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희망연대노조 조직화 과정
1) 케이블방송 노동자
희망연대노조는 지난 2009년 12월2일 만들어진 지역일반노조다.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하며 사업장 임단협 투쟁에만 머물지 않고,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노조활동도 자본이 강요하는 경쟁으로 내몰린 삶이 아닌 ‘새롭게, 다르게 살기’ 활동, 지역 생활문화공동체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왔다. 당연히 조직화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시작했다.
그 첫 성과는 2010년 1월25일 케이블방송 씨앤앰지부 결성으로 나타났다. 케이블방송은 지역방송으로서 지역주민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 다양한 지역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으로 적극 조직화했다. 이어서 2013년 2월13일 케이블방송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지부(이하 케비지부)를 건설했고, 3월24일에는 티브로드 홀딩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이하 케비티지부)를 결성했다.
그동안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 시도를 무수히 벌였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유지보수․기술․영업마케팅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시군구 단위의 외주업체로 각각 분산되어 있었다. 따라서 한두 개의 외주업체에서 노동조합 결성 시도를 벌여봤자, 티브로드 홀딩스․CJ헬로비젼․씨앤앰 등 원청업체의 탄압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결성 시도는 회유와 협박, 폐업과 새로운 업체로의 업무 이관이 숱하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번번이 실패했다. 이처럼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씨앤앰의 협력사, 25개 소규모 외주업체로 산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힘겹게 일하며 별다른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씨앤앰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성과가 전파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우리도 뭔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씨앤앰지부 간부들과 열성적인 조합원들은 단순히 소식 전파를 넘어 노조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협력사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2011년 초부터는 노조 결성을 위해 서울 남동지역 협력사인 ‘오렌지’ 노동자들을 포함해 인근에 있는 협력사 ‘대성’, ‘케인’의 노동자들까지 만났다. 하지만 논의와 준비 과정이 길어지면서 준비주체가 이직을 하거나, 협력사에서 내근업무를 하는 여성노동자의 권고사직과 부당전직을 막아내지 못하는 등 어려움과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12년에는 전년 보다 본격적으로 조직사업에 돌입해 희망연대노조와 씨앤앰지부가 비공개로 ‘협력사 노동자 조직사업팀’을 함께 꾸리고 활동을 전개했다. 그 성과에 힘입어 2012년 하반기부터는 서울 남동지역에 이어 중부, 동부지역 등 권역별로 노조결성을 위한 주체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과반수 이상의 협력사에서 조직화가 가능해지자 12월부터 권역별 주체가 모두 모여 ‘노조 결성 준비모임’을 구성하고, 2013년 3월을 목표로 주체 확대 사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조직사업을 활발히 벌이자, 2월초에 사측이 노조결성 움직임에 대한 포괄적 인지를 하게 됐다. 이에 약 한 달가량 앞당겨 노조를 결성했다. 그리고 2013년 2월13일 비공개로 노조결성식을 진행하고, 2월18일 모든 협력사 앞에서 동시다발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드디어 노동조합을 공개할 수 있었다. 이후 단기간에 400명의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는 등 사측이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세가 등등해졌다.
