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박태주)

e노동사회

[연중기획: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박태주)

윤효원 621 04.11 12:07

 

[연중기획: 정의로운 전환]

기후위기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박태주(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동조합운동 입장에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은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으로, 나아가 생태 전환을 하는 것이다. 둘째,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자리를 보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노동자들 처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탄소중립과 일자리의 유지 또는 창출이 어쩌면 모순되기도 한다는 것이 현재 노동과 기후의 만남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 요소의 하나다. ‘일자리와 환경 사이의 딜레마’다. 셋째,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완화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정의와 사회정의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의로운 전환은 노동자에게 ‘권리’와 ‘의무’가 섞여 있는 개념이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권리만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에게 이것을 수용하라고 하는 의무만 얘기해서도 안 된다.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의무가 수반되지 않는 권리만 내세우게 되면 자칫 이기주의적인 성격으로 변질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전환의 목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주장해야 할 권리가 있는 동시에, 노동조합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다. 일자리 보장이 노동자의 주요한 권리라면 탄소중립이나 불평등의 완화와 같은 사회정의와 기후정의(탄소중립)를 실현하는 건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정의로운 전환을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의 권리와 의무 함께 생각해야 

 

정의로운 전환은 고정된 어떤 개념이 아니라 앞서 말한 기후 위기 대응과 일자리, 그리고 불평등의 해소를 원칙으로 삼아 만들어가는 개념이다. 또한 사회경제적 맥락에 따라 노동조합이 주체적으로 해석해 실천해가는 개념이다. ‘정의로운 전환 전략의 다양성’인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중요한 문제는 노동자들이 탄소중립 실현의 주체로 나설 수 있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그리고 오래된 전제라고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환은 책상 위에서 이론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형성된 개념이다. 그래서 탄소중립, 기후 위기 해결로 가는 길에 노동자들이 직접 주체로 나선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고 또 기본적인 전제가 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이 기후 위기 해결에 과연 진심일까?’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률이나 조직형태, 단체교섭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노동조합운동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노조 조직률은 2021년 14.2% 수준이다. 그리고 민주노총 노동조합의 90%, 한국노총 노동조합의 45%가 초기업노조로 이행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단체교섭 구조는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실리주의, 그것도 ‘파편화된 실리적 조합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양대 노총이 모두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은 사회적 의제를 내면화하지는 못한 실정이다.

누구도 기후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후 위기의 영향은 산업마다, 기업마다 다를 수 있고, 또 노동조합의 대응도 다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운동은 기후 위기를 넓은 의미의 사회적 의제로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닌 한 강 건너 불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후운동은 일자리의 중요성 인정해야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안정적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 아니면 노동자 가족이다. 이 사람들이 일해서 나오는 소득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기후운동도 결국은 노동자 대중에 의해서 전진할 수밖에 없다. 기후운동도 아래로부터 쌓아가는 운동이라면 그 핵심은 노동자다. 노동자와 함께하려면 노동자들에게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후 위기를 해결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희생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두 가지를 함께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내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만이 일자리 보장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소망하는 것이 노동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녹색 전환의 과정에서 소멸하는 일자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가령 석탄화력발전소가 폐지될 때 연료를 다루고 환경설비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그리고 상당 부분의 경상정비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없어진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 전환된다면 엔진 변속기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일자리, 내연기관차 부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일자리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공장 안에서 전환 배치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공장 바깥에서 일자리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의 기업, 내가 하는 일’을 넘어서려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고용 문제는 산업 간 재배치, 지역 간 재배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하고, 그런 관점에서 사업장 바깥에서 녹색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동조합이 기업의 대응뿐 아니라 정부의 산업 전환 정책과 노동 전환 정책에 개입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일자리가 얼마나 만들어지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일자리가 지속 가능한 일자리인가, 일자리가 사라지는 시기와 창출되는 시기가 일치할 수 있는가, 한편으로는 현재의 일자리가 보장하는 임금과 근로조건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없어지는 일자리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 사이에는 시간의 불일치나 근로조건의 불일치와 함께 장소의 불일치나 숙련의 불일치도 있다. 다시 말해 일자리 문제의 해결 방안이 지금의 기업 내에서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건 불평등의 문제다.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취약한 노동자들이 많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렇다. 정규직보다 이들은 먼저 희생되고 더 많은 고통을 겪을 위험성이 훨씬 크다. 그럴 위험이 크기 때문에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규직 중심의 일자리 보장, 정규직 중심의 일자리 전환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작 힘없는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자기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조차도 없는, 그래서 소리 없이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불평등의 문제가 취약노동자에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민이나 취약계층들도 기후 위기의 영향을 더 받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한 대응 능력도 떨어진다.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고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사업장 바깥의 일자리와 새롭게 만들어질 일자리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for all)’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정의로운 전환이다. 

