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대선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복지국가 대선공약을 총체적으로 부정했다. 그것은 대선공약 중의 일부를 수정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대선 기간 중에 스스로 내세웠던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핵심공약의 본질을 완전히 훼손하고 부정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복지국가는 시장만능국가와는 상극의 위치에 놓여있다. 시장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며 시장만능의 원리를 주창하는 시장국가는 필연적으로 양극화와 민생불안을 불러온다. 그래서 이를 교정함으로써 성장과 분배가 통합적으로 일어나도록 하는 정의로운 국가질서가 요구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시장의 실패와 한계를 교정하는 복지국가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복지국가를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반드시 실천하겠다며,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 약속을 배반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줄·푸·세’ 노선(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바로 세우겠다는 내용의 시장만능주의 노선)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집권 6개월도 채 지나기 전에 경제민주화의 추진 중단을 선언하며 대기업들에게 투자를 종용하는 모습에서 이미 회귀의 조짐은 감지되었다. 그럼에도 ‘신뢰의 정치’를 강조한 정치인이었던 만큼, 우리 국민은 인내심을 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주시했다. 그런데 집권 1년이 다 지나도록 한국형 복지국가는 추진은커녕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에 지난 대선 당시 약속했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와 주요 복지공약들은 하나씩 축소 또는 파기되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정한 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포함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공약하며, ‘국민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를 약속했던 바로 그 사람이 우리 국민을 배신한 것이다. 그리고 복지국가 대선공약 대신에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규제완화와 자유로운 자본투자를 통한 경제의 활성화였다. 말인즉, 사회공공성의 강화를 의미하는 복지국가의 추진 대신에 의료나 교육과 같은 공공성 강한 사회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이곳을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처로 삼겠다는 발상이다. 자신의 대선공약을 완전히 배반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경제성장에 대한 현 정부의 잘못된 집착이 한몫을 했다. 성장 지상주의의 뿌리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복지를 하자니 당장 돈이 없다는 생각은 고정시켜 놓은 채, 성장을 통해 복지수요를 최소화하고 정부재정을 늘려놓겠다는 심산이다. 즉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십수 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낙수효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자들만 더 부자로 만들어줌으로써 소득양극화만 심화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데 이견을 다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에서 줄기차게 추진했던 것처럼 ‘줄·푸·세’의 시장만능주의 노선으로는 양극화만 심화시킬 뿐 경제를 통합적으로 발전시킬 수도,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다는 점은 이미 명확해졌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의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의 노후소득보장 제도를 바로잡을 중요한 계기를 놓쳐버렸다. 현 정부의 터무니없는 고집으로 망쳐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2028년에는 40%로 낮아진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매우 넓어 국민의 절반은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기초노령연금 2배 증액’ 공약을 내건 배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했으나, 이 공약은 후퇴 또는 파기되었다. 기초연금의 수급대상을 소득하위 70% 노인으로 제한했고,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여 10~20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도록 했다. 이로써 정치뿐만 아니라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 대한 정치사회적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대표적 사회서비스 분야인 보육과 의료서비스 보장에 관한 대선공약도 사실상 지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확실한 국가 책임 보육’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자 시절인 2013년 1월31일까지만 해도 전국 시․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무상보육과 같은 전국 단위의 사업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발언했었다. 그런데 이후 박근혜 정부는 보편적 보육을 더욱 내실화하기는커녕 관련 보육재정에 대한 부담을 지방정부로 떠넘겼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도 마찬가지였다. 대선 당시 75%인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의 보장률(비급여 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의료보장 공약은 축소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지난 대선에서 빈자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호소력이 있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선공약도 왜곡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인정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재산의 소득환산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더해 현행 기초생활보장의 통합급여체계를 ‘맞춤형 급여체계’로 확대 개편함으로써 더 많은 빈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기초생활보장 공약은 야당의 진보적 공약과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사회적 요구를 대부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집권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런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획기적인 예산 지원이 수반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 공약도 대국민 거짓말로 끝날 공산이 크다.