이후 노조 결성 소식이 동종업종에 빠르게 전파됐고, 2월말 티브로드 홀딩스 협력사(센터) 노동자들의 노조 상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 달여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3월24일 케비티지부가 결성되었다. 케비티지부가 빠르게 노조를 결성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3, 4년간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었고, 2013년 상반기의 협력사(센터) 재편 움직임 속에 노동강도 강화, 인력감축, 고용불안이 증대됐기 때문이다. 또한 ‘더 이상은 안 된다’, ‘뭔가 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절박함이 커졌고,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자극과 희망이 됐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티브로드지부가 집회를 열고 있다. ©희망연대노조>
2) 다산콜센터 노동자
다산콜센터 노동자 조직화는 2011년 6월말 KTis, 7월초 KTcs지부 결성으로부터 시작됐다. KTis와 KTcs는 KT의 자회사로서 콜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2009년 KT에서 강제퇴출(명예퇴직) 당한 500여 명이 이들 업체에서 민원처리업무를 수행하던 중 또다시 강제사직을 강요당하자, 100여 명이 노조를 결성하고 고용보장 투쟁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KTis, KTcs지부로 결성하기 전에 희망연대노조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고민의 지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KT의 철저한 인사노무통제와 탄압에 맞선 어려운 싸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희망연대노조가 감당할 수 있는 조직화인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둘째는 지역사회운동노조의 지향을 담보할 수 있는 주체형성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그럼에도 KTis, KTcs지부를 결성한 것은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와 콜센터 여성노동자 조직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KT콜센터의 경우 상담원 일부가 해당 콜센터가 위치한 지역의 주민으로서 지역사회운동노조로의 주체 형성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KTis, KTcs지부 조직투쟁 과정에서 KT콜센터 상담사를 함께 조직했다. 2011년 7월부터 10월까지 KT 콜센터 앞에서 총 19차례의 선전전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노조에 가입하여 2011년 9월15일 텔레마케터지부를 결성했다. 그리고 근로감독 위반에 대한 고소고발, 노동부 수시근로감독, 토론회 등을 통해 콜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문제를 여론화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은 조직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첫째, 심각한 노동인권 침해와 감시․통제 속에서 스스로의 권리보장을 위해 나서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둘째, 이직을 통해 현실 문제를 회피하거나 개선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콜센터가 대부분 외주화 되다 보니 고용보장을 위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당수의 콜센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나, 가능성과 기대가 없기 때문에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 실제 KT 콜센터 노동자 집중조직사업도 초기에 일정 성과를 거두는 듯 하다가, 사측의 탄압으로 지지부진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노조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략조직사업의 방향이 전환됐고, 한편으로는 조직화 가능성이 가장 큰 콜센터에 대한 집중조직화가 추진되었다. 집중조직화의 첫 사업장은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다. KT콜센터에 대한 집중조직화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2011년 10월부터 다산콜센터 노조결성 상담이 시작되었고, 1년간의 준비 끝에 2012년 9월12일 다산콜센터지부를 결성했다.
다산콜센터를 집중 조직사업장으로 선정한 것은 공공부문 사업장이기 때문에 조직투쟁 과정에서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탄압이 상대적으로 심하지 않고, 활동이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민간업체인 KTis, KTcs의 경우 노동통제와 탄압으로 악명 높은 KT의 인사노무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어 이를 뚫고 노조를 조직하기 매우 어려웠으나, 다산콜센터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더욱이 노동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은 박원순 서울시장 산하의 콜센터인 만큼 조직화에 유리한 점이 많았다. 노조 결성 시점을 2012년 9월로 잡은 것도 서울시의 비정규직 대책 발표가 4분기로 예정되어 있어, 다산콜센터 상담원 문제를 전면화 시키기에 좋은 시기로 봤기 때문이다.