 

노동자들이 탄소중립 거버넌스에 참여해야

 

정의로운 전환이 일자리를 지키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길로 가려면 노동자들이 전환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이것은 정의로운 전환 가운데서도 ‘절차적인 정의’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탄소중립 거버넌스에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가 돼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국제적인 차원의 사회적 대화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노동자, 그리고 사용자 대표가 참가한다. ILO가 말하는 사회적 대화는 우리가 쓰는 사회적 대화의 개념과는 좀 다르다. 거기에는 정책협의뿐 아니라 단체교섭도 포함되고, 노사협의도 포함되고, 정보교환도 포함된다. 그런데 노동조합이 기후정책과 이와 연관된 산업 전환 정책, 노동 전환 정책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당장 닥치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것이다. 지난 7월 11일, 한국노총의 전력연맹이 ‘탄소중립 기본계획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자를 배제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위원회(이하, 탄소중립위원회)>는 구성 자체가 위법이고, 따라서 거기서 결정된 ‘탄소중립 기본계획’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8월 29일) 한국노총의 공공노련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호소했다. 정부가 탄소중립위원회를 재구성하면서 노동자를 배제하지 않도록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해달라는 것이었다. 현 정부 들어 각종 정책협의 기구에서 노동계를 배제하는 것이 부처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진행되고 있다. 탄소중립 기본계획 논의에서도 노동계는 배제됐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절차에서부터 정의가 위협받고 있다. 

한국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원칙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탄소중립위원회에도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물론 탄소중립위원회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민주노총으로서도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모색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

 

기후 위기 대응에서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노동과 기후 모두 제 역할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면 두 진영의 만남은 절실하다다. 하지만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일자리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노동조합의 입장과, 환경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환경단체의 입장이 충돌하고 접점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노동조합은 환경과 고용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고들 합니다. 환경단체는 노동조합에 대해, 일자리 문제에만 관심을 두지 탄소중립이나 기후 위기 해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일자리를 지키느라 노동조합운동은 성장주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심하게 말하면 노동조합을 기후 위기 악화를 조장하는 ‘반환경적인 단체’로 보기도 한다. 

 

반면 노동운동 입장에서는 환경단체가 노동자의 일자리에는 관심도 없고 환경만 이야기하는, 그래서 대중과 유리된 추상적인 가치만 주장하는 집단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래서는 함께 할 접점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서 중요한 쟁점은 노동조합이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서 ‘주체(climate actor)’가 될 수 있는가 하는가다. 또한 일자리의 개념을 좀 더 확장해서 ‘모두를 위한 일자리 개념’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후 위기 대응이 불평등을 강화한다면, 기후 위기 해결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그것이 정의롭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노동운동과 기후운동 사이의 이른바 연대를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 쟁점이다. 

 

노동운동의 스펙트럼보다 기후운동의 스펙트럼이 훨씬 더 넓다. 주류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탄소중립에 접근하는 그룹이 있는가 하면,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를 이야기하는 그룹도 있고,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이야기하는 그룹도 있다. 그린 뉴딜도 여러 가지 버전입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들이 기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약간 왼쪽으로 가면 ‘탈성장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탈성장론 안에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탈성장론이 없지는 않지만, 탈성장론의 주류는 자본주의 체제의 성장은 기후 위기 극복과 양립하기 어렵다고 보고,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 또는 전복을 얘기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을 위해서는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생태환경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태사회주의’도 있다. 이 밖에도 ‘탈성장 코뮤니즘’이 있고, 더 나가면 ‘레닌식의 공산주의’를 통해서 기후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이론의 폭이 굉장히 넓다.

 

현 단계 탈석탄 과정, 정의로운 전환으로 가고 있나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적이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정규직 노동조합의 처지에서는 ‘살아남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최근까지 10여기의 석탄화력 발전소가 폐쇄됐다. 그곳에서 일하던 740명 정규직 노동자는 전환 배치를 통해서 다 일자리를 유지했다. 협력사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848명이 기존 일자리를 떠나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10%에 해당하는 8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년 퇴직자는 제외한 숫자다. 

