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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김창한 금속노조 만도지부 지부장,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육선전부장
사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토론: 공계진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원장,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
일시: 2012년 10월26일(금) 오수 4시~7시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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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제96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임단협 시기에 쟁의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내내 투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공공부문 노조 파괴에 더불어 최근에는 금속노조 사업장조직 중 조직력이 세고 민주적으로 활동해온 곳들에 대한 공세가 심각하게 가해졌는데요. 이런 노조 파괴 시도가 현장의 어떠한 변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검토하고, 또 이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최근 이를 경험한 금속노조 만도지부와 SJM지회 투쟁 사례를 들어보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먼저 김창한 만도지부 지부장님 발표를 듣고 다음으로 조건준 경기지부 교선부장님의 발표를 듣겠습니다.
[발표1: 만도지부 사례]
김창한: 조직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서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부끄럽습니다. 어쨌든 만도지부 사례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발표를 하겠습니다. 대략적으로 만도지부를 소개하면, 다른 많은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전노협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대공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금속노조가 설립될 때부터 결합해서 산별노조운동을 해왔습니다. 금속노조의 투쟁에도 비껴가지 않고 늘 결합해왔죠.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서서히 현장 조직력이 무너져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직장폐쇄와 용역 투입이 이뤄지기까지
올해 임단협은 사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어요. 문막 공장 한 가운데 깁스코리아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원래 만도기계 문막 공장 DC부문이 깁스에 매각되면서 소유가 바뀐 거죠. 여기는 금속노조 만도지부 깁스코리아지회로 조직돼 있습니다. 그런데 깁스 자본이 꾸준히 철수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작년 11월경에 우연히 알게 됐어요. 우리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사측이 주요 납품업체들한테 철수 사실을 공지해놨고 현대의 재가도 얻은 상태였죠. 이에 따라서 만도지부는 올해 교섭을 깁스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의 고용 문제를 중심으로 준비해왔습니다. 깁스코리아 건을 가지고 고용안정위원회 협의에 들어갔죠. 소유는 다르지만 만도하고 깊게 관련된 사업장이고, 만도기계 공장 한 가운데 있으니까요.
그렇게 고용안정위원회 협의와 임단협투쟁을 병행하는 중인 5월23일에 정몽원 회장 명의로 9장짜리 가정통신문을 돌리더라고요. “만도의 미래 생존을 위한 신(新)출사표”라는 제목이었는데, 회사가 처한 경영환경이 만만치 않다, 파업병 걸린 노조로는 못 푼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또한 6월11일쯤에 사측에서 노사 임원진 간담회를 제안했는데, 조건이 깁스지회장을 빼고 하자는 거였습니다. 뭔가 구체적인 쇼부를 걸려나보다 생각이 들어서 깁스지회장에게는 한 번 받아보자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런데 운영위원회에서 평택과 문막 지회장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원칙적 반대가 거세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죠. 때문에 지부장으로서 제 운신의 폭이 없어졌습니다. 그 사이 회사에도 가정통신문을 계속 발송하고 조합원 공작을 진행하고 있었고요.
사실 조합원들의 관심은 고용안정위원회에서 다루는 깁스코리아 매각 문제보다는 임금인상률이 정해지는 임단협에 주로 가 있었죠. 때문에 조합원 간담회 등을 통해 꾸준히 깁스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를 했습니다. 그렇게 진행이 되다가 7월5일쯤 되니까 고용안정위원회 협의가 뭔가 좀 풀리는가 싶더라고요.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주인 7월12일에 사측이 교섭을 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노조가 받을 수 없는 두 가지를 내걸었습니다. 먼저, 고용안정위원회 요구 중에 깁스 관련 내용은 모두 빼라, 다음으로, 조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배치한 두 시간 파업 계획마저 접어라, 그래야 교섭을 재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강공으로 밀고 나오더라고요.
노조는 그래도 회사 달래면서 교섭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회사가 결국 뻗댄 겁니다. 그런 와중에 7월23일 전 조합원 간담회를 실시했는데, 전에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가 확 다가왔습니다. 깁스 건이나 임단협 건을 천천히 설득하려고 이야기하는데도, 조합원 반응이 냉랭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지회장들하고 투쟁 계획을 논의하는 가운데, 7월28일부터 휴가니까 27일 전면적인 투쟁을 벌이고, 조합원들이 투쟁 장기화로 피곤할 테니 28일에 휴가를 보내자는 제안이 제기된 겁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 27일 투쟁에 대해서는 26일 교섭 결과를 보고 결정을 하되, 그에 따라 휴가를 보낼 수도 있다는 정도로 입장을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26일 오전 집회 중에 평택과 문막의 지회장이, 조합원 동지들 휴가 잘 다녀오십시오, 하고 결론을 내려버린 거예요.
그렇지만 26일 교섭에서도 사측 입장은 변화가 없었고, 금속노조 중앙에서 26일 저녁에 전갈이 오기를 오후 7시쯤 잠실에 용역들이 모여 있는데, 이들이 만도로 동원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간 조는 퇴근 안 시키고 붙잡아놓고, 주간 조도 다음 날 다 출근하라고 지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금속노조에서 용역들의 동선을 뒤쫓아보니 새벽 4시쯤에 SJM으로 가더라는 겁니다. 이를 전달받고서 다음 날 어떻게 할까 논의를 하는데, 조합원들을 다시 다 불러 모아서 상황 설명하고 퇴근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아니다 이미 휴가 떠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혼란해진다, 어차피 용역 안 들어오는데 왜 이랬냐 등의 주장이 부딪치면서 날밤을 새게 됐습니다. 피곤 속에 판단이 흐려지면서 결국 27일 투쟁과 휴가를 원래 계획했던 대로 진행하기로 했고요.
