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하반기 환노위, 전쟁이냐 평화냐

노동사회

2013년 하반기 환노위, 전쟁이냐 평화냐

구도희 0 4,101 2013.09.04 03:17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아래 환노위) 하반기 활동이 안개 속이다. 환노위의 올해 전반기 실적은 비교적 화려했다. 
환노위는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60세 정년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했다. 파견노동자의 차별시정 효력을 확장하는 내용의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파견법 개정안에는 동일 사업장에서 한 명의 파견노동자가 차별 인정을 받았을 때, 그와 동일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 모두의 차별적 처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확정된 시정명령의 효력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은 비록 재계의 로비를 받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의해 법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수위를 환노위 통과안보다 낮추는 내용으로 수정됐지만, 화학사고 발생 시 초기 대응체계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화학물질에 대한 업체의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만들어졌다. 
4월 임시국회를 마친 환노위 여야 의원들은 미뤄온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의기양양했다. 새누리당에서는 정년연장법 통과의 주역이 누구인지를 두고, 의원들끼리 성과를 가져가기 위한 눈치싸움이 벌여졌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전체 사업장을 대상으로 정년연장을 적용시킨다는 안을 관철시킨 것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한 찜찜함을 달래는 분위기였다.
 
4월 정년연장법 통과 뒤 6월 마무리는 ‘빈손’ 
4월24일 임시국회의 마지막 환노위 전체회의를 마친 한 여당 의원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1년 할 일을 4월에 다했다”고 말했다. 해당 의원의 이날 발언은 족집게 예언이 됐다. 
6월 임시국회에 들어간 환노위 여야 정치권은 지루한 공방으로 시간을 보냈다. 새누리당은 ‘고용률 70%’ 관련법의 우선 처리를 목표로,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주요 법안들의 논의를 뒤로 밀어 버리는 전략을 썼다. 야당은 노동시간 단축․정리해고 요건강화 등의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새누리당이 앞세운 법안들을 반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하는 여야 의원은 ‘4대 4’로 동석이다. 표결 대결이 아닌 합의제로 운영된다. 결국 6월 임시국회에서 환노위는 고용노동부 소관 법률을 단 한 개도 처리하지 못했다. 
9월 정기국회를 준비하는 여야는 벙어리 흉내를 내며 상대방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9월 이후의 환노위도 6월 판박이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새누리당은 6월에 실패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상 학력차별금지 및 기회균등 보장에 관한 법률, 고용정책기본법 등 고용률 70% 관련법과 함께 ‘시간제 일자리’ 관련법의 논의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정리해고 요건 강화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관련법 개정을 우선 처리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올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와 삼성전자서비스 위장도급 논란으로 촉발된 간접고용 문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른바 ‘간접고용청문회’ 추진도 공언하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직접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발의도 준비 중이다. 
 
하반기 환노위 태풍의 눈, 통상임금 논란
새누리당이 ‘통상임금 카드’를 꺼내들 경우 하반기 국회의 태풍의 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전반기에 통상임금에 대해 비교적 말을 아껴왔지만 최근 당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노․사․정 대화를 지켜보자던 새누리당은 최근 입법화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임금 산정 범위 논란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대니얼 애커슨 GM회장과의 만남 이후 촉발됐다. 당시에는 청와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손볼 수 있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통상임금 산정 범위를 새롭게 규정할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속도전은 없었다. 청와대가 속도전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법학계를 중심으로 한 통상임금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시행령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일정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최근 행보도 눈길을 끌고 있다. 대법원은 통상임금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9월5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통상임금에 대한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시선이 많다. 대법원은 1995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임금은 기본급 등의 교환적 부분과 복리후생비 등의 보장적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임금이분설을 폐지했다. 복리후생비라 하더라도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나오게 된 근거다. 사실 1995년 판결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늘어난 노조들이 파업 등 쟁의행위를 벌이는 것에 칼날을 들이대기 위한 성격이 짙다. 노동계에서는 임금이분설 폐지의 한 배경으로, 파업에 참여하면 기본급은 물론 복리후생비도 한 푼 받을 수 없다는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법원은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최근의 상황이 1995년만큼 급박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먼저 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통상임금 문제를 입법으로 풀려는 이유는 근기법 시행령 개정 이후의 효과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새누리당이 어떤 법안을 들고 와도 환노위의 역학구도상 관철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쟁이 붙으면 통상임금에 대한 정부․재계의 목소리는 보수언론을 통해 야권․노동계의 목소리보다 훨씬 비중 있게 전달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노조의 힘이 약한 상황인 만큼, 여론화 작업이 이뤄지면 정부가 근기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도 쉽고, 법원도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것에 부담을 덜 느끼게 된다. 
현재 환노위에는 통상임금과 관련한 2개의 근기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통상임금을 “근로자에게 소정 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되는 금품”으로 정의했다.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을 통상임금으로 보는 법원의 판례를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심 의원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사전에 정한 근로 대가는 모두 통상임금”이라고 폭 넓게 정의한 법안을 내놨다. 
 
