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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권영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노회찬 前 진보신당 대표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사회 :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일시 : 2011년 10월 5일 오후 4시 ~ 6시 30분
장소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회의장
주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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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보: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저희가 먼저 기획을 했는데,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이 와서 공동으로 주최를 하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행상 저희들이 준비한 내용을 먼저 논의를 하고, 뒤에 가서 한겨레 쪽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진행 순서를 말씀드리면, 우선 현재의 사회정치 상황을 진단하고, 다음으로 그런 속에서 진보진영의 장단기적인 좌표 설정을 살펴본 뒤,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먼 저 사회정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기존의 정치질서와 사회운동이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당정치가 불신받고, 민주주의가 희화되며, 노동운동이 외면받고 있다는 관찰들이 종종 제기됩니다. 이러한 속에서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개념 정의와 세력 경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흐름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개혁진영으로 분류되었던 세력들도 최근에는 진보진영을 분류되고 있기도 하다는 거죠. 또한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그러한 새로운 흐름들이 정치적으로 분출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즉 새로운 흐름들의 근원은 어디이며, 중심세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흐름들이 어디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시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철수 현상과 노동 없는 민주주의
최장집: 제 자신이 학문적으로 노동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노동정치나 노동운동을 실제 하는 사람이 아닌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평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우선 안철수 현상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 한국의 정치적 변화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싶습니다.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갖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의 하나인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로서 시장에서 대표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노동자들이 집단으로서 조직되어 집단적 투표권으로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노동자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큰 장점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이후 그런 측면이 거의 부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노동자라는 사회 집단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체 정당정치체제에 굉장히 특징적인 양상을 부여합니다. 이를 테면 사회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보와 보수의 정의와 경계를 애매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거죠. 이러한 조건이 안철수-박원순 현상이 근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지 않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정당들도 그 정도가 허약하기 때문에, 정당 밖에서 이른바 시민 내지는 시민사회라는 담론을 통해서 정당정치로 대표되지 못한 불만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세대’의 문제인데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고용확대를 실현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 또 그리스나 스페인같이 복지체제가 젊은 세대의 고용확대에 기여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최근 프랑스, 영국(폭동이 거의 없었던 영국에서도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미국 도처에서 금융주도의 세계화를 타깃으로 시위가 들끓고 있죠. 그런데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렇듯 청년 문제로 나타나는 것은 결국은 노동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생산체제와 구용구조의 문제이고, 그러한 문제점들의 피해가 청년세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죠. 이를 세대 간의 갈등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국 정당체제에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어떤 정당에게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한 꺼풀 벗기면 노동의 문제인 청년의 문제가 정당체제가 아닌 시민사회의 장에서 표출되고 있는 거죠. 나중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데는 담론상의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실제 정치를 하시고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권영길: 최장집 교수가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고 포괄적으로 지적하신 부분에 저도 동의를 합니다. 최근 진보정당 통합 과정에서 저도, 노동 없는 진보정치는 없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라는 점을 주장했는데요. 우선 각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 그리고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 대한 박원순 후보의 승리를 두고 언론에서는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거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내용에 대체적으로 동의를 합니다만, 이 현상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정당정치가 존재했는가