그런데 다시 정보가 확보된 게 27일 오전 10시경에 용역들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다시 많이 모이고 있다, 12시에 인천 문학 경기장 쪽으로 이동한다, 결국 만도기계로 들어갈 것 같다는 거였죠. 그렇지만 이미 어떻게 정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오후 2시40분에 용역이 전격적으로 공장 안으로 들어오고 3시에 정문이 봉쇄되고 직장폐쇄가 선언됐습니다. 곧바로 회사가 직장폐쇄 들어갔으니 만도지부 조합원은 출입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조합원들을 위축시키는 내용을 휴대전화 메시지로 계속 보냈죠.
내부에서 제기된, 미심쩍은 지도부 총사퇴 요구
이후 어쨌든 곧바로 각 지회별로 사원아파트에 거점을 마련하고 대응하자고 지침을 내렸는데, 익산만 하고 평택과 문막은 하지 않았어요. 또한 27일 저녁 지부 운영위원회가 소집됐는데, 평택지회장이 회의 도중에 사소한 일로 회의장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평택지회장하고 친한 문막지회장이 달래서 데리고 올 테니 다음 날인 28일 회의를 합시다,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28일 회의 시작하자마자 문막지회장이, 지도부 총사퇴합시다, 하고 동을 뜨더라고요. 제가 무슨 소리냐, 상황이 정리되면 몰라도 지금 조합원들 휴가 중인 상태에서 그러는 건 무책임하지 않냐, 그랬더니, 토론하자는 거 아닙니다, 내일까지 입장 주십시오, 하고 문막하고 평택지회장이 나가버리더라고요.
이후에 제가 평택에 있는 현장조직 동지들과 금속노조 임원들을 만났는데, 어쨌든 복수노조가 생기는 것은 막자는 입장에서 논의를 하다가 운영위원회에서 선거를 제안해보자는 방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반대파들이 받지 않겠냐 싶었던 건데, 그렇게 되지를 않았죠. 지부장 사퇴 이야기는 그런 과정에서 나오게 된 겁니다. 익산지회장도 그 전까지는 안 넘어갔다가 운영위에서 총사퇴 쪽으로 이야기를 하고 막 차고 나가길래, 설득하다가 안 돼서, 좋다, 사퇴는 하되 사퇴 시점은 나중에 논의를 하자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직 지부장들과 지회장들을 모아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를 했습니다. 워낙 회사에서 저에 대해 매도해놨기 때문에 지도력이 굉장히 약해져 있었거든요. 김창한 지부장이 과도하게 깁스 문제에 집착해서 교섭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자기 마누라 출세시키려고 깁스 투쟁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식의 악선전이 현장에서 먹히고 있었더란 말이죠.
그렇게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준비했지만, 비상대책위원장을 누가 맡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면서 결국 실제 추진이 안 됐습니다.
치밀한 각본에 따라 연출된 노조 탈퇴 협박
돌이켜보면 회사 측 사전준비가 아주 치밀했던 게, 평택지회장과 문막지회장을 미리 포섭해놨던 겁니다. 되돌아보면 생각지도 않게 평택지회장이 깁스코리아 문제에 대해서도 강성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5월 초 한라그룹 앞 집회에서는 깁스 문제를 두고 파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요. 그런 발언이나 행동에 놀아난 거죠. 한편, 사측은 직장폐쇄 후 휴가 기간 중 조합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불러들일 때도 자기들이 정한 조합원 성향 분석 결과에 따라 순서를 정했습니다. 그냥 만도지부 탈퇴하고 기업노조로 들어와라 공지를 하는 게 아니라, 평소 행실로 봐서 바로 회유가 먹힐 사람, 금속노조를 쉽게 탈퇴할 사람을 먼저 불렀습니다. 조금이라도 반항할 기미가 있는 조합원들은 직장폐쇄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부르질 않았어요.
그렇게 불러서, 본부장이 위압감 주는 한 마디 하고, 기업노조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대동해서 저에 대한 매도를 하는 거죠. 자기들이 전에 김창한 지부장 찾아가서 공권력 들어온다고 얘길 했는데, 제가 금속노조 위원장도 한 유명한 사람이고 윗선에 힘이 있으니 다 정리할 수 있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 상태가 됐다는 겁니다. 그렇게 떠든 후 조합원들에게 열심히 일하겠다는 각서 비슷한 것을 받아내고, 거기서 어디 교수나 한국노총 쪽 위원장을 불러다가 두 시간 이상 교육을 합니다. 그 뒤에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 원서를 어디 가서 써 와라 한 거죠. 이렇게 금속노조 탈퇴 안 하면 잘리는 것처럼 분위기를 연출하고 압박을 하니까, 조합원들이 줄 서서 기업노조 가입 원서를 쓴 겁니다. 결국 직장폐쇄를 풀은 8월14일까지 5.2%만 남기고 다 탈퇴했습니다.
한편, 휴가 복귀 시점이 8월6일이었고, 만도지부는 7월26일 회사에 공문을 보내서 휴가 전날인 7월26일 하루 파업을 하고 휴가 이후에는 8시간 정상근무를 하겠다고 알렸어요. 그런데도 사측이 직장폐쇄를 했던 거죠. 그래서 8월6일 출근투쟁을 하는데, 경찰과 소방차가 대기하고 정보과 형사들이 사진기를 들고 서 있더라고요. 금속노조 사업장조직들이 깨지는 방식이 다 그랬더라고요. 우선 사측이 직장폐쇄를 때리고 용역을 투입하면, 성질 급한 젊은 친구들, 활동가들이 “진격 앞으로” 하고 싸우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게 다 정보과 형사들에게 사진으로 채증되고 고소고발이 됩니다. 이렇게 딱 선도적인 활동가들이 걸려들면 나머지 조합원들은 위축되고 작살이 나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8월6일 시점에 조합원들이 많이 탈퇴를 했기 때문에, 업무복귀 확약서를 쓰겠다고 하고 회사 양식으로 제출까지 했지만, 사측이 거의 복귀를 시키지 않았죠.
