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최근 노동조합의 불모지였던 게임업계에 생긴 넥슨노조와 스마일게이트노조의 설립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두 노조 지회장님에게 보낸 질문지의 답변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
안녕하세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의 지회장 배수찬입니다. 넥슨은 만들어진지 24년째로 현존하는 대형 게임회사 중 가장 역사가 오래 되었습니다. 1994년에 설립되어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10대가 어른이 될 때까지 즐거움을 주는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업장 전체 노동자는 4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사업장에서의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비중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3~40% 정도는 여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의 대부분(99% 이상)이 정규직이지만 사람을 쉽게 자르는 문화가 있어서 고용안정이 보장된 형태가 아닙니다.
최근 게임업계의 ‘크런치 모드’1)가 이슈화 되었지만 사업장에서 제도가 바뀌었다거나 별도의 지침이 내려오는 등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2018년 7월, 주52시간 근무제로 법이 바뀌고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온 변화가 큽니다. 아직 법을 안 지키는 곳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지할 수 있는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회사에서는 노동시간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 노동시간을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최대 노동시간에 대해 법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알게 되었고, 소수는 숨기고 일하기도 하지만, 모두 주 52시간 초과노동에 대해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래 일이 많지 않던 사람들은 유연근무제 도입으로 노동시간이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평균 노동시간이 감소했지만, 이는 실제 업무량 감소로 인한 시간단축이 아니라 불필요하게 회사에 남아 있던 시간이 줄어들어 생긴 것입니다.
넥슨지회는 2018년 9월 3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원래부터 회사에 바꾸고 싶은 부분들이 많긴 했지만, 그걸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하여 노사협의회에 근로자위원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사협의회를 진행하다보니, 자잘한 건 고칠 수 있어도 회사가 정한 선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근로자위원 3명이 모인 것만으로는 말이죠. 그게 한계를 넘기 위해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넥슨이 아니라 다른 게임회사였다면 거기서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노동조합은 결국 회사를 더 건강하게 바꾸자는 방향성이 있는 거고, 그건 달리 말하자면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죠. 저는 우리 회사를 좋아하고, 가능하면 ‘넥슨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을 설립을 준비하면서 게임업계의 노동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상급단체는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차선책으로 노조의 불모지인 IT업계의 젊은 청년들과 대화해본 경험이 있는 화섬식품노조가 우리와 가장 잘 통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넥슨지회에는 전체 노동자 약 4천 명 중 1천 명 정도가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조합 가입대상은 넥슨코리아 법인과 넥슨네트웍스, 네오플, 넥슨 지티, 넥슨레드, 엔미디어플랫폼 등 넥슨그룹의 자회사 및 계열사들까지 함께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넥슨지회는 ‘스타팅 포인트’란 별칭을 사용합니다. 스타팅 포인트는 게임용어로 게임이 시작되는 곳을 말합니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든 것을 기리고 노동자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에 적당한 별칭이라 생각했습니다.
게임업계에는 개인주의자와 괴짜들이 많아서 뭉치기 어렵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 노동조합을 만든 주력 멤버들은 괴짜들 중의 괴짜입니다. 불확실한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고, 회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운영진들도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재미있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다른 게임회사들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면 노조를 만드는 방법과 필요한 지식들은 상급단체에서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곧 다른 곳에서도 노동조합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사용자 측에서 많이 당황합니다. 게임업계에서는 가장 좋은 회사인데, 좀 억울하다는 말도 하고요. 일단 게임업계에서 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사측과 노측 둘 모두에게 어색한 단어입니다. 노동조합은 더욱 그러하죠.
현재 단체교섭을 위한 상견례를 마친 상태입니다. 곧 교섭안이 제출될 것이고, 약간의 시간을 가진 후 본 교섭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스타팅 포인트의 교섭 5대 목표는, △포괄임금제를 폐지 △고용불안 해소 △정보의 비대칭 해소 △상향평가제 도입 △성과 재분배 등입니다.
현재 단체교섭을 위해 준비 중이고, 아직 파업의 경험은 없지만 파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화섬식품노조에 함께 있는 네이버와 스마일게이트, SK하이닉스 지회들이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대에 있어서 구체적인 계획은 없으나 가끔씩 일손이 필요할 때 서로 돕고 있습니다.
조직역량 강화를 위해서 ‘좋은 텃밭에 튼튼한 싹이 자란다’는 생각으로 게임업계의 전반적인 노동자 의식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게임업계에는 자신의 시급을 아는 사람조차도 극히 드뭅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노동조합의 정당한 목소리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지회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지회(이하, SG길드) 지회장 차상준입니다. 스마일게이트는 2002년도에 창업한 게임 개발을 중심으로 한 게임 퍼블리싱, 게임 대회, 게임 플랫폼 등의 게임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 투자나 사회공헌활동도 같이 하는 국내 5위권에 드는 게임 회사입니다. 국내에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회사이지만 해외에서는 1인칭 총싸움 게임 <크로스파이어>의 동시 접속자(특정 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인원)가 800만 명을 넘어선 기록으로 유명합니다.