과연 우리나라에 정당정치가 존재했는가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정당이라면 강령과 당원을 제대로 갖춰야 하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존 보수정당들에게 그런 부분이 있었냐는 거죠. 그런 정당들이 이끌어온 정치는 패거리정치, 금권정치, 지역주의정치, 보수 일변도의 정치였습니다. 저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 금권과 패거리문화를 주축으로 하는 보수정당들은 청산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흐름들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최 교수가 지적하신 것처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노동의 문제, 복지의 문제 등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점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보정당들이 노동 없는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 보수정당들과 차이가 없지 않느냐 하는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안철수 현상이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구조적 문제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현 단계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절대적 거부가 국민적으로 합의된 상태에서,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이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까 다른 쪽으로 바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회찬: 안철수 현상에는 현실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섞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인정하는 것은 이 현상에, 정당, 인물, 정치문화 등 현실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점이죠. 따지고 보면 오늘의 정치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힘든 과도기적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른바 민주화 이전에는 민주주의냐 독재냐를 가지고 정치가 자웅을 겨루던 시기가 있었다면, 87년 6월 항쟁으로 합의된 점진적 민주화 국면에서 누가 이를 이끌고 가느냐를 두고 지역 패권을 기반으로 하는 ‘3김 정치’가 펼쳐졌죠. 그리고 3김 시대마저 막을 내린 노무현 정권 등장 이후의 정치는, 독재 대 민주도 아니고, 지역패권 중심의 정치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도 아닌, 어정쩡한 과도기 상태로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속에 지난 10여 년, 더 길게는 87년 이래로, 최 교수께서 말씀하신 노동 없는 민주주의 상태가 계속돼 왔다고 봅니다. 어찌 보면 87년 6월 항쟁의 성과는 어느 정도 계승됐는데, 바로 뒤 벌어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는 그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반영이 잘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5번의 대선에서 6월 항쟁에 앞장섰던 분들이 3번이나 당선된 반면, 노동자대투쟁에 앞장섰던 분들이나 조직들은 지금까지도 감옥을 드나드는 상황인 거죠. 그런 점에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달리 표현하면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제대로 만나는 것일 텐데, 어느 곳에서도 그런 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사람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한나라당은 밉고, 민주당은 싫고, 진보정당은 못마땅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어디가 낫다는 생각은 있지만, 미래를 의탁할 만한 희망적인 대안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다시 말해, 많은 국민들에게 현재의 정치지형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타파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권 내에서 현상 타파를 위한 힘 있는 흐름이 안 생기니까, 정치권 밖에서 돌을 던져 고요한 물에 파문을 일으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거고, 그것이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구체화된 거죠.
‘글로벌 앵거’의 뿌리로서 노동 문제
김영훈: 언론에서 ‘글로벌 앵거’라고 표현하던데요. 월 스트리트에서 시위를 하는 친구들에게 당신들의 요구조건이 뭐냐고 물으니, 우리 요구조건 몇 개 들어준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지금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조직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저항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존 질서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체제라고 봅니다. 여기에 자신들의 불안과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부정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먹고 사는 문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최근 벌어진 아랍 민중들의 저항도, 일각에서는 민주화 시위 이후에 노동자 투쟁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앞뒤가 바뀐 겁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점이 먼저고, 이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을 갈아엎자, 그것이 친미정권이든 반미정권이든. 이렇듯 최근의 세계적인 저항은 노동이 희화되고 분절된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노동의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는 정치적 무능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철수에 대한 열광은, 먼저 그의 태도,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는 열린 태도로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인 것에 근거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서 성공지상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했던 그의 아름다운 실천과 일관된 길에 대한 지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2004년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했을 때 국회의원들이 받았던 열광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더 높은 특권을 누릴 수 있음에도 언제나 노동자들과 함께 낮은 편에 서고, 또 국회의원이면서도 노동자 평균 임금만 받는 이런 실천에 대한 열광들 말이죠. 그렇지만 노동 없는 진보는 결국 무너졌고, 그 빈 공간을 안철수 현상이 채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 는 이러한 공백이 정당정치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게도 있다고 봅니다. 이를 테면 ‘희망버스’에서 민주노총이 주변화 되고 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민주노총이 기꺼이 희망버스에 올라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과도기의 혼란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 희망버스에 모인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인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노동자로서 자각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도기에 있는 그대로 몸을 싣고 혼돈을 정리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이고 노동운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냉소와 대안 부재가 만들어낸 안철수 현상
권영길: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조금 더 덧붙여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안철수 현상이 금융자본주의가 불러온 구조적 위기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지만, 안철수라는 사람을 두드러지게 만든 데는 좀 더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이 두 가지 작용했다고 봅니다. 먼저, ‘박근혜 대세론’입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을 넘어서는 인물이, 문재인 씨가 거론되기도 합니다만, 정치권에서는 현재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한 가지 요소입니다.