2. 조직화 특성 및 시사점
1) 원칙에 입각한 조직화 - 과반수 이상 조직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별노조든, 지역일반노조든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조직단위를 구성하면 된다. 관건은 사용자의 탄압을 넘어서 조직을 사수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어도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당하거나 업체와 계약해지를 하면 그걸로 끝이다. 노조 자체의 생존이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불리한 환경에서 노조를 만들어야 하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노조에 쉽게 가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희망연대노조가 조직화를 하면서 세운 큰 방향은 노조를 사수․강화하지 못한다면,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들여 노조를 만들어도 힘이 없어 소수노조로 전락하거나 무너질 상황이라면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때를 기다리고 철저히 준비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조직과 투쟁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방향 하에 정한 원칙은 ‘과반수 이상 조직화가 가능할 때 노조를 결성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쪽수 싸움’이다. 노동자 다수가 조직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도 씨앤앰의 25개 협력사 중에서 과반수 이상이 조직될 때까지 인내를 갖고 충분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사측이 한두 개의 협력사 노조를 깨기는 쉬어도, 10여 개 협력사에서 동시에 노조를 만든다면 쉽게 대응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씨앤앰 협력사 ‘오렌지’의 내근직 여성노동자 3명이 권고사직과 부당전직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동료 노동자들은 분노, 불만과 아픔을 삭여야 했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며 이직하는 준비 주체가 생겨도, 준비가 더 필요하다며 쓰린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과반수 이상의 협력사 노조를 조직할 수 있었다. 이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공동투쟁을 통해 압도적 힘을 만들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사람과 조직을 남기는 투쟁
조직투쟁 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과 결과는 다양하다. 조직화 성과를 남기는 경우도 있지만 의미를 남기는 투쟁도 있다. 때론 장렬히 싸우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화했다는 나름의 의미를 거두기도 했다. 이 경우 대부분은 힘의 역학관계에서 밀림으로써 장기투쟁과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적 연대를 통해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비록 조직화 성과를 남기지 못하더라도 의미를 남기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목표로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지만, 고용유지 보장을 중심으로 조직투쟁을 전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조직화 영역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희망연대노조 조직화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람과 조직을 남기는 것이다. 성과는 많이 얻을 수도, 적게 얻을 수도 있다. 올해 성과가 부족했다면 내년에 보완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있는 한 지속적인 권리 보장이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수의 조합원이 힘을 모아 조직을 유지,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희망연대노조는 조직투쟁 과정과 투쟁전술에서 유연성을 많이 발휘한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투쟁 과정에서 직접고용을 요구로 내걸었지만 이를 당장 쟁취해야 할 목표로 삼기보다는, 노동조건 개선을 통해 조합원을 확대하고 조직을 강화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다. 또 위장도급 문제를 법적으로 제기하기 보다는 수년간의 투쟁을 통해 힘으로 직접고용을 쟁취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람과 조직을 남기기 위해서는 가능한 장기투쟁은 피해야 한다. 장기투쟁은 생계문제로 인해 조합원을 이탈하게 만들고, 조직과 투쟁력을 약화시킨다. 결국 소수만의 투쟁으로 남게 된다. 아무리 의미 있는 투쟁이라도 소수만의 싸움으로는 그 의미가 퇴색되고, 동종업종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장기투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벼랑 끝 전술은 피해야 한다.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투쟁에서 노조는 사용할 수 있는 투쟁 방식 중 절반도 사용하지 않았다. 투쟁 수단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예측 가능한 투쟁을 했고, 마무리를 할 시점에 타결을 했다. 투쟁을 지속한다면 더 많은 요구를 쟁취할 수 있겠지만 노조가 시기를 선택하고 조직을 강화할 수 있는 시점에서 투쟁을 마무리했다.
다산콜센터의 경우는 서울시 사업장으로서 외주업체의 부당노동행위를 막아내고 고용보장과 함께 안정적 노조활동을 보장 받는데다, 사람과 조직을 충분히 남길 수 있다고 보고 조직화를 자신감 있게 진행했다. 그러나 조건과 환경이 좋았음에도 상담사들의 주체적 참여가 미흡했다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는 △감시통제 감정노동으로 길들여지고 △업무시간이 상이하며 △수많은 팀으로 분절화 된 채 상호경쟁시스템에 놓여 있고 △가사와 일이라는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사업장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또한 취약한 조직력 강화라는 과제도 제기한다.
3) 사회연대·지역연대에서 나오는 사회적 힘
희망연대노조의 모든 조직과 투쟁은 사회연대를 중심사업으로 배치해 준비했다. 사업장 투쟁, 주체의 투쟁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노동자의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모든 노동자 투쟁은 사업장에서는 ‘단결’, 사회적으로는 ‘연대’를 통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케이블방송과 다산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투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중요했다. 그러기에 케비, 케비티지부가 결성되기 이전인 2013년 1월부터 노동사회단체와 함께 ‘케이블방송 공공성과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케비 공대위)’를 준비했고, 이어서 각 지역별 공대위도 추진했다. 노조 결성 초기과정에서부터 노동사회단체의 지지와 연대가 진행되었다. 케비티지부는 9월4일 파업투쟁에 들어가자마자, 9월7일부터 1박 2일간 ‘희망지하철’이라는 사회적 투쟁을 조직했다. 그리고 10월11일 2차 희망지하철 투쟁을 앞두고, 원청인 티브로드 홀딩스와 포괄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다산콜센터도 노조를 만들기 전후 노동사회단체와 함께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을 구성하여 사회연대를 만들어냈다.
