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맹아가 싹트다
2012년 4월 부산 동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조그마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의 시작은 노사협의회로부터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제대로 된 노사협의회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측에서는 ‘GWP(Great Work Place)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노사협의회를 노동청에 등록했다. 그리고 어용 근로위원을 앞세워 사측의 실적개선을 목적으로 GWP협의회를 운영했다.
어용 노사협의회를 본질적인 노사협의회의 성격으로 회귀시켜야 했다. 그래서 사전 작업으로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고, 각종 노동 관련법 조항을 들며 문제제기를 하자, 기존 근로위원들이 두 손을 들었다. 결국 2012년 6월 민주적 절차로 ‘어용’이 아닌 근로위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위영일 노사협의회 위원장, 신장섭 간사, 정병문 총무가 뽑혔다.
그리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기본노동권을 하나하나씩 쟁취해 나갔다. △노사협의회를 통한 전 직원 최저임금 보장 실현, △미결 과다자 근무시간 종료 후 사무실로 소환해 대책서 작성금지(시간외 수당 청구), △월요일 조회를 이유로 조기출근(AM 7:30) 종용 금지(시간외 수당 청구 대상), △사측 관리자들의 고압적 태도와 발언금지, △잘못 계산되던 연차수당 정정, △점심시간 한 시간 제공, △주 40시간 근무 제도, △미지급 하던 시간외 근무수당의 지급, △ 격주로 주5일제(토요휴무) 시행 등이 현실로 실현됐다.
이처럼 부산 동래센터의 노사협의회 활동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자, 포항, 구미, 구포, 서울, 인천 등 타 센터로부터 전화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부산에서의 제1차 전국 노사협의회 간부진 만남을 시작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종인 밴드(Band)를 열고 노사협의회 활동을 전국적 규모로 확대시켜 나갔다.
탄압을 딛고 탄생한 노동조합
노사협의회를 통해 동래센터의 근로조건이 개선되고 이 여파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는 ‘바지 사장’을 내세워 2013년 5월30일 GPA(Great Parter Agency, 협력회사)인 동래프리미엄서비스를 폐업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동래센터의 노사협의회 위원장과 간사를 축출하려고 수많은 탄압과 회유 및 협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급기야 외근 법인을 해체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결국 협력업체는 위장폐업하고, 노사협의회 간부들은 해고됐다.
노동자들을 지킬 노동조합이 필요했다. 이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선 동래센터 노사협의회 당시부터 삼성전자의 위장도급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2013년 초 이마트 불법파견 사건을 계기로 민변과 접촉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 측과 기획취재 기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통해서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양지부와 함께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역사상 처음으로 금속노조가 삼성전자서비스 사무실에서 노동조합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윽고 2013년 6월11일 민변 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비대위를 꾸렸고, 6월17일 민주당 은수미·장하나·우원식 의원, 민변과 금속노조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위장도급 실태를 공개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내용이 처음 보도된 것으로, 이 일이 계기가 돼 동래센터의 이야기가 전국의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자들에게 더욱 확산됐다.
우리는 마침내 7월2일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출범 준비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열흘 여 뒤인 14일에는 서울 대방동 여성프라자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노동조합의 탄생을 선포했다.
삼성전자 최초의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험난한 과정을 거쳐 삼성전자의 자회사(삼성전자가 지분 99.3% 보유)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이처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출범의 의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회의 출범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는 기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등 갖가지 포장으로 부풀려 있던 삼성그룹의 중추기업 삼성전자가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법 등 법마저 무시하고 노동착취를 하고 있었다는 경악할 사실들이 폭로됐다. 또한 삼성의 그늘 아래 있던 민중의 삶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삼성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논리로, 국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요구했던 불운한 시대의 결과물이다.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 계열 내에 최초이자 대규모로 노동조합이 설립됨으로써 이제 삼성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대한민국의 노동기본권을 준수하라며 저항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또 하나의 전태일이 된 최종범 열사 투쟁
2013년 7월14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설립과 동시에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엄청난 흥분에 휩싸였다. 십수 년간 부당한 노동환경에서도 불만을 드러내지 못하고, ‘고객만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각종 인권유린을 겪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제 새로운 일터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과 더불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됐다. 그 희망과 열정은 삽시간에 폭풍처럼,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나갔고 1,600여 명의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으로 표현됐다. 적어도 우리들은 노예의 삶을 최초로 거부하고, 노동의 주체로서의 당당한 주권을 삼성전자에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막강한 영향력으로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우리의 사용자라는 수많은 증거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위장도급을 폭로했으나, 처음 수사방향과는 달리 한 달이 지나는 시점에 고용노동부 고위공무원의 입김으로 “(수사의) 바람이 빠져 버리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고용노동부는 한 달간의 조사와 또 한 달의 연장조사를 마치고,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예상은 했었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유린하는 무노조 삼성에 항거해 노조를 설립하고 불의를 고발하면 적어도 이 사회와 정부가 이를 시정할 것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다.