다음으로,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현실 정치인의 인물상 문제입니다. 아주 부정적이거든요. 거짓말 하는 사람들, 당리당략적인 사람들,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 놀고먹고 사는 사람들…… 그런데 국민들에게 안철수는 놀고먹는 정치꾼이 아니라 백신이든 뭐든 스스로 뭔가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런 부분이 안철수 현상에 깔려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흐름은 정치세력 교체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을 합니다.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것처럼 뭔가 만들어내는, 일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흐름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정당정치를 거부하는 이들이 지금의 구도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최장집: 저도 다른 각도에서 조금 추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안철수-박원순 현상이라는 것은 기존의 보수와 진보로 갈린 정당 갈등 축을 가로질러서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이것을 정치학적으로 보면, 갈등구도를 가로질러서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현상, 즉 전형적인 포퓰리즘 현상입니다(좋고 나쁘다는 평가적 개념이 아니라, 서술적으로 말하는). 안철수 씨나 박원순 씨나 정치적으로 검증된 게 없는 상태에서 폭발적인 지지를 모은다는 것은, 기존의 정당들이 대표하지 못한 문제들을 이들은 할 수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다는 거잖아요.
추상적 ‘시민’ 담론의 공허함
이 현상을 뒷받침하고 있는 시민과 시민사회 담론의 문제에 대해 간단히 지적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시민이나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정치에 있어서 중심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하면 시민 개인으로서 투표하는 수준이 있고, 사회경제적 공동 이해를 공유하는 이들이 집단으로 결집해서, 집단의 일원으로 투표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민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추상화해서 말할 때는 시민 개인의 정치 참여만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민이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추상적이고 분화되지 않은 개념으로서 사용되는 거지요. 노동자, 교사, 공무원, 은행원, 자영업자등 사회집단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아우르고 있는 겁니다.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분화해 결집되었을 때 정치적 힘이 생겨나는 것이고, 이 결집된 힘을 선거의 장에서 사용하여 그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많든 적든 정책결정 과정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민과 시민사회만을 추상화해서 말하는 것은, 내용적으로 공허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즉, 그 말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누구를 대표하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전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 담론이 과거 시민사회에서 중심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아 왔는데요. 이 담론은 민주화 과정에서는 민주화운동에 복무했지만, 민주화 이후 다양한 사회집단들의 갈등적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부분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에서는 구체적으로 문제와 이슈를 적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시민, 시민사회라는 말과 민주 대 반민주 담론은 서로 짝이 되는 것이죠.
투표를 통해 정치적 다수 된다고 해서 모든 집단들의 이익과 요구가 골고루 대표될 수는 없습니다. 정치학에서 ‘부분 체제’라는 개념으로도 표현되듯, 민주주의 사회는 여러 층위, 작동원리가 상이한 여러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선거를 통해 다수가 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시민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담론은 이런 사회의 여러 부분을 반영하는 데 있어 구체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시민과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구체적인 수준으로 분화되어야 하고 명확한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원보: 네 분 모두 뉘앙스 차이는 있기는 합니다만, 최근 나타난 정치사회 현상에는 기존 체제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고, 그것은 결국 노동에 대한 부정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서 공감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우리 진보세력의 좌표는 지금까지 어떠했고 앞으로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하게 될 텐데요. 특히 최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난관에 부딪쳤는데, 상황 변화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오히려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조건에서 진보세력들이 지향해야 구체적인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로 민주노동당’을 두려워마라
권영길: 진보통합이 여러 사람들이 주목하는 의제가 됐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으로서) ‘도로 민주노동당’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도로 민주노동당을 두려워하면 노동 없는 진보정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문제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흘러가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최 교수께서 말씀하신 잘못된 정치담론에 빠진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창당 주역은 어쨌든 민주노총입니다. 노동자가 중심에 선 진보정당이었습니다. 그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민생정치를 실제적으로 담아냈던 정당이었습니다. 그 중심 내용으로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죠. 또한 비정규직 문제를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여 안아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세상인의 문제도 해결하려고 노력해온 정당이었습니다.