2015년도 예산안에서 중요하게 따져야 할 세 가지
2014년 9월18일 박근혜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376조 원 규모의 ‘2015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예산 규모가 올해보다 5.7%(20조 원) 늘어났다. 2015년도 예산안 규모가 전년에 비해 5.7% 늘어났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산안과 관련하여 검토해봐야 할 중요한 지점 몇 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균형인지 아니면 재정적자인지가 중요한다. 둘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라면 그 이유가 정부예산의 과다한 지출계획 때문인지 아니면 세입구조의 문제로 인한 세수의 부족 때문인지가 중요하다. 셋째, 재정적자의 이유가 세입의 부족 때문이라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져봐야 한다.
첫째, 2015년도 예산안은 세입보다 세출이 많은 재정적자이다. 내년도 재정적자는 33조 원에 이른다. 그래서 정부의 부채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내년도 국가채무는 올해(527조 원)보다 43조 1천억 원이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국가채무가 내년도 570조 1천억 원에 이어 2016년 615조 5천억 원, 2017년 659조 4천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로는 올해 35.1%, 내년 35.7%, 2016년 36.4%, 그리고 2017년에는 36.7%나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써 정권 출범 초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20%대로 낮추겠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의 목표는 이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둘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인 것은 정부의 과다한 재정지출 계획 때문이 아니다. 즉 복지국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복지예산을 확충하느라 재정적자 상태가 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이야기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겨우 5.7%(20조 원) 늘어날 뿐이다. 예산증가율 5.7%는 우리나라의 경상GDP 증가율 6.1%에 비해서도 낮다. 즉 예산증가율 5.7% 그 자체는 결코 과다한 것이 아니며, 이렇게 늘어난 예산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의 경우처럼 기존 프로그램의 성숙에 따른 자연증가에 기인한 것들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역동적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로 가기 위한 획기적이고 구조적인 공적 투자를 감행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저출산․고령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도드라진 문제점들을 미봉하는 데 전전긍긍하면서 최소한의 증액 복지예산을 책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셋째, 2015년도 예산안이 재정적자인 이유는 한국형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복지 지출의 확대와는 완전히 무관하며, 단지 세입의 부족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입 부족의 원인은 무엇인가? 현 정부의 세수확충 방안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줄곧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해왔다. 그러면서도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지키겠다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형 복지국가라는 말 대신에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면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복지만을 땜질식으로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현 정부가 제시했던 대안은 두 가지였다. 비과세․감면제도의 개선과 지하경제의 양성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모두 실패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국 세수는 늘 부족하고, 지금 이것이 복지국가 공약의 파기를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양극화․민생불안 시대에 머물 것인가, 복지국가로 갈 것인가?
우리나라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양극화가 극적으로 심해졌다. 1995년 이후 15년 남짓한 시기 동안에 상대적 빈곤율은 8%에서 15%로 증가했고, 중산층의 비율은 74%에서 64%로 줄었다. 최근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소득상위 10% 인구가 전체 소득의 45%를 가져간다. 이는 미국의 48%에 이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이렇게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민생은 만성적으로 불안해졌다. 보편적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가운데 일자리와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심해졌고, 전반적으로 가계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안정적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겼다. 이것은 성장 지상주의와 저열한 분배수준을 특징으로 하는 복지후진국의 한계에 다름 없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은 9~10% 수준이다. OECD 국가들 평균인 21%에 한참 못 미친다. 독일이나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의 25~30%에 비하면 1/3 수준이다. 이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복지후진국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왜 이렇게 낮을까? 간단하다. 우리 국민들이 세금을 적게 내서 그렇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나라는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복지후진국이다. 이건 그냥 복지만 후진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사회공공성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사회공공성의 수준이 낮은 정치공동체 대한민국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이대로 살아가고, 이런 시장만능의 격차사회를 자식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줄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시장만능의 복지후진국을 탈피할 비상한 계획을 세워야하고, 그런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아나가야 한다. 우리가 단계적으로 사회공공성 수준을 높여 나가려면, 그래서 중기적으로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공공성 높은 선진 복지국가 수준에 도달하려면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19~20% 수준이다. OECD 국가들 평균인 25%에 비해 최소한 GDP의 5~6%포인트 이상 세금을 덜 내고 있다. 작년의 명목GDP가 1,400조 원을 넘었으니, GDP의 5%면 70조 원이다. 우리는 작년에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세금을 최소한 70조 원 이상 덜 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5-26% 수준이다. 조세부담률에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 등의 사회보장 기여금 부담률을 합한 것이 국민부담률이다. 우리나라는 국민부담률이 OECD 국가들 평균보다 GDP의 9%포인트 정도 낮다. 우리 국민은 OECD 국가들 평균에 비해 연간 약 130조 원을 적게 부담한 것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공공성 수준은 낮다.