금속노조 모범조직 만도지부를 무너뜨린 공포심
만도지부가 이렇듯 급격하게 무너진 이유는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먼저, 조직가를 훈련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 근 5년 동안 없었습니다. 파업을 해도 ‘퇴근 파업’으로 하고, 간부나 활동가 양성을 위한 사업이 없었죠. 또 노조 조끼만 입으면 대의원들도 근무시간이고 뭐고 정문을 나가도 경비가 경례하고 그냥 보내주니까 기강이 완전히 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한편에서 회사는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현장을 장악하기 위한 작업을 했던 거고요. 다음으로, 만도 조합원들 사이에서 막연한 공포감 같은 것이 조성돼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인데 발레오만도나 유성 등 직장폐쇄로 먼저 깨진 사례들의 영향과, 과거 활동가 상당수와 지회 집행부가 모두가 사측으로 넘어갔다는 점 때문이었죠. 그러다보니 겁에 질린 조합원들이 투쟁 3일 만에 급속도로 무너진 겁니다.
지금 만도지부에 남아 있는 조합원은 공식적으로는 113명이고, 교섭은 9월6일에 재개했는데 사측이 개악안을 내놨습니다. 규범적 부분에서 노골적인 차별과 차등을 두었고, 채무적 부분에서는 전임자 축소와 사무실 폐쇄 등을 제출했고,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2월17일이 단체협약 해지 시점입니다. 교섭을 두세 차례 했는데, 우리도 여기에 매달릴 수는 없으니까 분노를 표출하면서 내질러버렸어요. 그렇게 9월20일 교섭이 깨진 뒤에 회사 측이 재개 조건으로 지부장 사과문, 교섭위원 교체, 당사자 사과를 내걸었고, 현재는 교섭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서 조정을 해서 11월부터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50% 이상은 만도지부로 돌아올 것
그런데 외부에서는 만도투쟁이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조합원이 5%밖에 남질 않았지만, 기업노조에 비해 만도지부 분위기가 훨씬 좋습니다. 조합원들이 서로 대립하는 분위기도 아니고요. 오히려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그쪽 지도부 비판을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기업노조 간부들은 현장을 거의 못 돌아요. 우리는 오히려 현장 조합원들이 모두 고생한다고 악수해주고 그럽니다.
저는 70~80%까지는 복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위축된 상태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10년, 20년 다니던 회사인데 노란 패찰 내보이고서 용역한테 허락받고 들어가라고 하는 데서 받은 굴욕감이 상당히 크고요. 1998년 흑자 부도를 내고 공권력 투입해서 2,500명 잘라낸 정몽원을 우리가 다시 받아줬는데, 자기는 1년에 50억씩 챙기면서 언론에다가는 만도 조합원들이 9,500만 원 받는 노동귀족이라고 욕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만도지부는 현재 조합원들의 가입원서를 다시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이 워낙 위축된 상태라 지금 공개하지는 않고, 전체 50%를 넘겼을 때 공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회 조직 정비를 하고 다시 세우고, 지부 조직도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운다든가 해서 보강하고자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11월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려고 합니다. 11월10일 정도에 2차 징계를 통해서 해고자들이 발생될 텐데, 그 시점에 대대적으로 홍보 활동을 하고 금속노조 중앙과 결합해서 현장도 순회하고 해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또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까, 좀 더 적극적인 기획을 만들어 봐야죠.
그리고 내년 1월은 2월17일 만도지부 단체협약 해지를 앞두고 조합원들 고민이 가장 깊어지는 시점이거든요. 그때 조합원들을 좀 더 강하게 끌어당기고, 중재단 등을 구성한다든지 해서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찾아보고자 하는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발표1에 대한 질의응답]
사회자: 만도지부 투쟁은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기사화됐지만, 속내 얘기는 오늘 처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조건준 부장님이 조금 늦으시는데요. 우선 김창한 지부장님 발표 들으시면서 묻고 싶었던 내용이 있으면 질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질문자: 그런 상황에서도 113명이 남아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한데요. 이 조합원들은 어떻게 남을 수 있었습니까? 대부분 활동가들인가요?
김창한: 예, 대부분 활동가이고요. 이번 사태로 현장조직들도 많이 넘어가거나 무너졌지만, 1987년에 자기가 깡통 두들겨가면서 만든 노조인데 외면 할 수 없다, 하는 조합원들이 주로 남아 있습니다.
질문자: 제가 잘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 직장폐쇄를 특정한 사유 없이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 아닙니까? 이에 대한 법적 대응은 안 되나요?
김창한: 노동부 입장은 불법파업을 하면 직장폐쇄도 불법이지만, 합법파업을 하면 그게 한 시간이 됐든 두 시간이 됐든 파업을 하는 것의 대항력으로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고 봐요. 때문에 합법파업을 한 만도 입장에서 사실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장폐쇄가 이뤄진 직후 8월6일부터 파업을 철회한다고 공문을 보냈어요. 때문에 8월6일 이후 직장폐쇄는 불법으로 될 소지가 있습니다.
질문자: 70~80%는 복구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창한: 일상적인 상황에서 복수노조가 만들어져서 조합원들이 자기 판단으로 기업별노조로 갔다면 사실 복구가 어려울 텐데, 지금 회사가 조합원들의 판단을 폭력으로 강제해버렸잖아요. 금속노조 탈퇴 안 하고 기업노조로 가지 않으면 잘린다, 이런 공포심으로 무조건 갔던 건데, 조합원들이 지금 와서 돌아보니까 자기가 당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현장 분위기를 보면 이런 부분에 대한 분노가 크고, 이를 테면 기업노조 지도부를 향해서 그런 게 실제로 표현이 돼요. 그러면서 다시 금속노조 가입원서를 쓰고 있습니다.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50%를 넘기는 건 가능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 조합원들은 만도지부가 진짜 무너지면 자기 고용안정도 정말 끝난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그럼 만도지부가 살아야 하는데, 자기가 먼저 들어가긴 싫다, 50%가 되면 자기도 들어가겠다, 이런 게 조합원들 다수의 분위기인 거죠. 즉, 민주노조가 중요한 건 알지만, 회사가 언제 다시 칠 수도 있는데 그걸 막기에는 만도지부가 약해보이는 겁니다. 거기서 어떻게 활로를 뚫을 건가가 중요한데요. 쉽지는 않겠지만 만도지부가 현장을 들쑤셔서 분위기를 들썩이게 하는 사업들을 꾸준히 만들어낸다면, 어떻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질문자: 노동조합의 관료화, 형식화, 자판기화가 투쟁력이 약화된 주요 원인으로 제기했습니다. 이번에 조직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대안은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창한: 조직복구 과정을 통해서 만도 내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 강한 결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조합원들이 파업 같은 거는 시키지 마, 알아서 해결해줘, 이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지난해 출범식 집회를 하는데, 예전 같으면 평택만 500명, 600명 모였을 텐데 처음에 70명 정도만 모였어요. 아 심각하구나 싶어서 출범 이후에 투쟁 준비하면서 현장 토론도 하고, 대자보도 적게 하고, 장승도 세우고,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거죠. 어쨌든 조합원들도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대리주의적 태도에 대한 의존성이 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옥석이 새롭게 가려졌을 거라고 보고, 진짜 민주노조운동을 이제부터 만들어가야 하는 거죠.