이렇듯 과거 민주노동당은 좌표 설정을 잘했지만, 다시 말해 잘못된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설정해 놓은 목표를 추진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중간에 멈춰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치 민주노동당의 애초 좌표 설정이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틀을 바꿔야 한다, 노동자들마저 외면하는 정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당의 구성요소뿐만 아니라 정책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만약 민주노동당이 분당이 되지 않았다면 2008년 총선에서 17대를 능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당 과정을 겪으면서 퇴보한 것이 문제이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당의 길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회찬: 앞서 안철수 현상이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전에도 우리는 여러 정치현상을 경험했죠. 예를 들어, 성장 신드롬으로 사람들을 모아냈던,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박정희 현상’이나, 약자가 강자를 꺾는 탈권위주의의 카타르시스를 줬던 ‘노무현 현상’도 있고, 또 대단한 착시현상이긴 했지만 샐러리맨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처럼 보였던 ‘이명박 현상’도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정치 현상들에서처럼, 안철수 현상에도 일종의 허상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고 봅니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취업도 잘 안 되는데 나도 저렇게 되었으면, 우리 아이도 저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죠. 사실 안철수 씨는 선거에 뛰어들기 이전에도 아이들의 롤 모델로서 부모들의 매우 광범한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 현상이 역사 발전을 거스르는 반동의 측면이 큰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현실 문제를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런 걸 바란다, 하는 국민들의 암묵적 요구가 그 안에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결국 안철수 현상은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부재가 만든 것이고, 안철수 현상 안에 담긴 국민들의 희망은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듦으로써 실현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시류 따른 좌표 변경은 진보정당 ‘정치 미아’ 만들 수도
11 년 전 민주노동당이 창당할 때 당시 정세 속에서 진보세력들이 나아갈 바로 우리가 제시한 좌표 설정은 지금에 와서 보더라도 매우 과감한 것이었고 적절했다고 봅니다. 권영길 의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좌표 설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행하는 데 있어서의 무능력과 시행착오, 오판, 미숙함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10여 년 해서 지지율 5%라면 그 좌표의 부적합함이 확인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현실이 변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른바 진보세력의 외연을 넓힌다는 이름으로 좌표를 오른쪽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조적인 이념에 스스로를 가두고 정치적 행위라고 보기 힘든 외곬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히려 한국 정치에서 제3세력으로 출발해서 10년 이상 세력을 유지하고 뿌리를 내린 것은 진보정당이 처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소위 ‘꼬마 민주당’이든 국민당이든 제3세력으로 시도한 것은 모두 실패했음에도 진보정당이 그래도 버티는 것은, 이 진보정당을 통해 이해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잠재적인 세력이 이 사회에 굳건히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 세력을 대표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 오늘의 진보정당의 현실입니다. 저 역시도 함께하던 시절 우리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내걸고 각광을 받았지만 선거 때 외치는 것 외엔 그걸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을 위해 민주당의 힘이 필요하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진보정당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서 정체성의 혼란을 추구하는 경우, 중장기적으로 길을 잃고 정치적 미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과제는 지난 10여 년의 조직 및 정치적 운영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과 성찰을 통해 진보정치를 다시금 복원하는 데 힘을 집중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현상은 진보의 길을 재검토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진보가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 있는 진보정치 위해선 통합의 리더십 필요
김영훈: 좌표 설정과 관련해 이번에 민주노동당 내에 (국민참여당과의 통합 문제를 두고) 중대한 충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대중적 진보정당’이냐 ‘진보적 대중정당’이냐 하는 거였죠.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창당이 됐는데, 최근 안철수 현상을 반영해 (국민참여당과 통합하여)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전환하자는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전환은 유럽 사민당들이 ‘제3의 길’을 선택한 후, 충분히 현대적이지도 좌파적이지 않았다는 자기 평가를 남기며 몰락해갔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봅니다.