우리나라가 사회공공성의 수준이 낮은 복지후진국에서 성장과 분배가 유기적으로 함께 발전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공공성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는 국민부담률을 높일 때에만 가능해진다. 국민부담률을 높인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지금보다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을 더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재의 ‘저부담-저복지’에서 ‘적정부담-적정복지’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대선후보들은 앞 다투어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복지국가의 핵심 특성인 사회공공성을 높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은 지금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적자재정을 편성했지만 정부예산은 크게 모자란다. 현재 정부여당은 재정상황을 핑계로 복지국가 공약의 대부분을 축소하거나 파기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공공성 수준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복지국가로의 길을 가로막는 대한민국의 왜곡된 정치질서
대선공약이 이렇게 망가지고 복지국가로의 진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데 대해 가장 크게 비판받아야 할 정치세력은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이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잃은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전면에 내걸고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한 후에는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저버리고, 대신에 증세 없는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집권 초기의 한동안 일부 국민들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에 일말의 기대를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명료해졌다. 증세 없이는 복지도, 복지국가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집권 정치세력인 새누리당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한국형 복지국가 공약을 내건 정당은 바로 새누리당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내걸었던 대선공약을 폐기하거나 거의 지키지 않았다. 제1야당도 복지국가 공약이 망가지고 복지국가로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폐기 또는 후퇴시키며 퇴행을 반복하는 동안 제1야당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큰 시장,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추가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처를 더 많이 확보했고, 시장의 자유를 보다 강조하고 사회공공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치적 행동을 조직하려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이념(가치)이자, 동시에 그들이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보수 지지계층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정부와 집권여당이 대선공약을 파기하면서 줄․푸․세 노선으로 회귀한 것은 집권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 후 본래의 모습(정치노선)으로 되돌아간 것에 다름 없다. 그렇게 보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국민은 보수 정치세력에게 정치적 사기를 당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 도의상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시장의 자유 확대를 위해 감세와 규제완화를 강조한 것은 보수적 자유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동시에 자신의 지지기반인 자본과 상층의 이해관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하나의 축인 만큼, 줄․푸․세 노선 그 자체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치노선의 하나로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크게 비판받아야 할 정치세력은 제1야당이다. 보수적 자유주의 세력인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정치적으로 국민을 속였던 지난 시기에 제1야당은 무엇을 했던가? 정부여당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뻔히 바닥이 보이는 한심한 거짓말을 국정의 기조로 제시하며 지내온 그 시기에 제1야당은 무엇을 했던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 당시 제1야당은 복지국가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 소수의 야당 국회의원들이 개별적 차원에서 복지국가와 관련하여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여당이 대선공약을 하나하나 파기하던 그 시기에 제1야당은 정치 공학적 이슈에만 매몰된 채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복지국가 공약의 파기와 함께 복지국가로의 진전은 멈췄고, 민생불안의 심화와 함께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다.