사회자: 제가 조금 떨어져서 봤을 때는 한라그룹 회장이 2008년 복귀하고 나서 ‘저강도 전략’을 썼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노조가 파업한다고 임금을 많이 주거나 이런 게 아니라, 첫 번째 교섭 자리에서 예년 같으면 거의 타결 수준 임금 인상률을 제시하고 그 이상은 없다, 이런 태도로 나온 거죠. 노조 집행부 입장에서 이걸 받을 수도 없고 안 받을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을 만든 겁니다. 그런 한편으로,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서 한라그룹의 비전 등을 노조보다도 더 열심히 홍보하고 조직했죠. 아마 이런 것들이 2~3년 동안 쌓이면서 그 토대 위에서 노조분열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게 단순히 만도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고, 전반적으로 노동운동이 새로운 기업 전략에 대응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최근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종합적으로 토론을 했으면 좋겠고요. 원래 오늘 두 분 발제를 다 듣고 토론자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조건준 부장이 늦네요. 먼저 공계진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님 토론을 듣겠습니다. 공계진 원장님은 금속노조를 대표해서 오신 것도 아니고, 오늘 토론회 참석을 많이 망설이셨는데요. 어쨌든 편하게 하고 싶은 말씀을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정 토론1]
공계진: 사회자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올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래도 왔기 때문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김창한 지부장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는 너무 낙관적으로 보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쉽게 복구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대기업 노동운동의 경험을 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대기업노조의 실리주의부터 반성해야
대공장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죠. 특히 1998년 이후 정리해고 투쟁 등에서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노동운동이 앞으로 조합원들을 어떻게 이끌어 것인가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이 회사도 믿지 못하고 조합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됐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벌 수 있을 때 벌자, 이런 생각이 강해졌거든요. 소위 실리주의라는 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경향적으로 되고 고착화되어 갔다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 노동조합에서 내걸었던 자주성이나 민주성이나 연대성이나 투쟁성 등은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고요.
이런 것들이 진행되면서 한편으로는 사측이 현장을 재침탈하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알게 모르게 현장조직력이 무너져 내렸죠. 이 과정에 활동가들도 빌붙어서,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기운을 꺾는 게 아니라 거기에 영합하면서 노동운동을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면서 더욱더 조합원들 사이의 소위 계급의식이나 변혁의식이 흐물흐물하게 만들었죠. 이런 게 만연하면서 노동운동이 위기로 치닫고, 대공장 내에서는 소위 실리파가 상당한 세를 얻고 넓혀가고 있습니다. 현장조직들도 이런 분위기에 영합하면서 어떡하면 선거에서 이길 건가에 매몰되고, 운동 전망을 제시하기보다는 분열 온상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대공장 노동운동의 경험이 만도에서도 재현되었을 겁니다. 때문에 사측으로 한 번 넘어간 세력이 분위기가 좋아진다고 민주노조운동 쪽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게, 그리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대나 기아, 대우의 상당수 대의원들이 물량 문제를 거래하면서 회사 측에 포섭됐듯이, 만도의 상당수 간부들도 그렇게 넘어가버렸을 거라는 거죠. 즉 이번 상황은 이렇게 형성된 흐름이 일시적으로 봉기한 것이고,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가 이기든 문재인이 이기든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쪽에서 직장폐쇄하고 공권력 투입해서 무너졌다, 이렇게 책임을 넘기는 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죠. 만도도 1998년에 정리해고 투쟁에서 한번 깨지고, 그게 공포감을 형성했다고 표현하셨는데요. 그런 심리가 기저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고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생각을 갖거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잽싸게 투항해버리는 식으로 나타나는 거라고 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디서부터 다시 출발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제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실리주의나 변혁이냐 이런 경쟁 구도가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까지 흘러왔고 예전에 노동운동이 가졌던 노동해방이라는 것이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 그리고 이런 거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그래서 조합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실리주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을 재건하더라도 또 다시 무너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현장조직력 무너지는 지역지부, 어떻게 재건하나
SJM 사례는 아직 발표를 안 했는데요. 제 입장에서 SJM은 거의 고향을 같이 하는 조직입니다. 어쨌든 금속노조의 장점은 지역지부들이 탄탄하게 서 있던 거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대공장지부들이 약간 엇나가더라도 지역지부들이 힘 있게 극복하면서 ‘금속다움’을 지켜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지역지부들도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옛날 같은 투쟁성이 없어진 것이죠. 그나마 경기지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지역지부들도 그래서 다음에 우리 지역에서 이런 투쟁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이런 걱정을 해요. 알아서 기는, 투쟁을 못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역지부 내 상당수 지회들도 투쟁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나름 지속적으로 민주노동운동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과 별다른 대립 없이 해왔던 곳들이기 때문에, 일정부분 회사 쪽에 포섭당한 경우도 있고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져서 간부들의 투쟁성이 약화되는 경향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SJM지회에도, 이번에 투쟁을 잘하고 극복을 하긴 했지만, 내부에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투쟁이 오래가면 저기도 일 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행히도 두 달 만에 성공적으로 끝내긴 했지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여러 가지 외부 조건이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SJM 사례를 일반화시키고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최근 우리가 계속 져왔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퍼뜨려서 승리감 같은 것들을 고취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우리 노조운동이 앞에서 계속 말씀드린 현실에 대해서 대응 원칙을 세우지 못하면, 만도와 같은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장기적인 성찰과 계획을 통해서 근본적 대책을 세워가지 않으면, 이 문제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토론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만도가 빨리 정상화되면 좋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약점에 대한 보완 없이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엄정한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존 활동들이 ‘민주노조다움’을 잃어버렸다고 많은 분들이 주장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정한 민주노조다움이라는 게 과거와 같은 노동해방을 말하는 건지, 또는 노조운동이 너무 과거지향적인 활동만 해서 조합원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결론내릴 수는 없지만 오늘 토론을 통해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SJM지회 사례의 발표자가 도착을 했는데요. 조건준 금속노조 경기지부 교선부장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2: SJM지회 사례]
조건준: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착각해서 늦었습니다. 바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지금 현재 SJM 상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두 달간 직장폐쇄가 철회되고 9월25일, 9개 사항에 대해서 노사가 합의를 했습니다. 결정적인 거는 회사가 전 조합원을 앞에 놓고 나와서 직접 사과를 했고, 그리고 노동조합이 요구했던 사항들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는 점입니다.