노동시간 단축·정리해고 요건 강화로 접점 찾나
환노위 여야의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대표적이다. 환노위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에 합의했다. 근기법상 근로시간 정의에서 ‘1주’를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로 개정하기로 했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아 법에서 정한 연장근로 시간 한도인 주 5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새롭게 정의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 도입 시기를 두고 여야가 이견을 표출하면서 법안 통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근로시간저축휴가제를 근로시간단축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를 반대하는 야당과의 향후 논의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의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도 피해가기 어렵다. 새누리당에서 2건, 민주당․정의당에서 각각 1건의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이 중 주목할 법안은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김 의원의 개정안은 사용자의 정리해고 회피 노력 내용을 6가지로 제시한 뒤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경우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정리해고자에 대한 우선 재고용 범위도 확대했다. 현행법은 노동자가 담당했던 업무와 같은 업무를 할 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해고 노동자를 우선 재고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 개정안에는 ‘같은’ 업무뿐만 아니라 ‘관련이 있는’ 업무도 추가했다.
야당도 김 의원의 개정안 통과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반대했다. 재미있는 것은 법안을 발의한 김 의원 스스로도 자신의 법 처리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김성태 의원 법안 원안을 통과시키자는 데 왜 반대하냐”고 항의했다. 야당 의원들의 이 같은 압박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입법 로비도 본격화할 듯
노동계의 움직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국회를 대상으로 한 입법로비는 한국노총이 민주노총보다 활발하게 벌이는 편이다. 전반기 한국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정리해고 요건 강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및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수정 또는 폐지 등을 국회에 요구했다.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은 환노위 신계륜 위원장 등 여야 관계자를 직접 만나 설득작업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타임오프․교섭창구 단일화와 관련한 한국노총의 주장을 일정 수용해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입김은 하반기 국회에서 조금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협약에 참여하는 등 노사정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상태다. 고용률 70%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이 한국노총을 끌어안으려는 이유다.
오랜 지도부 공백 사태를 해결한 민주노총도 하반기 국회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 관계자가 국회를 찾아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관련법 논의 재개를 여야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아니면 평화’ 어떤 것을 택할까
이처럼 하반기 환노위는 여야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시간제일자리 등 고용률 70% 관련법과 통상임금 논의를 앞세울 새누리당과 간접고용․특수고용직 등을 의제로 삼고 싶어 하는 야당과의 간극이 너무나 큰 상태다. 양측이 해당 의제들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별로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사실상 합의제로 운영되는 환노위는 여야가 접점이 맞는 문제는 완급을 조절하는 선에서 통과시켜 왔다. 반면 쟁점이 있는 경우에는 아예 처리를 미뤄놓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하반기 환노위 책상에 올라올 의제들은 후자의 경우에 가깝다. 어느 쪽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 더 절실하고 적극적으로 나오느냐에 따라 하반기 환노위 승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양측 모두 손에 피를 묻히는 전쟁을 회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5월 환노위 여야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임위 소속 15명 의원 중 6명이 “상임위 이전을 고려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환노위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 있는 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국회는 통상 2년에 한 번 상임위 의원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한다. 19대의 경우 내년 상반기가 해당 시기다.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열린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국회 활동은 사실상 올해 말까지라는 게 중론이다. 환노위 활동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공세보다 방어 위주의 활동 전략을 펼칠 경우 하반기에도 빈손 환노위가 재현될 수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