뉴스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 사실이 이슈화 되어 다뤄지는 순간에도 삼성은 무노조 지향을 위한 악랄한 수를 버리지 않았다. 지난 10월15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 의해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서가 공개됐다. 문서는 △2011년 평가 및 반성, △2012년 노사 환경과 전망, △2012년 노사 전략, △당부 말씀의 네 부분으로 구성돼, 어떻게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파괴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삼성의 전략을 담고 있었다. 그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공격을 받게 됐다. 삼성전자는 몇 년치의 타겟 감사를 통해 조합원들을 흔들며 일감을 줄여 나갔고, ‘지역 떼가기’(노조원이 적은 센터로 일감을 몰아줘 노조원이 많은 센터를 고사시키는 전략) 등 치졸한 방법으로 조합원들의 생계를 타격하고 노조를 탈퇴할 것을 회유하거나 협박했다.
그 과정에서 최종범 열사가 자신의 생명을 던지며, 삼성의 반 민주주의적 악행과 불법에 항거했다. 최종범 열사는 마지막 순간에 “저 최종범이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대한민국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라는 삼성전자 안에서 생명줄을 부여잡고 살아가던 가난한 노동자의 외침이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비명이 도무지 말이나 되는 소리인 것인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의 그늘 아래서 말이다.
그러나 삼성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재력을 동원하여, 고용노동부를 움직이고 언론 보도를 막으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했다. 열사의 아내인 별이 엄마가 엄동설한의 차가운 길바닥에 노숙을 하며, 장례를 치루게 해달라는 호소도 묵살하였다.
우리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의 노동자들은 삼성의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가 삼성의 불법에 항거하는 이유는 삼성을 상대로 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삼성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민중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다. 또한 삼성의 불법에 분명히 저항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다. 삼성이 변해야 우리의 삶이 바뀌고, 이 사회가 바뀌게 될 것이다. ‘삼성의 변화’라는 시대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끊임없이 저항하며 투쟁해 나갈 것이다.
<편집자주> 최종범 열사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들로부터 교섭을 위임받은 경총은 지난 12월21일 협상을 타결했습니다. 이 원고는 협상 타결 전 작성된 것입니다. 이에 타결 후 지회에서 작성한 담화문을 발췌해 싣습니다.
담화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곧 지회와 함께 할 전국의 엔지니어 동료 여러분!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경총 대표와 협상을 마무리하고 싸인하였습니다. 협상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마지막까지도 조합원들께 미리 공유 못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종범 열사와 전체 조합원들의 뜻을 중심에 놓고 판단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지회와 삼성전자 측의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노동조합 활동 보장,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생활 임금을 보장하고, 업무 차량 리스와 더불어 유류비 실비 지급, △건당 수수료 및 월급제에 관해서 임단협에서 성실하게 논의, △노조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으며 향후 불이익 금지, △유족 보상, △이제근 천안센터장의 귀책 사항 재계약 반영 입니다.
(중략)최종범 열사는 동료들이 표적감사와 부당노동행위로 동료들이 탄압받고 있을때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힘들어 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단결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생을 던졌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고, 우리가 끝까지 승리를 놓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우리 한 가운데 서있는 하나의 나침반입니다.
열사가 길을 열어주었고, 우리가 단결해서 쉴 틈 없이 투쟁했습니다. 매일 센터 앞에서, 서초동 본사 앞에서, 시내 곳곳에서 우리는 시민들을 만나고, 사측과 당당하게 대결했습니다. 바지사장을 넘어 본사와 맞상대했습니다. 삼성전자의 부당한 이익구조가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를 수탈해왔음을 폭로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민주노조 사수 투쟁은 삼성을 넘어 전 국민이 지지하는 투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자본이 바라는 것은 노동자들이 서로 분열하고 갈등하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이해하고, 소통하며, 어깨동무할 것입니다. 동료들과 갖고 있었던 그간의 해묵은 감정, 자본이 조장한 경쟁 질서 모두 털어냅시다.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악수하고, 소통합시다. 그리고 기어이 함께 합시다. 그것이 최종범 열사의 뜻 입니다. 우리 이번 협상안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열사의 꿈을 잇는 투쟁은 이제 막 시작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최종범 열사 장례를 치르고 그를 하늘로 보내면 이제 그를 우리 가슴 속에 묻고 기억합시다. 최종범 열사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 동료 여러분. 노동조합이 우리 모두의 삶을 바꾸고 있습니다. 비조합원이나 미조직센터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노동조합이 없었다면 위의 기초적인 개선안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개선은 우리의 출발일 뿐이며, 최종범 열사의 꿈을 잇는 전쟁의 서막일 뿐입니다. 이제는 모두의 꿈이 된 그 꿈, 삼성에서 민주노조 깃발 꽂고 인간답게 살겠다는 그 꿈, 힘차게 쟁취해나갑시다. 비조합원, 미조직센터를 당차게 만나고, 품 넓게 포용합시다. 보라고, 노동조합이 바꾸고 있지 않느냐고 당당하게 이야기합시다. 그리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실천하고, 더 많이 웃읍시다.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에게 2013년이 인간선언의 해였다면, 2014년은 거대한 변화가 전개되는 해로 만듭시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과 임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