좌표 설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데 문제는 끌고나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노동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진보신당의 독자노선을 주장하는 동지들이나 민주노동당의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우선시하는 동지들은 공통적으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가 부담스럽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노동이 없는 진보정치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고, ‘통합적 지도력’을 통해 끌고나가는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분파 및 정파적 갈등과 한국사회의 중첩된 모순들을 정치영역에서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어야 진보세력이 국민들에게 수권세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브라질의 룰라가 노동자당 내 18개 정파를 조정하는 능력을 통해 국민들에게 인정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진보세력이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는 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이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보정치의 애초 좌표 설정은 옳았고, 그것을 끌고 나가는 힘은 노동에서 찾아야 하는데, 결국 그 핵심은 바로 민주노총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기득권 집단’이라고 매도당하든, 아니면 이명박 정권의 반노동적 공세에 맞서 제대로 투쟁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조직이라 비판받든, 여전히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편 제가 보기에 안철수 현상에는 성장 신화의 붕괴라는 측면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747 공약’으로 대표되는 목표지상주의적 성장 중심 정책으로 몰아간 것에 대해 일침을 하는 측면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오늘날 우리 진보정치도 목표지향주의적 활동을 제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바로 몇 년 후에 집권한다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목표를 세우고, 부작용을 일정정도 감수하고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식으로 하는 것은 진보의 가치와 불일치한다고 봅니다. 진보정당은 물론 집권을 위한 정당이긴 하지만, 하루하루 계단을 만들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우선해야 하는데, 과도한 집권계획은 진보의 길과 조금 다른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풀뿌리를 키울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정당의 좋은 계획들이 조그만 읍에서부터 시작해서 전국화 될 때 집권은 다가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최장집: 관찰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노력의 실패는 민주화 이후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했던 노동운동의 역사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매듭으로 느껴집니다. 그 전제 위에서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가 다음 단계에서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전망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저는 노동운동에 대해 조금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짚어보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타이밍이 안 맞는다고나 할까, 어쨌든 유럽의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시기적으로 불행한 조건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나 노선변경이 허용됐지만, 우리 같은 후발 국가들은 자본주의 경제환경과 정치적 게임의 룰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념적으로도 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나 마르크시즘 같은 지향점들이 있었는데, 한국의 노동운동의 발전 과정은 시기적으로 그런 이념들의 붕괴와 맞물리기 때문에 이 또한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20세기 전반기의 서구 노동운동의 이념적 좌표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고, 그 결과 정치적 현실주의가 결여된 이념 중심적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억압적 지배구조 아래서 노동운동이 그렇게 급진화된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지금의 노동운동이 여유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듭할 조건은 허용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정치적 현실주의 결여한 노동운동, 바뀔 수 있을까
정 치적 현실주의의 결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됩니다. 첫째는 그로 인해 자본주의 세계화에 따른 시장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신자유주의화되고 청년들의 취업이 구조적으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령화에 따라 복지국가에서는 연금 지출과 여타 복지비 지출이 늘면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아래서 생겨나는 일자리들은 고용안정이나 사회보장으로 보호되고 있는 기존의 일자리들과 너무나 다릅니다. 때문에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젊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이미 노조에 가입된 기존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서, 젊은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해야 할 인센티브가 매우 적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화와 더불어 유럽 각국의 노조 조직률은 급속하게 떨어져왔습니다. 요컨대 한국은 복지국가로 이행하기도 전에 이러한 조건들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노동운동은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특히 스칸디나비아 등에서 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그 체제하에서 무상교육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자문해 봅니다.
둘째, 정치적 현실주의의 결여로 인해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의 강령이나 정책 내용이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일차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에 대응하지 못해왔다고 봅니다. 그동안 너무 자본주의체제 수준의 이념문제나 민족문제 같은 거시적인 문제에 집착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노동자정당이라는 게 처음 의회에 진출했고 힘이 약한 상황에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집중하는 것도 버겁죠. 그런데 거대정당들도 어려운 전체 민족문제를 취약한 기반의 진보정당이 주도적으로 다루려고 나섰던 게 현실적인지 묻고 싶고, 그러한 현실성의 결여로 인해 노동 현장에 소홀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고 교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요. 김영훈 위원장 말씀대로 지금 조건에서는 결국 기존의 세력들에 근거해서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과연 기존의 정당구조와 조직과 이념정향을 바꾸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기존의 관성이나 타성을 극복하고 정치적 현실주의를 지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 비관적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노동운동의 경우, 총평과 사회당이 결국 붕괴될 때까지 노선을 바꾸지 못했거든요.
노동자들의 생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책 대안들을 가지고, 결집된 표를 바탕으로 기존 정당들과 타협을 통해 관철해나가는 정치를 처음부터 했다면, 한국 노동운동도 상당히 정치적으로 성장을 해서 민주노동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정도 하게 됩니다. 지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모습은 굉장히 초라한 상태입니다. 지지율이 5% 아래서 답보상태인데, 과연 이런 상태에서 어떤 새로운 전환이 가능한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이원보: 다른 분들이 진보세력의 좌표 설정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데 반해, 최 교수께서는 이념 편향적 운동이나 보편적 복지와 민족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과잉이 아니었나 하는 지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 게 좋을까요? 권 의원께서 간단히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지금 바로 필요한 구체적인 실천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들려주십시오.