현재 모든 국내 계열사 직원 수는 약 2천 명 정도이며 여성의 비율은 약 20% 수준으로 타 업종보다 낮습니다. 과거에는 게임의 소비자, 생산자 모두 남성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약 90% 정도가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 외 10%는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규직 비중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권고사직이 워낙 쉬워 게임업계는 저임금, 고강도 업무를 유도하고 고급 인력을 기계부품 다루듯이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강도 업무의 대명사가 된 크런치 모드의 경우 단순히 노동조합이 생겨 사용자를 압박한다고 해서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게임업계 태생부터 이어진 문제라 원활한 노사 협상을 통해 조직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SG길드는 2018년 9월 5일 설립하였으며 현재 조합원 수는 약 350명 정도이고 스마일게이트 내 5개 법인(엔터테인먼트, 홀딩스, 알피지, 스토브, 메가포트)의 교섭권을 확보한 상황으로 현재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의 첫 교섭이 11월 6일에 이뤄집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원인은 근로자대표로 선정된 후 생긴 상황 때문입니다. 2018년 7월부터 시행된 주52시간 노동시간단축 제도로 인해, 회사에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근로자대표로 참가하여 회사와 동등한 협상을 기대했지만 단 이틀 만에 근무제 변경에 서명하게 되었고, 노동3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초기 멤버를 모아 노동조합 설립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노조 설립당시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 노동조합 롤모델이어서 정의당 비상구를 통해 연락이 닿은 후 공동성명이 속한 화섬식품노조를 상급단체로 선택하였습니다. 넥슨 역시 비슷한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을 원해 함께 만들게 되었습니다. 게임업계는 20대와 30대 비중이 매우 높은 산업이며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많기에 집단행동을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연결 고리가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게임업계는 일본과 미국이 강국인데 두 나라 모두 노동조합 설립 비중이 10% 수준이며 유명한 게임회사는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기에 현재까지 설립되지 못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SG길드의 별칭에서 ‘SG’는 스마일게이트의 약자입니다. ‘길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산업 혁명 이전에 노동조합과 같은 역할을 하던 것이 길드였고, 두 번째는 게임 내에서 친구들을 만들어 관계를 맺고 게임을 즐기기 위한 커뮤니티를 보통 길드라고 합니다. 따라서 게임회사답게 스마일게이트 노조 별칭을 ‘SG길드’라고 만든 것이지요.
SG길드는 게임업계 특징인 문화를 선도하는 특징에 맞춰 별칭도 만들고, 게임인들에게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노동조합의 이미지를 친숙하게 느끼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언문에서도 “비상식의 벽을 레이드 하자”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여기서 “레이드”는 한 명이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이나 상황을 다수의 사람과 힘을 합쳐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말하는 게임 용어입니다.
홈페이지 역시 기존 딱딱하고 공격적인 노동조합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귀여운 고양이를 내세워 편안한 느낌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미디어에서만 보이는 자극적인 시위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보장하는 노동3권과 노동조합은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궁극적으로는 게임업계를 비롯한 노동조합이 없는 다양한 업종에 노동조합이 생길 수 있는 포석을 마련하는 것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SG길드가 설립되고 회사 측도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자와 대화하기 위한 좋은 창구가 생겼다고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노조 사무실, 노조 활동 보장, 노조 홍보 보장을 위한 협의가 상견례 전 비공식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SG길드의 주요 교섭 의제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포괄임금제 폐지와 유연 근무제 개선으로 삶과 일의 균형 잡기. 둘째, 고용 안전 보장과 공평한 평가 제도를 통한 안전한 개발환경 조성. 셋째 성과 분배 개선과 투명한 정보 공개로 회사 생활 의욕 증진 등입니다. 현재까지는 회사와 원활한 관계이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단체 행동권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아직 조금은 이른 것 같습니다.
SG길드는 화섬식품노조 산하에 있기에 네이버, 넥슨, SK하이닉스 등 같은 IT업계와 지속해서 연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연대를 통해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이미 상부상조하고 있습니다. SG길드의 경우 초기에는 오프라인 활동 인원이 부족해 네이버지회와 넥슨지회의 도움을 받고, 콘텐츠에 강점이 있는 우리는 다른 화섬식품노조에 우리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종업계에 용기만 있다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1) 크런치 모드(Crunch Mode)는 게임 등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몇몇 게임 개발자들의 과로사와 자살 이후 국내 개발 업계의 근로 환경이 이슈가 되었으며, 크런치 모드는 연장 근무와 고강도 노동을 당연시하는 관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으로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