한편, 직장폐쇄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이렇듯 합의를 했지만, 올해 임단협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남아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는 요즘 자동차부품공장에서 빈번한 아웃소싱이나 글로벌소싱 등 외주화로 인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장폐쇄 기간 만들어진 기업별노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 기존 금속조노 지회에서는 당연히 복수노조를 없애는 것을 선호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기업노조를 만들면서 너희들을 반드시 지켜주겠다 약속했는데 결과는 그렇게 안됐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상황이죠. 또한 기업노조를 실제 없애려면 복수노조를 만들었던 주요 세력들은 회사를 모두 그만둬야 될 상황이 되기 때문에 좀 복잡한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투쟁이 시작될 때 SJM지회 조합원은 263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탈퇴자가 37명이었는데 관리직과 사무직을 빼면 파업 도중에 탈퇴한 현장노동자들은 13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 분들은 대부분 관리자들과 친인척 관계라던가 이런 분들이었고요. 따라서 파업 이후 현장 복원 활동과 관련해, 워낙 기분 좋게 승리하고 현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특별하게 복원활동을 할 게 없습니다. 다만 투쟁 때는 항상 모여서 얼굴을 봤었는데 지금은 일하다 보니까 서로 얼굴 못 본다, 그래서 회식도 좀 하고 교육 자리도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임단협도 끝날 것 같습니다.
노조파괴 무대의 막이 오르길 기다리며
SJM 노사는 오랫동안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변화가 있었죠. 먼저, 회사가 지주회사를 만들면서 생산 공장을 지주회사 하청 또는 생산기지 비슷한 지위로 떨어뜨리게 됩니다. 다음으로 창업줖 2세 승계 기간이었죠. 그리고 이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2010년쯤 해서 노무관리이사가 바뀌었습니다. 사실 노조 탄압하기 위해 직장폐쇄가 이뤄지거나 용역이 투입된 사업장들에서 이런 조건들이 나타난 곳이 꽤 많습니다. 어쨌든 이런 변수들이 있었고. 작년에는 SJM에서도 일반적인 노사 간 쟁점이었던 전임자 임금 문제를 둘러싼 문제가 갈등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들어 회사가 국내 공장의 영업이익률이 굉장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경영위기를 이야기하면서 단체협약 51개 개악안을 제시했습니다. 100개 좀 넘는 단체협약 조항 중에 51개에 대해 개악안을 냈다는 것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노조에서도 긴장을 하고 회사가 대체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 거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웃소싱이나 바이백 이런 것들이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적발하게 되었고, 또한 노사관계 관례를 무시하고 갑자기 4월에 비정규직 5명을 일방적으로 채용한다든가, 식당 조합원들을 일방적으로 전환배치 한다든가 하는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구나 하는 인식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형성되었죠.
지주회사제도가 도입으로 기존 사업구조가 재편될 테고, 이는 노동자들에게도 반드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예상을 했고요. 그와 동시에 점점 악화일로를 걷는 노사관계를 보면서, 이건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SJM지회가 임단협 들어간 직후부터 경기지부 전 간부들이 SJM 공장에서 집중 집회를 했고, 6월10일부터는 꽤 오랜만에 현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습니다. 조합원들의 회사 측 행태에 대한 불만도가 꽤 높아서, 자발적으로 잔업을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퇴근을 해버리는 일들도 현장 투쟁들 속에서 쭉 진행됐었습니다.
한편, 사건 발생하기 직전 우리가 경영분석을 새롭게 해봤더니, 지주회사를 만드는 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즉 지주회사를 만들어 놓고 국내 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일부러 떨어뜨려 놨는데 해외 공장의 부품 납품단가는 또 굉장히 높아요. 이건 제가 보기엔 사실 SJM만의 문제는 아니고, 외환위기 이후 순이익이 높아진 자동차산업 회사들의 세금 회피 방법입니다. 어쨌든 해외 납품가를 높게 잡는다는 것은 현대자동차 즉 원청회사의 용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고요. 그래서 이건 구조적으로 공격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고 이런 예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미 실현된 노조파괴 시나리오들에 대해서 조합들과 연구를 많이 해왔죠.