진보통합 발판으로 2012년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목표
권영길: 최 교수께서 학자 입장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어쨌건 여의도 마당에서 놀고 있기 때문에 현실정치인의 입장에서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노동운동의 오류와 전망에 관해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답해야 할 질문은 결국 지금 진보정당에게 가장 필요한 현실적 과제는 무엇인가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년 총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는 결국 원내교섭단체 구성일 텐데요. 그렇다면 지금 상태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구성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저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가능하며, 그럴 경우 내용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진보정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는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이후 지금까지 쌓인 문제들을 풀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리라 보고 있습니다. 또한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인 보편적 복지를 실제적으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내교섭단체가 구성된 후의 진보정당의 보편적 복지의 길과 민주당을 포함한 보수정당들의 복지의 길은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진보정당의 보편적 복지는 부유세 신설 등의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 보편적 복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증세에 대해 대중적 거부감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원내교섭단체를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현 단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노회찬: 앞으로 한국 정치는 사회경제구조의 민주화를 어떤 폭과 속도로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지형이 갈릴 것이라고 봅니다. 양극화된 현실에서 많은 국민들이 도탄과 고통에 빠져 있음에도 지금까지 현실 정치는 지역과 기득권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끌고 온 측면이 강한데요. 그럼에도 오늘날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까지 포함해서 너도나도 복지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현실을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세력이 정치적으로 설 수 있는 개연성과 조건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현실 정치 속에서 녹여 내는 것은 주체들의 포부와 준비능력의 문제겠죠.
한편 10여 년 경험 속에서 초기의 관념주의와 이런저런 폐단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진보정치세력의 성장을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다른 세력들이 진보정치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기 때문에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조건에서 우리가 전면적 복지를 내걸고 있지만, 이는 당장 그렇게 시행해야 한다는 것보다는 복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구조적 방향을 제시하는 강령적 목표로서 내거는 측면이 강하죠.
재분배보다 노동시장의 1차 분배에 더 개입해야
그런 데 다들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복지는 2차 분배, 재분배란 말이죠.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1차 분배 과정에서 벌어지는 유연화나 수탈 등의 문제들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진보세력밖에 없습니다. 재분배는 이야기하지만 1차 분배의 황폐화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더욱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병은 병대로 계속 주면서 약을 충분히 줘서 낫게 하겠다고 주장하는, 책임지기 어려운 약속입니다. 오히려 진보세력들처럼 1차 분배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복지 수요 자체를 줄이고 건실한 복지로 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라고 봅니다.
권 의원께서 진보통합을 이야기하셨는데요. 통합 노력을 통해 분산된 진보세력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은 그동안 진보세력의 단결과 진전을 막아왔던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진보세력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과제와 시대적 역할들을 다시 해낼 수 있는 힘을 갖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최 교수께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유럽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뤄왔던 것을 우리가 쫓기듯 추진하고 있는 조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우리는 앞선 나라들이 경험하지 못한 좋은 조건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이 진보세력이 집권하기까지 20년 정도 걸렸는데 그렇게 빨리 가진 못하더라도, 서구가 대개 30, 40년 이상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 진보정치의 여지가 너무 협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권영길: 최 교수께서 이념적 운동에 지적하신 것에 동의하면서, 저는 지금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더 큰 문제는 정파적 활동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로 인해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치는 약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변질된 정파의 문제를 청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영훈 위원장이 앞서 진보정당의 과도한 집권계획을 지적하셨는데, 이는 민주노동당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거든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요즘 용어로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과 손잡고 연대하는 것이 집권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라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는데요. 제대로 된 진보의 길을 걸어가면 그것이 집권의 길이 되는 것인데, 이는 형식논리만을 보는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고집하는가
김영훈: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법은 두 가지 형태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최 교수께서 말씀하신 조합주의적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이1996~97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조직적 결의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만든 방법, 즉 조직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을 통해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선택한 이런 형태의 정치세력화는 지금 갈라져서 서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이 리더십을 발휘하지도 못했죠. 최 교수께서는 이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말씀하셨는데, 비관적인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봅니다. 유럽에는 없는 모든 악조건은 다 갖고 있죠. 분단된 국가에서 어떤 이념적 비전을 대중적으로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또 결선제도가 없는 극단적인 소선거구제의 허망함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이 런 조건에서도 민주노총이 우회로를 걷지 않고 직접적으로 부딪쳐 온 것은 진보정치를 통해서 노동을 대중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입장은 지금 갈라진 진보정당들을 반드시 통합시켜야 된다는 것이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정치의 도약을 이뤄내, 이를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진보적 가치의 생활정치와 민생정치를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 나왔는데 왜 최저임금 겨우 받는 비정규직이 되는 거야, 하는 분노를 받아 안아 해결해주는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 되기 위한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결론적으로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이 중심이 된 통합적 리더십을 통해 진보정당을 다시 합치는 것입니다. 지금 노동이 인기가 없어서 양 진보정당들에서 모두 배척을 당하고 곡절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의 염원을 빠른 시일 내에 투쟁으로 외화하여 11월, 12월까지는 통합에서 진전을 이뤄내고자 합니다.
