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평가와 전망, 그리고 제언

노동사회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 평가와 전망, 그리고 제언

편집국 0 4,915 2013.06.06 03:48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고 농민, 여성, 빈민 등 각계각층이 연합해 만든 민주노동당이 없어졌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DNA가 조금은 섞인 통합진보당이 출범했다. 이를 두고 여기저기 말이 많다. 이미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에서는 민주노총 소속 활동가, 전․현직 간부, 조합원까지 두 패로 나뉘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와 ‘반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의 최대의 정치방침은 조직을 분열시키지 않는 것”이라는 토론 지침의 첫머리가 무색하다. 

이러한 선언들의 난무가 결국은 조직의 분열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안다. 조직 내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그 결정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것이며, 분파적 입장과 이해에 따라 조직의 결정을 무시하고, 더 나아가 반대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명분이 약하면 절차를, 절차가 온당하면 명분과 원칙을 들이대는 것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동전의 양면처럼 행했던 관행이다.

정치적 방관자가 되어가는 조합원들

이런 과정에서 중간층 조합원들은 자포자기 혹은 환멸의 심정으로 최소한의 투표 행위에서조차 “지지정당 없음”으로 응답하는 ‘방관자’가 되어 간다. 최근 금속노조 산하 만도지부에서 실시한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중 지지 정당 항목을 보면, 각 정당의 지지율은 통합진보당 40.1%, 진보신당 5.4%였다. 즉 전체적인 ‘민주노동당 세력’에 대한 지지율은 약 45.5%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외 민주당은 8.1%, 한나라당 1.2%였다. 그리고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45.3%였다. 

2007년 금속노조의 상반기 평가조사에서 만도지부의 정당지지율은 민주노동당이 82.4%로 압도적이었다. 기타 11.8%를 제외하면 민주당 2.8%, 한나라당 2.0%, 통합신당 1.3% 등의 순이었다. 두 조사를 평행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이른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어림잡아 절반으로 떨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통합진보당의 일반 국민 지지율은 5%를 밑돌고 있다. 제도언론의 무관심과 민주통합당의 ‘좌클릭’에 따른 정책 차별성의 저하 등이 작용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주장들도 있으나, 이러한 낮은 지지율이 이른바 ‘3자 통합’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서 급속하게 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이러한 조건에서 민주노총이 이른바 배타적 지지방침을 조직적으로 관철한다 해도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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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민주노총 내외부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통합진보당이 출범하면서 민주노총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그 어떠한 절차도 밟지 않았다는 데서 이미 판명된 일이다. 민주노총 자신이 주도해서 만든 정당에 대해,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조건 자체가 ‘실패’라는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열된 시점부터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내부적으로 실패했고, 민주노총의 역할 부재가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관여했던 분파들은 연합전선의 조건에서는 배타적 지지 방침에 모두 찬성했다가, 갈라선 후에는 그 방침의 유지와 반대를 자신의 조건에 따라 각각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노총의 내부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대중조직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허약함이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2012년 1월31일 대의원대회에서 정치방침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진보정당은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사회당으로 규정한다.”고 한 결정은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정당 건설과 계급적 각성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정당 건설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2000년 민주노동당 건설과 원내 진출, 그리고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했던 2004년의 짧은 성공을 뒤로 하고,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의 분당과, 결정적으로는 민주노총을 무시한 통합진보당으로의 합당까지 대체적으로 실패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그렇다. 왜 그런가?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등이 규정짓고 있는 정치세력화는 상당히 포괄적이다. 선거 출마, 권력의 분점 혹은 독점, 직접적 정치, 정치행동을 통한 정치적 단결과 권력 쟁취, 정책과 제도 개선을 위한 각종 투쟁과 활동, 정치적 연합전술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 정당 건설 등 사실상의 정치활동을 모두 포괄한다(민주노총, 2011; 전진호, 2003: 재인용). 이를 조금 좁게 보면, 노동자계급이 정치영역에서 역량을 형성하여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며, 노조가 추진하는 정치활동의 일환으로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하고 각급 선거에 참여하여 국가의 정책 결정기구로 진출하거나 국가 권력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점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김금수, 1999: 13).

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따르면, 정치세력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지배계급인 노동자계급이 계급적 각성과 단결을 통해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총체적 행위로, 단순한 노동자의 선거 참여, 노동자 출신의 제도 정치권 진출과는 다른 개념이다(김남수, 2006).