공포의 새벽을 분노의 새벽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예상했을 때는 여름휴가가 7월28일 토요일부터 시작이니까 그날 새벽쯤에 직장폐쇄를 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하루 앞당겨서 27일 새벽에 했더라고요. 어쨌든 7월26일 저녁에 용역 투입 정황이 포착되면서 회의를 소집을 했고, 그때 약간 논란이 좀 있었습니다. 뭐냐면, 지회에서는 용역깡패들이 들어오면 현장에서 전투를 벌이기보다, 공장에 나와서 시청에 거점을 잡고 장기투쟁으로 가져가자 이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지회 간부들과 지부 간부들이 논의를 하면서 공장을 쉽게 내줘서는 안 된다, 공장을 일단 지켜야한다, 하는 의견이 제시된 거죠. 그래서 이런 기조를 가지고 조합원한테 물어보자 이래서 밤 11시30분경 간부들이 방침을 물으러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전 조합원을 모아 놓고,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용역이 들어올 것 같다, SJM으로 들어올 게 틀림없다, 했더니, 여성 조합원 한 분이 일어나셔서, 지금 상황에서 집에 간다는 게 말이 되냐, 공장을 지킵시다, 라고 했어요. 그리고 의외로 만장일치로 이에 동의를 해서 공장에 전부 다 남게 됐죠. 그런 후 조별 토론도 하고 야식도 먹고 규찰도 보내고 정문과 후문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용역들이 들어온 겁니다. 한편, 용역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오랜 고민 끝에 조합에서, 무장하지 않는다, 비무장으로 단호하게 맞선다는 지침을 내렸죠. 그렇게 하니까 막상 그 엄청난 충돌 과정이 벌어졌지만 용역들의 엄청난 폭력에 비해 경찰에서 노조 측을 압박하기 위한 채증자료를 제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건이 오전 6시40분까지 계속됐는데요. 이를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텐트 농성 시작할 때 너무 오랜만이고 긴장도가 떨어진 것 같아서, 예비군 다 됐네요, 했더니, 무슨 우리는 민방위도 아닙니다, 할 정도였는데요.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어떤 조합원은 우리가 용역깡패에 맞서 싸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어차피 그런 놈들이고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전 조합원이 모이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게 가능하구나, 우리는 걸레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어쨌든 간부들에게도 놀랍고, 조합원들이 스스로에게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 것이었죠. 직장폐쇄와 용역깡패로 조합원들에게 야만과 공포의 새벽을 선사하려고 했던 회사의 계획이 엎어지고, 조합원들에 의해 분노의 새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두려움 없이, 비폭력으로, 폭력을 포위하다
정년을 얼마 앞두지 않은 고참 조합원들도, 노조 동의 없이 채용된 비정규직들도 함께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사측의 태도를 인간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전 준비와 SJM의 단결하는 문화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전에 우리가 노조 파괴 시나리오 등에 대해서 교육하면서 가장 많이 강조했던 것은 공포의 극복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구조조정, 용역깡패 투입, 정리해고 등이 노동자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면, 결국 강자의 줄 세우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고, 회사에 항복하고 빌붙을 수밖에 없고, 어용노조로 갈 수밖에 없거든요.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조합원들이 처음부터 훌륭하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단결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기존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대응에 있어 노조 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지부에서 용역 투입이 가시화되자마자 긴급회의를 했어요. 이런 거 생기면 노동운동 내에서 전투적인 분들은, 다들 용역으로 인해 밀려난 경험이 있는 분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마스크하고 장갑 준비해서 한 판 뜨러 모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저런 무자비한 폭력을 우리가 물리적으로 응징하지 못하면 도대체 투쟁을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였죠. 그렇지만 우리는 쌍용차 투쟁 등을 보면서 공장이라는 공간을 둘러싼 협소한 쟁탈전으로 가면 우리가 이길 수 없고, 회사가 공장을 포괄한다면 역으로 우리가 이를 사회적으로 포위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저들의 전략을 거꾸로 돌려줘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뚜렷한 명분, 단순한 사실관계의 설득력
그러한 전략에 입각한 전술 중 특히 주요했던 것이 철저하게 준비한 채증조였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이나 사진 등으로 용역깡패의 폭력을 굉장히 많이 채증했어요. 이게 SJM 사태를 언론에 알리는 데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언론사하고 관계는 단순하더라고요. 딴 데처럼 쌍방 폭력 논란이 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방적으로 맞은 거잖아요. 거기다가 이런 저런 회사의 실수도 겹치면서 명분 우위가 확실하고 사실관계가 단순하고 명쾌한 거죠. 물론 다른 측면들도 영향이 있었지만, 이런 요인들로 인해 우리 문제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폭력에 맞서는 전략적인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 경기지부는 2010년부터 지역연대 복원을 위한 사업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펼쳐왔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간부들이 지역에 나가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갖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성과가 이번 투쟁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천막 농성을 하는데 낮에는 SJM지회 조합원들이 지키고 밤에는 경기지부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이 지키고, 또 경기지부 전 조합원이 월 2만 원씩 투쟁기금을 결의해서 투쟁 후 첫 월급날 SJM지회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만든 돈으로 100만 원씩 생계비를 지급했습니다. SJM지회 조합원들은 그 돈으로 경기지부 조합원들에게 술 한 잔 사고, 경기지부 조합원들은 고맙다고 천막으로 통닭 사들고 오고요.
정치권들도 발 빠르게 대응해준 측면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이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함께했을 텐데, 어쨌든 민주통합당 은수미 의원과 장하나 의원 등이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청문회까지 열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측면이 있습니다. 직장폐쇄라는 게 조합원들이 생계에 대한 공포를 잘 견디는가, 회사 측이 생산 중단으로 인한 압력을 잘 견디는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 싸움에서 정치권에서 회사가 대체 생산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SJM 공장에서 핵심 인력 12명이 왔는데, 이의 투입을 불법이라 제기해서 돌려보냈죠. 대체인력 투입도 못 하게 하고요. 한편, 직장폐쇄 초기 사측이 생산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사실 이런 거에 조합원들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을 통해 우리가 실제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혹시 바이백으로 부품을 들여와도 다 확인할 수 있게 되니까 그런 공작이 힘을 못 쓴 거죠
그리고 또 완성차지부의 협조가 필요하니까 직접 가서 선전전을 했어요. 완성차에서도 호응을 잘해주셨고, 선전물을 어설프게 만들어 갔는데 다시 편집해서 함께 뿌리기도 했고요. 그런 기운들이 앞으로 쭉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쌓여온 역사가 있더라고요. 유성, KEC, 쌍용차 등 그동안 당해온 게 굉장히 많았잖아요. 그것들이 이번에는 해결해야한다 이런 생각으로 모이는 것 같더라고요.