최장집: 권 의원께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목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표를 결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노동자들의 표는 각 정당이나 지역적 연고에 따라서 상당히 분산되어 있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노동자들이 같은 후보에게 투표를 한다고 해도 이는 노동자들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께서, 나는 노동운동에게 빚진 것이 없다, 라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노동운동이 집단적으로 결집시킨 표로 당선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으로서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조직은 결집된 노동자 표로 여러 정당들과
타협해야
이 런 사례에서 드러나듯 노동운동의 정치적 과제는 표를 집단적으로 어떻게 결집시킬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확실한 표를 쥐고 있을 수 있다면, 원내교섭단체가 되지 않더라도 이 표를 가지고 기존의 정당들과 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상당한 정도로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노동운동의 이념에 대해 부정적으로 논평하는 이유는 아주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다양한 정치세력들과 타협해 하나하나 이루어갈 수 있다는 전망과 신뢰감을 조합원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런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없기 때문에, 지금 정책비전이라 제시되는 것들이 실현 가능성이 낮고 단지 구호로서만 얘기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이념적이라는 것이죠.
또한 이러한 이념적 편향은 또한 중산층의 지지를 끌어들이기 어렵게 만듭니다. 보편적 복지나 증세 같은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주장들은 상당수 투표자들이 겁먹고 도망가게 만드는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기 찍었다간 나라 재정이 지탱 못 하는 거 아냐, 유럽도 망하고 있는데 말이야,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고, 또 보수언론들이 융단폭격을 하겠죠. 이런 것을 감당하기도 어렵고, 또 취약한 기반을 가지고 그런 주장을 현실화하는 것도 너무나 어렵습니다. 신뢰성이 안 생기는 것이죠.
한편, 노회찬 의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 노동운동의 조건이 유럽 각국 노동운동의 조건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은 저도 나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정작 강해야 할 정치력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어서 신뢰를 쌓아가는 정치력의 문제는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원보: 어떻게 노동자 세력화를 할 것이냐, 결국 노동자 표를 어떻게 결집시킬 것이냐 하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진보세력이 구체적인 확신을 주고 있지 못하다, 거대 담론은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없다는 지적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회찬: 시민이라는 말 자체가 계급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데요. 어쨌든 저는 총연맹이 두 개 이상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도될 경우 각각의 정치세력화가 따로 진행되면서 힘 있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 유럽 경험의 교훈 중 하나라고 봅니다. 우리의 상황도 비슷한 것이죠. 거기에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수준에 불과한 상태인데, 이런 조건에서 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통한 정치세력화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부분, 즉 노동자라는 이름을 못 갖고 ‘이등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아가씨, 아줌마,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정치운동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노동운동이 조직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민주노총은 대기업 정규직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가장 힘든 부분들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중조직이 직접적으로 포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포괄하지 못하는 부분의 이해대변을 위해 대중조직과 진보정당이 공동의 노력으로 돌파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진보정당은 그동안 각 지역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포괄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뒷심이 발휘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진보정당의 정신이고, 혼이고, 전통이라는 의지를 갖고 그런 실천을 지속해왔다면 사회적 울림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이념과 기조를 달리하는 어떤 다른 정치세력들과도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진보정당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뚜렷이 하면서 이를 강화시켜 나가는 실천들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정체성의 강화’가 이념적인 측면을 강화하거나 편향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원보: 최 교수께서 지적하신, 진보정당이 구체적인 대안보다 구호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진보진영 내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그동안 진보진영이 내세웠던 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선 진보통합 후 야권연대가 노동 현장의 요구
