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파시스트가 집권할 때까지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자라난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의 역사를 백년 뒤의 우리 앞에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저자 마거릿 콘(Margaret Kohn)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협동조합 회원은 1902년에 56만 명을 넘었고, 이와 나란히 성장한 상조회 회원은 비슷한 시기 거의 1백만 명에 육박했다. 우리에게 ‘민중의 집’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민중회관은 1919년 무렵 적어도 1,500여 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노동회의소는 76개의 조직과 50만 명 이상의 회원이 확인된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의 성장에서 이러한 급진적인 민주적 공간들이 기층 민중의 정치적 참여 확대와 사회주의운동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사회변혁에서의 공간의 의미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사회변혁에서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등을 사회 변혁을 위한 저항의 터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비판적 정치이론은 공간 또는 장소가 변혁의 열망을 키워내고, 현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길러주며, 정치적 에너지를 조직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18~19세기 유럽에서 발전된 ‘부르주아 공론장’과는 달리 19세기 산업화 이후 노동자들의 세계에서 성장한 선술집, 협동조합, 포도주 동호회,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등을 ‘민중적 공론장’이라고 부른다. 전자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엄격한 분리에 기반한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부르주아 남성들의 이상과 소통을 촉진한 다분히 이념적 공간이었다면, 후자는 민중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통일성을 경험하고 기념하며 이를 통해 연대성이 창출되는 물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적 공론장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교류하고 공동체 감각을 배양하며,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도록 하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부르주아 공론장을 비판한 사회주의자들은 공장을 정치 동원을 위한 가장 유망한 터전으로 파악했고, 심지어 마르크스와 그람시는 공장을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유발하는 새로운 사회의 출생지로 보았다. 이들에게 공장은 자본주의적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동시에 혁명적 주체도 생산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념을 반박한다. 공장은 일차적으로 규율권력과 착취의 터전이다. 저자가 보기에 공장이 해방의 공간일 수 있으려면 공장 ‘밖’의 민중적 공론장과 촘촘히 연계되어 있어야 하며, 노동자들이 겪는 공장 ‘안’에서의 착취의 경험이 공장 ‘밖’에서 다른 하위계급들(노동자, 수공업자, 실업자, 농민 등)과 공유됨으로써 그들과 튼튼한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1920년 젊은 그람시가 참여한 토리노의 공장평의회운동의 처절한 패배는 공장 문 바깥에 있는 사람들(남부의 농민, 수공업자, 실업자, 기술직 노동자, 학생, 가내 노동자 등의 하위계급들)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장평의회운동이 실패한 이후 옥중에 갇힌 그람시가 이론적으로 고투하였던 역사적 블록과 헤게모니 개념은 바로 공장 안에만 갇혔던 평의회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공간이 부여하는 자연스러운 의식화
책의 후반부는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의 역사를 다루고, 이것이 이탈리아의 지방자치주의와 맺는 연관성을 살핀다. 저자가 보기에 협동조합은 일차적으로 19세기 후반 노동자들에게 만남의 터전이었다. 그것은 지방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자율적 터전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연대와 평등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을 촉진하였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협동조합 부설 바(bar)인 ‘치르콜로’(circolo)에서 카드게임을 하고 포도주를 마셨고, 그 수익금을 적립해 동료의 장례식 비용이나 구호금으로 사용했으며, 그 중 누군가는 큰 소리로 신문을 읽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처한 공통의 이슈를 떠들어댔다. 저자는 협동조합이 이탈리아의 전통적 엘리트의 지배와 감시가 미치지 않는 자율적인 사회적 공간을 열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그 공간에서 협동조합에 참여한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 주부들은 노동조합이나 정당 활동가로 일할 때 느끼는 위험 부담을 피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적 하위문화와 일체감을 형성해 나갔다. 즉 “협동조합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쇼핑하고 빵을 만들며 친구들과 포도주 한잔 마시는 행위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그려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민중회관(민중의 집)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난 시점은 1893년이다. 민중회관은 기본적으로 집단적인 차원에서 비좁고 비위생적인 노동자들의 주거지로 인해 ‘그들만의 방’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당 지방에서 통용되는 지식과 자원(현물 또는 노동 기부)을 이용하여 조금씩 만들어진 ‘대항 터전’이었다. 민중회관은 개량주의 성향의 협동조합과 상조회, 생디칼리슴 성향의 생산자협동체,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주의정당들과 같이 이따금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던 조직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뭉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 주었다. 그것의 건축 설계도 연대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나의 조직이 다른 조직에 동화되지 않고, 저마다 독자적인 요소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일종의 느슨한 연합 구조를 제공했다. 