다시 쓰여야 할 노조파괴 대응 매뉴얼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SJM지회 간부들이 다음 이야기를 꼭 해달라고 당부했는데요. SJM지회에는 서로 분열하는 현장조직들이 없습니다. 전 조합원들이 단결해 있고, 물론 조금씩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활동가들은 모두 선봉대 등으로 뭉쳐서 움직이고 있죠. 특히 전임 집행부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지경까지 당신들이 뭐 했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는데, 이번에 SJM에 용역깡패들이 들어왔을 때 다친 사람들의 대부분이 전직 간부들이었어요. 전직 지회장이나 위원장했던 사람들과 임원을 했던 사람들이 도망가다 다친 게 아니라 가장 앞장서서 싸우다 다쳤고, 그렇게 현장에서 헌신하고 싸우는 선봉대들의 투쟁을 보면서 신뢰를 가질 수 있어서 투쟁에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투쟁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노조파괴 시나리오 대응에 왜 그렇게 실패했는가를 통렬히 곱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응 매뉴얼 이런 것도 만들고 했는데 SJM 투쟁을 계기로 다시 써야한다고 봅니다. 이 투쟁 처음 시작할 때 여기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중단시키자, 새로운 매뉴얼을 쓰자고 얘기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죠. 그러면서 불법을 제안하는 컨설팅회사 등을 포함한 폭력의 카르텔 등이 사회 의제화되어 국회에서 다뤄지고, 또한 KEC나 유성 등의 사례가 다시 재조명 받고 있고,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이화의료원 이런 데서 고맙다고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서 표현할 때 ‘SJM 효과’가 널리널리 퍼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조합원들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심어주려면 그런 것들을 굉장히 많이 얘기해 줘야 합니다. 실제로 SJM 투쟁이 의제화되면서 용역깡패를 투입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중단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당신들 SJM지회 조합원들이 하는 것은 SJM 민주노조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에 지금까지 드리워있던 암흑들에 구멍을 내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득했습니다. 실제로 조합원들도 우리가 전체 노동운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은 잘 안 흔들리게 되잖아요. 내 것 지키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소부품업체조직에서 확산돼야 할 ‘SJM 효과’
그 다음에 이 사안하고 중소부품업체 노동운동하고 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주최 측에서 제시한 질문지에 있으니 답하면, 저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구조 측면에서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즉,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 유연 표준화 – 턴키 서플라이어 모듈 생산네트워크 등을 구축했고, 이는 하청 주는 일부 회사 외에 수직 계열화된 외부 노동시장의 확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부품사 노조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았다는 거죠. 이에 따라서 자본이 완성차의 경우에는 물질적 보상 강화를 통한 노동조합 포섭으로, 부품사의 경우에는 저항적 노조 무력화와 친(親)회사적인 노조의 건설로 노사관계를 구조화하는 경향이 형성됐고요. 여기에는 무노조 부품사에서 노조 설립 차단과 비정규직 저항 분쇄 전략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렇듯 부품사 노동조합들은 불안정한 지위에서 친회사적인 노조로 갈 것인지 아니면 저항하다 깨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데요. 이에 따라 산업 전략과 그에 따른 지위의 변동과 불안정성, 그것이 미치는 노사관계의 효과 등 전반적 차원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전략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자동차산업을 지배하는 현대그룹의 노동 통제 전략이 무엇인가 보면, 자기 안방에서는 평화를 유지하고, 바깥에서는 전투를 벌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선별해서 받거나 내치고 있거든요. 때문에 일부 중견 부품사들의 경우 완성차와 유사한 포섭전략의 대상이 되고,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부품사는 타격의 대상이 되며,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경우에는 장기투쟁 사업장이 됩니다. 무노조 사업장과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아예 배제 대상이 되고 있고요. 이러한 흐름들에 금속노조 차원에서 포괄적으로 대응전략을 세우고 돌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주간 연속 2교대제의 경우 완성차에서 합의가 만들어지면서 두원정공, SJM 등 더 좋은 조건으로 돌파한 사례들을 묻어버리고 있는데요. 이렇듯 지배적인 완성차 프레임에 갇혀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돌파구가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현재 완성차 노조와 부품사 노조의 결합 구조는 매우 취약합니다. 이를 획기적으로 보완할 가능성을 꾸준히 찾아야 하지만, 당장 그것이 어렵다면 지역 연대 등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시급히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SJM지회와 경기지부의 향후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앞서 ‘SJM 효과’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SJM지회에서는 우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업들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SJM 투쟁의 교훈 등을 정리해서 영상도 만들고, 교육도 다니고 해서 많이 퍼트려서, 다른 사업장 투쟁에서도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와 더불어 SJM지회는 아주 훌륭한 일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1인당 5만 원씩 매달 걷기로 했고, 이미 2억 원 넘게 투쟁사업장 지원 기금을 걷었습니다. 또 그런 사업장을 순회 지원가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임단협은 잘 해결될 거라고 보고요. 다음으로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부품사에 대한 기획조사사업을 실시하고, 산업 차원의 전망을 구체화하면서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자 합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전체 사업장에 대한 기획진단을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상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발표2에 대한 질의응답]
사회자: 발표 감사합니다. 먼저 SJM 사례에 대해서 간단하게 질의응답을 하고, 이후에 종합토론을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례 발표와 관련해 질문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질문자: 대응 매뉴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조건준: 기존 대응 매뉴얼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회사가 어떻게 대응하는가 혹은 회사의 대응양식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데, 노조가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는 다루지 않고 있어요.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넘어서, 이데올로기나 조합원 심리적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SJM 투쟁 시작할 때, 우리가 이겨야 할 것은 저들의 용역깡패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했었거든요. 우리가 공포에 지면 결국 용역깡패들에게 굴복하게 됩니다, 라고 설득하면서 “공포를 넘어가자”는 구호를 시작했고, 현장으로 돌아갈 때는 적개심이나 분노가 아니라 자부심을 갖고 가자고 했었습니다. 실제로 적개심만을 가지고 현장투쟁에 임하면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대응할 때나 어용노조에 대응할 때도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하죠. 이런 조합원들의 심리 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해서 새롭게 위치 지우고, 조명하는 노력이 대응 매뉴얼에 있어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SJM지회처럼 중견노조임에도 현장조직이 없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가요?