 

당시 발전공기업의 노동조합에 했던 이야기는 여러분들의 일자리만 보장되는 것은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석탄화력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폐쇄되기 시작하면 정규직의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보장도 없다. 함께 사는 방안을 모색해야 정규직 노동자도 살 수 있다. 그것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현 단계 기후 위기 대응 과정에서 핵심은 ‘에너지 전환’이고, 그 중심은 석탄화력  발전소의 폐쇄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에너지 전환 정책이 어떻게 구성되고 실현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정부의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전환 정책에 개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가 바탕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력노조연맹이 얼마 전에 만들어졌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리고 이 노조들이 탄소중립위원회에 참가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제시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정책에 노동조합이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하지만 자회사나 하청업체 노동조합들은 연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전력연맹에 소속된 발전공기업 노조들에 했던 얘기는, 지금은 탈석탄 초기니까 회사가 노동자들의 전환 배치를 해줄 여유가 있을 거다, 앞으로 석탄화력 발전소의 폐지가 더욱 본격화됐을 때, 더구나 그 시기가 더 앞당겨지려고 하는데, 발전공기업의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전환 배치를 통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특히 자회사와 협력사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다. 이러한 과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하면 결국은 석탄화력 발전소 폐지 과정에서 모두가 따로따로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현대자동차에 가봤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 5월, 금속노조의 ‘완성차-부품사 공동수련회’ 때 발표했던 자료의 핵심 내용은 ‘무분별한 자동화에 대한 대응 전략 확보’였다. 조합원 감소에 대한 신규 충원과 정년 연장, 감소하는 일자리에 대한 대안으로 엔진 변속기에 대한 대체 일자리 확보,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른 국내 배터리 공장 증설, 전동화-자동화에 따른 전환 교육과 맨아워 대응 전략 확보 등이 노동조합이 생각하는 전환의 개념이다. 

 

지금 자동차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야기되고 있다. 자동차의 패러다임 전환을 노동조합은 ‘전기차 전환’으로 받아들였고 ‘무분별한 자동화’로 이해했다. 한때는 전기차 전환이 엄청난 고용불안을 갖고 올 거라는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전기차 전환을 하는 걸 보니까, 우선은 자연 퇴직이 원래 많았고 부분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내부의 전환 배치를 통해 이 문제를 무탈하게 해결했다. 정년 인원을 통해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그만큼 청년 신규 채용을 줄였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청년들은 ‘의문의 1패’를 당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자동차산업 전환, 완성차 정규직만 봐서는 안 된다

 

자동차의 탄소중립은 그냥 엔진이나 변속기 대신 전기차 배터리만 얹어서 전기차가 나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각종 소프트웨어가 결합이 되고. 자율주행기술이 더해지면서 미래차로 가는 것이 자동차 패러다임의 변화다. 더 중요한 건 현대차가 2045년에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기아는 현대차보다 5년을 당겨 2040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을 실현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RE100이란 자동차 생산공정이나 회사의 운영에서 재생에너지만 쓰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그것을 넘어 공급망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으로 현대차는 생산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소재와 부품만 쓰겠다는 것이다. 배터리, 철강, 각종 부품에 이르기까지 현대차가 직접 만들지 않는 부품과 소재라 하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생에너지에 ‘원전(원자력발전)’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 단계 나아가 자동차 운행 과정이나 폐기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자동차의 ‘생산-운행-폐기’의 전 주기 동안 탄소가 배출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탄소중립이다. 전기차 전환은 그 일부이자 시작일 뿐이다. 

 

 노동조합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노동조합엘 갔더니 그저 전기차 얘기 말고는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에는 비정규직이 7천여 명이 있다. 촉탁직으로 불리는 기간제 노동자들이다. 그중에 1,500명은 ‘시니어 촉탁직’이라고 해서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1년 동안 일을 더 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주니어 촉탁직’인데 이 사람들이 전형적인 기간제 노동자다. 당연히 조합원이 아니다. 이런 노동자들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일차적인 희생자로, 정규직 고용의 안전판으로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외부의 부품업체들은 자동차 생태계가 거의 붕괴하고 있다고 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기사인데, BMW랑 볼보가 부품을 구매하러 한국에 왔다. 부품회사에서 구매 계약을 맺으면서 ‘이 부품을 5년간 납품해주세요’라고 했고, 부품사는 ‘오케이’ 했다. 그랬더니 BMW랑 볼보가 뭐라 그랬냐면 ‘탄소중립계획도 같이 제출해 주세요’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그런 게 없습니다’라고 했더니, ‘그러면 우리는 구매 못 합니다’라는 거다. 