다산콜센터가 노조결성 시기를 9월12일로 잡고, 케비티지부가 파업투쟁을 9월4일로 잡은 것은 9월 정기국회와 10월 국정감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사회연대를 확장하고 사회정치적 압박을 병행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케이블방송자본의 탐욕과 비리 속에서 노동인권을 유린당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폭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연대와 사회정치적 압박은 반드시 필요한 투쟁방안이다.
4) ‘더불어 사는 삶’과 ‘아래로 향하는 운동’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는 2010년 1월25일 정규직노동자로 구성된 씨앤앰지부가 결성된 날부터 시작되었다. 노조를 사수․강화하는 과정에서 협력사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하여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조직화를 염두에 둔 채 활동을 전개했다. 2011년부터는 보다 목적의식적으로 협력사 조직사업을 전개하여 2년 만에 케비지부를 건설했다. 이러한 의식과 실천이 가능했던 것은 희망연대노조의 지향 때문이다.
희망연대노조는 지역사회운동노조로서 일터와 지역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내 권리가 소중하지만 미조직된 노동자,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민들의 권리와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래로 향하는 운동’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터에서 더불어 사는 삶, 아래로 향하는 운동은 곧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정규직노조의 구호 후렴은 항상 ‘비정규직 철폐 투쟁’ 이었다. 많은 전현직 노조 간부들이 협력사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노력했고 많은 조합원들도 함께 할 수 있었던 힘은 희망연대노조의 지향과 조직문화풍토 때문이었다.
5) 서두르지 않되 준비는 철저히
조직화의 상당수는 고용문제 등 현안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당사자의 자발성에 의존한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충분한 계획과 준비를 마련하지 못한 조직화 과정, 훈련되지 않은 주체, 사용자의 탄압 등으로 제대로 조직화를 이루어내기 어렵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안이 있더라도 충분한 준비를 한 다음 조직화를 진행하는 것이 낫다.
조직화 과정에서는 주체의 준비, 주체 확대, 실태분석(노동실태, 경영실태와 노무관리 등 사용자 분석)과 요구 마련, 예상되는 모든 상황에 대한 대비와 계획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 동안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주체 확대의 과정에서 사측이 인지하고 대응에 나서면서 노조결성 자체가 무산되거나 확대가 제한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케비지부의 경우 노조공개 돌입 순간까지도 회사가 노조결성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다. 다산콜센터도 대중적 확대 과정에서 사측이 조직화를 인지하자, 바로 지부를 결성하고 공개 활동으로 전환했다. 이는 비공개로 ‘협력사 노동자 조직사업팀’을 구성하고, 보안이 유지 가능하도록 소수가 잘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조급하게 준비했다면 노조 준비 주체인원을 늘리려고 시도했겠지만, 보안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준비 단위에 보안유지가 확실한 주체들만 결합시켰다. 애석하게도 이 같은 사실들은 한국사회에서 조직화를 위해서는 보안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주체의 훈련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집회에 참가 중인 씨앤앰지부 조합원들. ©희망연대노조>
3. 조직화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1) 지역사회운동노조 조합원으로서 주체형성과 활동 전개
희망연대노조가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직화’ 자체가 아니라, ‘어떤 조직화인가’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은 조합주의, 실리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작업장에서 머리띠를 묶고 투쟁하지만, 삶의 공간에서는 자본에 종속된 채 내면화된 삶을 살고 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녀들이 뒤쳐지지 않도록 열심히 사교육을 시킨다. 또한 최소한의 ‘노후보장’을 위해 사보험을 드는 것은 기본이고, ‘더 잘 살겠다’는 욕망으로 펀드․주식투자, 부동산 등 재테크에 힘쓴다. 