조건준: 대공장 노조들은 일반적으로 현장조직이 있죠. 그렇지만 중견부품회사 노조는 현장조직이 별도로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활동가들은 주로 실천단 조직으로 하나로 뭉쳐 있어요. 물론 그 안에도 서로 다른 정치조직에 속해 있는 개인들은 있지만, 따로 조직적 질서를 만들어 그러한 구조를 깨지는 않거든요. 어쨌든 경기지부의 중견부품업체 노조들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질문자: 청문회를 보면서 SJM 경영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고분고분한 것을 보고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용자들이 청문회장에 가면 보통 발뺌하고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사측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던 건가요?
조건준: SJM 청문회는 사실 문제가 거의 해결된 후에 열린 겁니다. 때문에 SJM 투쟁 당사자들은 청문회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청문회 전에 회사가 항복했고 노사합의가 이뤄진 상태라, 회사 측에서 이게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답을 한 측면이 있죠.
[지정 토론2]
사회자: 이제 임영국 화섬노조 사무처장님의 토론을 듣겠습니다. 오늘 토론자들한테 여러 모로 혼란을 드려 죄송한데요. 어쨌든 임영국 사무처장님을 모신 것은 이러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비단 금속만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고민거리라고 생각했고, 또 같은 제조업에서 유사 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생각하시던 문제의식을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임영국: 저도 갑자기 토론자로 섭외를 제안 받아서 나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어쨌든 나왔으니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두 사례 중 특히 만도는 금속노조에서 주축이 되어온 사업장인데, 금속과 화섬이 합쳐진 제조산별노조를 제안했던 입장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충격이 컸습니다. 물론 SJM 사례도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만도 사례를 중심으로 오늘 토론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장조직이 그렇게 쉽게 입장을 꺾은 이유는?
제가 이 사례에 대해 주체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의문이 드는 게 일반 조합원들도 아니고 활동가집단이나 정파가 그렇게 쉽게 입장을 바꿨는가 하는 점입니다. 현장정파가 서너 개가 있었다고 그러셨는데, 우리가 지향하고 고민했던 현장정파 활동가들의 면면이 과연 이런 건가 하는 성찰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또 실제 이들이 입장을 바꾼 과정은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파악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조합원들이 공포 때문에 무너졌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캐고 들어가 보면 다른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많은 조합원들이 갑작스럽게 무너진 것은 결국 나를 방어해줄 것이 없다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되는 공포 때문이었던 것 같고, 이미 다른 조직들이 힘도 못 쓰고 그렇게 당했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버텨서 더 깨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체념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공포와 체념은 주체 단위들로부터 명확하고 폭넓은 전망이 주어진다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거든요. 어쨌든 탄압이라는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거니까 새로운 시작은 결국 우리 노조 활동을 다시 세우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장폐쇄와 용역 침탈 등의 시나리오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와 체제를 갖추지 못한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문제점까지도 짚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저는 이런 문제를 대함에 있어 옳고 그름을 잘 따지는 것보다는 결정하는 것을 집행하고 실천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누가 그것을 집행하고 실천할 것인지 고려되지 않은 시시비비는 텅 빈 주장이라는 겁니다. 다음으로,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조합원들에게 사회적 자부심을 만들어주는 일상활동이 대단히 중요하게 됐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상활동이 활발해야만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힘이 모일 수 있고, 또 조합원들도 자기가 사회적으로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좀 더 열심히 싸울 수 있거든요.
조합원들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봅니다. 이는 산별노조가 신뢰를 잃다보니까 개별화된 조합원들이 앞에서 말씀드린 공포와 체념을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상활동에 대한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이 좀 더 활발히 생산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노동조합인가 되물어야
마지막으로, 저는 노동조합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이건 민주노조운동 진영 모두의 고민일 텐데요. 화섬이 금속에게 제조산별로 조직 통합을 하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조산별이라고 하면 아직 조직되지 않은 제조업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진행되는 사업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조합원 규모가 큰 금속노조와 조합원 규모가 작은 화섬노조의 통합으로 바라보더란 말이죠. 간혹 왜 제조산별이냐 금속노조로 화섬이 들어오면 안 되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하고요.
조직통합이란 미조직 노동자에게 열려 있는 노동조합을 우리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모든 것을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고 전망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제도화하는 것을 넘어서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사람이 하는 일이죠. 그런 분위기가 중앙에서부터 지역까지 잘 형성돼 있을 때, 저들이 공포를 자극하는 공세를 펼치더라도 신뢰를 가지고 굳건히 이겨내지 않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 연대의 문제도 실질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역연대 하러 갈 때 저는 ‘이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노동자들끼리의 연대를 넘어서는 지역사회적 연대도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최근 K2노조 투쟁을 통해 새삼스럽게 경험했거든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K2 투쟁에 일상적으로 도움을 주신 지역사회의 이웃들을 통해서 말이죠. 어쨌든 트위터를 통한 소통 등 연대의 외연을 넓혀내기 위한 실천과 전략, 전술들이 활발하게 공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합 토론]
사회자: 화섬노조의 K2 투쟁 사례도 들어볼 이야기가 많은데, 오늘 자리에서는 발표된 사례를 통해 민주노조운동 관련된 고민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오늘 노동포럼은 사례 발표회 성격이 강합니다. 각 사례에 대한 질문을 포함해서 발표자 및 토론자와 다르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분들 의견을 듣겠습니다.
질문자: 사례 하고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조건준 부장께서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 관련 부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