민중회관 안에는 소비자 협동조합, 모임방, 식당, 도서관, 성인교육 프로그램, 극장, 바와 카페, 사회주의 계열의 각종 신문, 사회주의정당 지역지부, 그밖에 정치문화 조직들을 위한 공간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곳에서 언론인·교사·변호사 같은 좌파 지식인들, 공장 노동자와 농민, 수공업자, 실업자끼리 두루 어울렸다. 또한 이탈리아의 민중회관들은 노조나 정당의 전국적 차원의 정치에 예속되지 않았고, 오히려 지방 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노동회의소는 부르주아들의 상공회의소에 대당(對當)하는 공간으로 1880~9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 전역에 설립되었다. 노동회의소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별로 입회하는 기성 노동자 조직들의 지방 차원의 동맹체로써, 노동자들이 회합하고 조직하며 이해관계를 토론하고 전술을 조율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단일 사업장이나 단일 산업 부문 출신의 노동자들로만 이루어진 노동조합 또는 생산자 협동조합과는 달리, 노동회의소는 균질적이지 않은 노동조직들 간의 논쟁과 신랄한 토론을 펼치는 공적 공간이었다. 동시에 실용적 차원에서는 파업을 중재하거나 사회문제를 조사연구하고 개방대학을 운영하며 지역노동시장의 고용을 규제하려고 한 조율의 중심지였다. 많은 노동회의소들은 시정 당국의 후원을 받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준공공기관이었으나, 사회주의자들이 지방행정을 장악한 곳에서는 사회당 권력 기반의 대안으로 설립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노동회의소가 그람시가 말한 ‘역사적 블록’, 즉 다양한 반자본주의 세력들의 동맹이라는 이념을 구현한 공간으로 평가한다. “공장이 단일한 직종이나 단일한 생산과정 속에 있는 구성원들만 한데 모았던 반면, 노동회의소는 담배 제조공장의 소녀와 건설 노동자, 금속 노동자와 방직공 사이에 공동체적 관계를 창출했다.” 당시를 살았던 노동자의 회고록을 보면 노동회의소의 기능을 잘 알 수 있다. 회고록에서 노동회의소는 모든 시위와 행진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중요한 연설과 결정이 이루어진 곳, 댄스와 사회주의가 나란히 놓인 곳, 파시스트의 공격에 맞서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 한 곳 등으로 요소요소에 등장한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같은 ‘저항의 공간’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부각시킨다. 그 장소들은 내부자와 외부자가 한데 모여 공동체적 관계를 발견하는 만남의 터전을 제공하였고, 대항 헤게모니의 이념과 정체성을 길러냈다. 또 지방적인 토대에 굳건히 뿌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협소한 관심을 뛰어넘는 정치적 기획에 참여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고, 참여자들의 민주적 운영이 보장되었으며, 노동자·농민들의 일상생활(협동조합에서 장을 보고 민중회관에서 한잔 걸치는 생활)이 정치적 기획에 접속되도록 하였다. 1922년 무솔리니가 집권한 이후에 파시스트들이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정당보다 협동조합, 노동회의소, 민중회관들을 제일 먼저 물리적으로 파괴한 것은 이 저항의 공간들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발원지 ‘래디컬 스페이스’
끝으로 저자는 19세기 후반 공장 바깥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저항 공간들의 광범위한 네트워크가 불러온 정치적 효과에 대해 논의한다. 이탈리아의 정치지형에서 사회당이 중앙 의회정치에서 배제됨에 따라 자연스레 지방자치체 정부에 관심을 돌리면서 지방자치주의는 발전하였다. 이 때 지역에 뿌리내린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와 같은 다양한 결사들의 촘촘한 네트워크는 지방자치 사회주의의 선거 승리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1913년 남성 보통선거권이 거의 실현된 선거에서 사회당은 모두 450곳의 지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고, 1920년에는 총 2,115곳의 자치시에서 승리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주택, 공교육 및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노동회의소나 협동조합 같은 노동자 조직에 대한 후원을 넓혔다.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의 지방자치주의는 요샛말로 ‘급진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하는데, 주로 하위 계급들 사이의 동맹, 국가 바깥에 있는 권력 터전들의 민주화, 결사를 통한 시민의 통치 참여 등을 주요 요소로 한다. 저자는 지방자치 사회주의가 지배한 이탈리아의 지역들은 공장 바깥의 저항 공간들의 네트워크가 튼튼하면서 동시에 파벌주의적인 정치세력들의 어리석은 내부 투쟁을 극복한 곳이었다고 말한다. 또 이러한 20세기 초반의 지방자치주의는 파시즘 치하에서 파괴되었지만, “다양한 사회집단과 자치의 경험, 자율적인 집합행동의 역량을 통해 성취된 수평적 유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롯이 되살아나면서 ‘중부 이탈리아의 적색 지대’로 복원되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우리가 오늘날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관광객의 한계를 뛰어넘어 교외의 공단과 노동자계급 거주 구역으로 향하면 민중회관 같은 수수한 기념물들을 발견할 것이라며, 그 터전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대 민주주의 정치의 탄생’이라고 엄숙히 말하는 바로 그 순간, 즉 신민(subject)에서 시민(citizen)으로의 변모의 역사적 순간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 기념물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다른 무엇도 아닌 민중들의 ‘저항 능력’과 그 능력을 배양하는 ‘래디컬 스페이스(급진적 공간)’에서 발원하였음을 전해주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최근 협동조합, 민중의 집, 지역비정규센터, 풀뿌리 시민운동 같은 지역사회에 뿌리를 둔 대안적 공간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고 있다. 공장 담벼락에 갇힌 임단협 중심의 노동조합운동과 중앙의 명망가 위의 정당운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고, 지역사회와의 질긴 만남을 통해 운동이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지만 백 년 전 이탈리아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국가와 자본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대안적인 저항 공간과 그 속에서 움트는 새로운 주체들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또한 이 책을 백년 후인 지금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의 민중의 집을 직접 탐방하고, 그 정치적 의미를 소개하고 있는 '민중의 집'(정경섭 지음, 레디앙, 2012)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