개인과 회사에 자신의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사 모두 반발했다. 사용자는 “압축된 근로일”이 기업조직 운영에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노조는 노동자들의 근무강도가 강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노동계의 반발… “두 가지 패배”


벨기에 노동운동은 “두 가지 패배”라며 반발했다. 첫 번째 패배는 근로시간의 보편적 단축(collective reduction)과 재분배 원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을 포기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 패배는 하루 8시간의 역사적 성취를 내팽개쳤다는 점이다.


주 4일제에 대한 정당들의 합의가 이뤄지자 현지 언론인 ‘르 비프-렉스프레스’는 “주 4일 근무제라는 표현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이 조치가 암묵적인 노동 증가에서 추가 일자리 찾기 유인에 이르기까지 …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당 출신의 피에르-이브 드마뉴 당시 경제고용부 장관은 주 4일제를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최종 법안은 “근로시간 단축 없는 주 4일제”로 절충됐다.


벨기에 최대 노총인 FGTB의 티에리 보드송 위원장은 주 4일제 법안 발표 직후 “닷새 동안 할 일을 나흘에 몰아넣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한 노조의 등에 칼을 꽂은 살인행위(muderous stab)”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1971년 근로시간법’까지 변경해 하루 10시간 노동을 가능케 한 주 4일제가 진정한 근로시간 단축을 가로막으면서 노동강도 증가를 초래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노동운동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1년 근로시간법’은 사상 최초로 벨기에 전역에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표준근로시간 적용을 가능케 한 법이다.



‘압축근로시간제’라는 실체


2022년 11월 법이 시행되자 FGTB는 성명을 통해 주 4일제가 아니라 ‘압축근로시간제’(compressed workweek)로 불러야 한다고 일갈했다. FGTB는 노동계가 요구한 주 4일제는 “근로시간 단축과 신규고용 창출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FGTB는 “근로일이 줄었다고 해도 1일 근로시간을 늘리면 노동강도만 높아질 뿐”이라며 “장시간 노동은 업무량과 부담을 가중시키고 워라밸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대기업 전문직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게” 주말이 길어지는 것을 환영한다며 제도를 반긴 노동자들도 있었지만, 노동계는 ‘압축 근무제’가 실질적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므로 노동권 진전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부만 누리는 혜택, 노동시장 양극화 심화


2024년 기준으로 벨기에에서 주 4일제를 선택한 상용직 전일제 노동자는 전체의 0.7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결국 주 4일제 제도가 지불능력이 있는 노동시장 상층을 위한 제도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노동자들은 주 4일제로 하루 근무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 저하, 산업재해 위험, 생산성 감소 등이 우려되고 오히려 일·가정 양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근로시간을 압축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법적으로 주 4일제로 전환하면 전체적인 일정 조정 유연성이 줄어든다” 등 장시간 압축근무에 대한 현장의 회의적 시각도 보고됐다. 이런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노조들은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FGTB “보편적 근로시간 단축이 진정한 해법”


올해로 시행 4년 차가 됐지만, FGTB는 “우리가 우려한 대로 주 4일제는 일부만 혜택을 볼 뿐 대다수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근본적으로는 노동자 모두에게 고루(collectively) 적용되는 방향으로 주당 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 이글은 매일노동뉴스 5월 19일자에 실린 글을 재정리한 것입니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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