 

현대차도 조만간 탄소중립 부품만 구매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품회사들은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정부는 부품회사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산업정책이 없다. 자동차 산업정책은 완성차 정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품회사들의 미래는 각자도생에 맡겨져 있다. 현대차로선 탄소중립 부품을 구매하지 못하면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으로, 즉 해외에서 구매하면 된다.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완성차 공장을 재생에너지가 있는 해외로 빼면 된다. 지금도 해외공장의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는 걸 보면 벌써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앞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하면 수출도 할 수 없다. 수출규제는 심해지지만 국내에서는 조달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조차 제대로 없다. 현대차는 답답할 게 없다. 글로벌 소싱이 가능하고, 나중에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돌리면 된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부품업체이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다. 이대로 가면 전환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조차 없어 소리 소문 없이 짐을 싸 집으로 향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부품회사를 먹여 살립니까? 정부가 나서야지’라는 게, 현대차의 답변이다.

 

회사 측 관계자에게 ‘노동조합하고 왜 이런 얘기는 안 합니까?’라고 물어봤더니,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고용보장 해주면 되지 그 이상 해줄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조합에 갔더니 노동조합은 뭐라 그러냐면, ‘우리는 집행부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는데 2년 동안에 어떻게 이런 엄청난 정책을 만듭니까?’라고 한다. 현대자동차지부는 금속노조 소속이고 같은 금속노조 소속인 비정규직들이 같은 사업장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금속노조에 갔다. ‘요새 기후 위기 때문에 고민이 많겠습니다’라고 첫 마디를 꺼냈다. ‘골치가 아픕니다’라고 한다. ‘왜 골치가 아픕니까?’ 하니, ‘산하 조직에 원자로를 만드는 사업장이 있습니다. 우리 입장은 탈핵입니다. 우리 산하 조직 중에서는 원전을 만드는 사업이 있어서 조직 방침을 얘기했는데 당연히 거기서는 반발합니다. 그래서 징계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그쪽에서 더 강하게 반발하고, 심지어는 내부에서 금속노조 탈퇴하지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그랬더니, ‘사회적 합의를 해야죠’라고 한다. ‘이 문제는 본조와 지회 사이에서 풀 문제도 아니고, 회사 차원에서 노사가 풀 문제도 아닙니다. 결국은 정부가 원전 정책, 에너지 정책, 또 거기에 따른 산업정책과 노동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사회적 합의라는 것은 사회적 대화의 산물인데 사회적 대화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물었다. 명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현재로서는 뾰족한 답이 없다. 금속노조로서도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다. 

 

석탄화력  발전소나 자동차산업은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다 보니 노동조합도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편이다. 그럼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사업장들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관심이 없다. 고용 말고는 대단한 관심이 없고. 더구나 각자 자신들 사업장 바깥에는 더 관심이 없다. 여전히 기업 차원의 실리주의에 갇혀있다.

 

공동 의제로서 그린 뉴딜과 녹색 일자리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법이 제대로 된 전환을 가능하게 할까? 앞서 얘기했듯이 우선 기후환경단체는 노동조합을 향해서 일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자리를 만들 방안을 같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신 노동조합도 일자리를 넘어 탄소중립이라는, 우리가 당면한 실존적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과 기후가 만날 수 있다. 

 

전략적 측면에서는 ‘그린 뉴딜’이 어느 정도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그린 뉴딜은 기본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서 생태계를 복원하고 경제와 사회의 탈탄소화를 지향한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의 효율을 높이는 한편,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다. 녹색투자를 대폭 늘려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녹색투자 대상이 재생에너지다.