권영길: 지금 노동 현장에서 바라는 것, 진보정당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께서 말씀하신,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지금 현장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질문은, 진보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얼마만큼의 현실적 힘을 얻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번에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그러한 요구를 읽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입니다.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바라는 현장의 목소리는, 그렇게 했을 때 총선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고,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몇 명 더 있으면 현장에서의 노동 탄압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막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주장입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말씀드리는 것은 그렇게 가는 것은 노동 없는 진보정치로 가는 길이고, 그렇게 안 하더라도 진보정치의 대동단결을 통해서 현장의 요구를 채울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우선 진보대통합을 한 뒤에 야권, 구체적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서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선 진보통합 후 야권연대’를 통해 내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현실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거죠. 일부에서는 독자적인 진보 집권은 교조적이다, 안 된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비관주의를 청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영훈: 노동의 입장에서 진보정치의 불씨를 어떻게 살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진지로서 민주노총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이름도 갖지 못한 광범위한 대중들을 포괄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지노선을 지키는) 민주노총의 진지로서 역할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만약 진지가 무너지고 친미 정권 아래서 미국식 정치까지 들어오게 된다면, 양당체제가 고착되고 결국 진보정치가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선 통합하고 민주노총이 배타적 지지를 철회하게 됐을 때 두려운 것은, 복수의 진보정당들로 인해 노동자들이 분열될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민주당의 ‘좌클릭’과 맞물려 현장, 특히 대기업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민주당으로 기우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둑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막을 수가 없는 거죠.
‘정치적 천하 삼분지계’, 열쇠는 노동의 배타적 선택
제가 이번에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배타적 지지 문제로 강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역설적으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지지하는 동지들이 고려하고 있는 진보적 대중정당을 위한 공간이 결국에는 폐쇄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동일한 포지션이라면 국민참여당과 통합된 민주노동당보다는 좌클릭해서 밀고 들어온 민주당으로 조합원들이 기울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지로서 버텨주는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천하 삼분지계’를 실현하려면 공명과 같은 책사도 필요하고 유비와 같은 통합적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관우와 장비 같은 배타적 지지 세력이 목숨을 같이 할 때 험난한 역경의 시간을 딛고 후사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것을 버린다면 진보정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신뢰를 못 심어준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만,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 조합원들을 집결하여 자신감과 위력을 보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진보정당이 일관된 좌표로 가도록 하고, 그와 더불어 조직 노동자들의 운동이 미조직 노동자들과 함께 활로를 뚫고 성장하도록 하는, 그런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원보: 노동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힘을 갖는 것, 이것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구체적인 진보진영의 방향이 될 텐데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조직의 통합과 리더십의 정비, 그리고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책 대안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필요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계획과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최장집: 노회찬 의원께서 유럽의 사례를 들어서 총연맹이 복수로 분리된 상황에서 정치세력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셨는데요. 물론 복수로 분리된 경우는 단일 총연맹 상황보다 어렵겠지만, 노동운동 정치세력화가 안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여러 총연맹들이 각각의 정당들과 결합하는 프랑스나 이탈리아가 좋은 사례죠. 그리고 독일의 사례를 보면 정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민당만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기민당 내에도 노동위원회가 존재하거든요. 1980년대 기민당 콜 정부가 영국의 대처 정부처럼 되지 않았던 것은 내부 노동위원회의 견제 때문이었거든요. 사민당도 못해내는 일을 당 내부 기구가 해낸 거죠.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떼려야 뗄 수 없는 배타적 지지로 얽어매는 것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을 위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대표조직으로서 이런 정책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어떤 정당과도 협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의 표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균형추를 약간 기울일 정도만 되면, 노동자들의 결집된 표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정당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고 미리 못 박을 것이 아니라, 정책 우선순위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식은 유연성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훈: 말씀하신 것처럼 민주노총은 정말 조합적이지 못한 정치방침을 갖고 있는 거죠.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표의 수를 가지고 실제적으로 제도를 바꾸는 정치세력화의 길도 있는데, 지금 민주노총은 자기 스스로 발목을 잡는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양당체제가 성립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정치방침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원보: 긴 시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제 한겨레에서 하고 싶은 말씀이나 질문 있으시면 해주시죠.
이창곤(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최근 한겨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