나는 야당이 지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대안세력으로서의 신뢰와 책임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에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복지재원 문제다. 야당은 당시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며 기선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각종 복지공약을 담은 애드벌룬만 띄워놓고는 숨어버렸다.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어떻게 집행하겠다는 구상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경제민주화를 꺼내놓았다. 그런데 제1야당은 당시 왜 보편적 복지의 기치와 프로그램들을 가급적 뒤로 숨기고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을까? 경제민주화는 규제가 중심이므로 돈(국가재정) 드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와 달리, 정치적 부담이 별로 없는 선거정치의 호재라고 여겼을 것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제1야당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재원 문제를 꺼내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금의 제1야당에도 지배적인 견해로 존재한다. 내가 판단하기에 현재 제1야당에는 두 부류의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부류는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 기여율을 대폭 높이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 부류의 정치인들은 본질적으로 보수 자유주의 또는 중도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출산 및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복지수요가 증가하므로 불가피하게 복지를 지금보다 더 늘리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우리나라가 ‘의미 있는 증세’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유럽식의 복지국가로 발전하는 데 대해서는 지지하지 않는다.
두 번째 부류의 정치인들은 비록 그 수가 적긴 하지만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한다. 보편주의 원칙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이들 대다수는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로 인해 선거에서 표가 떨어진다는 정치공학적인 계산을 앞세우는 속성이 있다. 이들은 이념적으로 대개 ‘진보적 자유주의’ 성향인데, 이들 중의 상당수가 증세정치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1야당은 증세정치를 정당의 전면에 내세우기를 꺼렸던 것이고, 이것이 여러 가지 정치적 사안들과 얽히면서 사실상 정부여당의 복지국가 공약 파기를 방관했던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복지국가 증세정치의 새 시대를 열자
담뱃세와 주민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소득 역진적인 조세항목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간접세 증세 조치는 증세 없는 복지를 국정기조로 삼던 정부여당이 계속되는 정부재정의 적자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꼼수 정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꼼수에 불과한 것은 다음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이것도 증세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증세다. 세율을 높이거나 세목을 신설하는 것만이 증세라는 정부여당의 엉터리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담뱃세와 주민세를 인상하는 식의 간접세 증세로는 조세정의만 해칠 뿐(OECD 회원국의 평균 간접세 비중은 41.5%인데, 우리나라의 간접세 비중은 54.5%임), 재정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GDP의 19%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에 비해 6%포인트나 미달한다. 단계적으로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과 국민부담으로 나아가려면 직접세에 누진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득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소득불평등의 나라이다.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고, 내수경제를 살려냄으로써 ‘소득 주도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누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대기업과 고소득자가 더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재원으로 복지국가에 투자하여 고용을 늘리고 중소기업 등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개선하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이로써 우리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중산층도 한결 두터워질 것이다. 결국에는 중산층까지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우리도 머지않아 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의 보편주의 복지국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당정치 질서로는 이 일을 하기 어렵다. 현행 정당들에게는 복지국가로의 전진이 그렇게 절박하지도 않고, 많은 경우 복지국가 건설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여당은 보수적 자유주의 이념과 정치적 지지기반의 성격 때문에 현재의 경제 질서와 상태를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현실정치에서 이들의 힘은 압도적으로 크다. 한편 제1야당은 세간의 이야기처럼 ‘정치 자영업자 그룹들의 협의체’에 가깝다.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같은 정당에 모인 것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다양한 성향의 ‘정치적 개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제1야당에 모여든 셈이다. 이들은 증세정치와 같은 정치적 도박을 하는 데 소극적이다. 굳이 정치 자영업자들이 이런 골치 아픈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에 재선되기 위해서는 정부여당과 정치 공학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적대적 공생을 일삼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것이 지역주의에도 의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 담론이 크게 불거졌지만, 지금의 정당정치 아래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앞으로 복지국가 정치와 증세정치가 제대로 공론화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치 질서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제1야당의 창조적 파괴와 복지국가 정당으로의 재편이다.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있어 실질적 의미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제1야당이다. 기득권에 안주하는 적대적 공생의 양당체제를 본질적으로 파탄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장 힘들고 마음 아프더라도 지금의 제1야당을 엄중하게 심판해야 한다.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법이다.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은 적대적 공생체제인 현재의 양당체제와 이념(가치) 없는 정당이자 정치 자영업자 그룹들의 협의체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제1야당이다. 그리고 등장해야 할 새로운 것은 강력한 복지국가 정당과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런 방향으로 거대한 항해를 시작했다. 복지국가를 위한 증세정치는 이런 여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