 

녹색투자에는 보건의료와 주거의 그린 리모델링, 대중교통과 수송부문의 탈탄소, 귀농·귀촌·돌봄의 사회적 투자를 강화하는 일들이 포함된다. ‘회색투자’를 줄이고 녹색투자를 늘려 ‘녹색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서 노동과 환경이 만나고 각자 대안들의 접점이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런데 그린 뉴딜이 안고 있는 제일 큰 문제는 뭐냐면, 그린 뉴딜을 통해서 녹색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린 뉴딜로 탄소배출제로, 더 나아가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탈성장론’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다면, 확실하게 탄소중립에 도달할 방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탈성장이 과연 현실적인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겠는가. 어떤 정치인이 ‘성장에서 탈피하자’라고 주장하면서 선거에 나올 수 있겠느냐. 노동자들은 당장 ‘우리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고 묻는다. 나아가서 탈성장과 자본주의 체제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이 한 나라 수준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 문제는 더욱 간단하지 않다. 한 나라만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탈성장을 주장했다간 그 나라 경제만 내려앉는다. 


 

 

그린 뉴딜과 탈성장의 접합 가능성

 

최근에 얘기되는 해법은 그린 뉴딜과 탈성장을 결합하려는 움직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단은  그린 뉴딜로 출발하되, 그린 뉴딜 속에서 탈성장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점차 탈성장으로 이행해가는, 이른바 ‘통합적 수렴’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당장 실현 가능한 정책에서 시작하되, 중장기적으로는 탈성장까지도 염두에 두는 프로그램으로 가는 거다. 그린 뉴딜과 탈성장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연대를 한다고 완전히 같은 집단이 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공통된 가치와 목표를 바탕으로 힘을 합치는 것이 연대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에 기초한 단체이고, 시민단체와 환경단체는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다.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위계’적인 조직인데, 환경시민단체는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조직체계를 갖고 있다. 재정적 기반도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는 ‘구(舊)사회운동’이라고 하고 하나는 ‘신(新)사회운동’이라 부른다.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면, 공통된 지점에서부터 만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생에너지 확충’을 반대하는 노동자는 없고 기후환경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걸 같이 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부문을 공공주도로 가자, 에너지 민주주의를 구축하자, 사회 돌봄을 강화하자, 공공성을 확대하자,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그린 뉴딜과 탈성장은 아무런 충돌이 없다. 이런 부분들은 노동조합이나 기후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특히 ‘녹색 일자리’라는 개념은 노동조합과 기후환경단체를 이어주는 접착제가 될 수 있다. 이때 탈성장은 ‘성장 없는 그린 뉴딜’(Green New Deal without Growth)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린 뉴딜은 탈성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전략이자 가교(bridge)전략이 된다.

 

얼마 전에 칼럼에서 “기후단체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주장하면서 노동자를 배제한다면 결국 아래로부터의 기후투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고, 노동조합을 배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후운동이 노동조합으로부터 배제당하고 대중으로부터 배제당한다, 그리하여 기후운동은 소수파 운동이 되고 자기만족적 엘리트 운동이 되고 있다”’고 썼다. 

 

이 글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그린 뉴딜과 탈성장이 서로 만날 수 있고, 그렇게 만나는 지점을 우리가 만들어 같이하자는 거다. 함께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할 수 있는 ‘공생적 변혁’의 길이 있다

 

그린 뉴딜과 탈성장의 계기적 통합을 통해서 공동의 가치 기반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 기반이 될 수 있다면, ‘기후정치운동’이 발전할 수 있다. 기후정치를 이야기해야 체제 전환도 비로소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기후정치로 가야 노동자가 참여하는 ‘탄소중립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나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는 일, 나아가 체제의 전환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

 

지금 탈성장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울린 라이트(Erik Olin Wright)가 제안했던, 자본주의 내에서 체제 내 비판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그래서 사회주의에 이르는 ‘공생적 변혁(symbiotic transformation)’에 공감힌다. 그런 입장이라면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이야기하는 ‘단절적 변혁’과 진화론적이고 점진적인 ‘틈새적 변혁’ 모두를 극복하거나 아우르는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이트 교수의 말마따나 사회권력이 경제권력을 지배하는 것을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기후연대에 바탕을 둔 기후정치의 실현은 결국 사회권력을 강화하는 디딤돌이 되고 나아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징검돌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히 내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저탄소 경제로 이행과 불평등의 완화를 포함하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념이고 가치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기후와 노동의 연대를 제안했다. 그린 뉴딜에서 출발하여 ‘성장 없는 그린 뉴딜’로 이행하는 일, 그리고 공생적 전략을 수용하는 일도 이야기했다. 기후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통해 변혁의 주체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탄소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비전을 함께 꿈꿀 수 있을 것이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