상시 고용불안의 상황에서 ‘있을 때 벌자’며 잔업,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조직화는 기존 노조운동을 혁신할 새로운 주체로 주목받았으나, 결국 기존 노조운동으로 편입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절박하고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내용적으로는 고용보장․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작업장 생존권 투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작업장 투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사회운동과 결합된 실천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사회변혁적 노동조합운동으로의 지향과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실리주의, 노동조합주의, 전투적 경제주의의 틀에 갇혀 대안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는 지역사회운동노조를 지향한다. 지역사회운동노조는 사업장 투쟁과 노동의제 뿐만 아니라 생태환경, 반전평화, 민주주의와 인권, 성 평등, 사회공공성 등의 보편적 가치를 조합원의 삶 속에서 실현하고,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실현하고자하는 노동조합이다. 무엇보다도 노동과 삶, 생산과 재생산, 생활·문화·소비가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조합원이 더불어 사는 삶, 생활문화연대를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희망연대노조의 조직화는 바로 이런 활동을 전개하는 주체를 만드는 것이다.
조합원의 삶의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희망연대노조는 제한된 역량과 경험 속에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지역사회와 무엇을 함께 할지 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취약계층 아동청소년 사업을 시작했고, 점차 일반아동까지 확대해 사업을 전개했다. 이제는 학부모 사업, 생태텃밭, 공방과 다양한 생활문화모임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조합원이 주체로 결합해 삶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지역 활동의 일상 단위로서 지역지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투쟁은 성과가 즉시 확인되는 반면, ‘더불어 사는 삶’으로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장기적 과정이 될 것이다.
2) 동종업종으로 조직 확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조직화는 애초부터 다른 케이블방송 및 통신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방송통신 융합상품이 보편화되고 통합되는 과정에서 업계의 노동조건도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씨앤앰 협력사 조직화는 티브로드 협력사 조직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지역사회운동노조로서 지향과 내용을 지키면서도 동종업종 전반으로 조직을 확산하는 것이다.
콜센터 상담사 조직화는 애초 일부 공공부분 콜센터 조직화를 제외하고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조직화 방향을 관련된 모든 단위가 결합해 콜센터 상담사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전략적으로 조직하기로 설정했다. 이는 희망연대노조의 힘만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콜센터 조직화는 공공노조가 정규직사업장과 함께 진행하고, 사무금융부문 콜센터 조직화는 사무금융노조가 해당 정규직사업장과 연대해 야 한다. 희망연대노조는 방송통신분야 콜센터 조직화에 힘을 쏟을 것이다. 이처럼 조직사업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3) 내 노동을 가치 있게 하는 사회공공성 투쟁
케이블방송은 지역에 기반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로서 1995년 출범했다. 특히 공중파 방송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지역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출범했다. 지역에 소통과 공감의 장을 제공하고, 지역 기득권층에 대한 감시, 풀뿌리 지역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지역케이블방송은 거대자본과 대기업의 SO진출을 제한하고, 지역성을 강조하여 지역 연고의 기업이 SO를 설립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출범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태광, CJ 등 대기업들이 지역케이블방송을 인수․합병하기 시작하면서 거대 케이블방송이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케이블방송의 지역성과 공공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대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탐욕만이 남게 됐다. 그 결과 제작비 삭감, 비용절감을 위한 1인 제작시스템, 영업확대를 위한 프로그램 종속 등 제작 환경은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케이블방송에 지역주민은 없고, 이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자본의 탐욕만 넘치는 것이다.
이에 희망연대노조는 단지 임금인상․고용보장을 위한 투쟁을 넘어 내 노동이 지역주민과 지역사회를 위해 가치 있게 쓰이도록, 케이블방송의 지역성․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 또한 중요한 사업으로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