이상의 의견들을 종합하면 한편으로는 정당 건설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계급적 각성과 단결 행위 등을 통해, 국가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정치세력화’라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각성과, 노동조합과 정당의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외에도 조직 내적인 통제력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계급의식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먼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조합원의 계급의식 고양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정치세력화의 조직적 측면인 정당을 뒷받침하는 의식의 내용이 얼마만큼 발전했는가가 중요하다. 정치(계급)의식은 내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가, 작게는, 나의 이해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나는 그 구조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 그리고 조금 더 넓게는, 나의 이해관계와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엮여 있으며 같거나 다른가,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는 자본주의적 구조가 우리의 이해관계에 맞도록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할 수 있는가 등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있을 때 조합원은 단지 선거에서 표를 위해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가 강제하는 여러 모순과 불합리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행동에 나서고, 여타 계급․계층과의 연대를 실천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의 총선방침과 정치방침을 두고 진행되는 논쟁에서는 이러한 점이 간과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냐 반대냐만을 따지는 것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정치적 계급적 자각과 관련해서 ‘연대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연대는 효과적인 집합주의의 전제로서, 이해관계와 행위를 인지하는 공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연대는 노동자들이 이해관계의 공통성을 깨닫는 것만이 아니라, 취약한 조합원을 보호하고 파업전선을 유지하는 집단적 행동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대는 강한 정체성, 정서적 유대감, 충성심 등을 가지고 있을 때 생겨난다. 이렇듯 노동자들이 자각하는 연대는 집단 연대성, 임노동자 연대성, 정치적 연대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D'art and Turne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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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치세력화와 관련된 ‘정치적 연대성’은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정당 건설과 사회구조 개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단순히 정당에 대한 지지를 넘어,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다양한 직접적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동기가 되고, 정규/비정규, 조직/미조직, 남성/여성 등의 차이를 넘어 노동계급 공통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는 조합원의 정치적 자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데올로기적 연대의 집중성이야말로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개별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Taylor, 1989).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연대하는 ‘노동조합 연대성’이 ‘정치적 연대성’으로 발전하게 되면, 그것의 외화된 표현으로 정당 건설을 추구하게 된다. 물론 조건에 따라 미국과 같이 노동조합이 로비조직으로만 기능하는 경우도 있고, 정당이 노조를 조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노동조합의 정치세력화’는 조합원의 표와 재정적 지원에 기대어 노동자의 이해에 복무하는 정당이 조직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당과 노조 관계에 따른 평가

다음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상황을 돌아보면,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든 정당이 자신들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 행보를 취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이 조직적 결집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민주노총 내에서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기는 하나, 통합진보당의 주된 세력과 궤를 같이 하는 분파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 전체의 입장이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당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내부가 분열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전 조직적 결정에 따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즉 분파적 행위에 의해 당은 분당이 되고, 노조는 방침을 둘러싸고 분열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타협이나 연합전술이 없는 한 복원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과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을까? 상층 수준에서 각종 기구에 대한 파견이나, 노동부문 대의원 할당 비율이 얼마인가 등을 따질 수 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는 노조-정당 관계를 온전하게 규정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분당하기 전인 2007년 민주노총 조합원 중 당원은 3만 8천 명으로 전체 당원의 47.5%를 점했다. 그러나 당권을 지닌 조합원은 약 2만 2천 명으로 전체 조합원 중 3.4%에 불과했다. 또한, 2002년 대통령 선거 시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60억 원 지원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목표액의 3.8%인 2억 3천만 원을 조달하는 데 그쳤다(김원, 2009: 130). 

민주노동당 당원 중 민주노총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높았을지 모르지만,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에 대한 적극적 지지는 한 자리대 비율에 머물고 있던 셈이다. 나아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실제로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정파와 관계를 맺고 있는 활동가나 노조간부들이라는 점에서, 노조-정당 관계의 이면에는 ‘정파적 관계’의 그림자가 길게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생산직 중심 사업장의 사례를 보자. 이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합 활동과 관련해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조합활동 자체가 이념적 정치적 신념의 표현”이라는 계층은 대체로 5~10% 정도였고, “내부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계층은 대략 35~40% 정도였다. 나머지는 이해관계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거나 소극적 혹은 관심 없는 계층으로 분류됐다(김승호, 2006; 김영두·김승호, 2006, 만도지부, 2012).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잇는 정파적 관계의 비중과 무게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민주노총이 왜 전 조직 차원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이러한 관계는 공장 내에 국한된 노조활동,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공장과 지역의 생활기반이 분리된 조건, 활동가 중심의 당 활동과 등과 같은 현실과 결합되어, 조합원들을 정치 활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기보다는 단지 표를 주는 ‘노동자적 유권자’의 처지에 머무르게 했다. 공장 내에서의 정치활동이나 실천 사업이 각자가 거주하는 지역으로 확산되거나 보다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수행하는 밑거름이 되지도 않았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은 ‘대공장 노동조합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에 둘러싸여 고립돼 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정당으로 인정받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 등 이른바 미조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자신의 조직으로 간주하지 않았다(장석준, 2008: 164). 실제로 울산 지역이나 거제 지역에서 비정규직이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탈당을 선언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합원 장악력 및 통제력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민주노총 정치세력화의 세 번째 평가 지점은 조합원에 대한 민주노총의 통제력이다. 노동조합이 직면하는 정치적 어려움은 자본주의 사회의 정치에서 부차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소수이기 때문에 방어적이며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노동조합이 이념이나 직업별로 분단되어 있으며 모든 노동자가 가입하지 않는다는 점, 정치적 정당성이 이해집단 간 상호작용보다는 선거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 노동조합 통합성의 정도가 교섭 결과를 조합원에게 설득할 수 있는 지도부의 역량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 등으로 정리된다. 

이러한 요건들 노동조합은 자본 측에 비해 필연적으로 상대적 열세의 위치에 서 있게 된다. 이러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정치 과정에 조합원과 조직력을 투여하면서 법적 양보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따라서 노동조합 스스로 정치세력화하거나 정당과의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별 노동자들은 그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만, 실제 투표 행위에 있어서는 ‘노동조합의 방침’에 따라서 일관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조합원은 노동조합에 대해 여러 유형의 충성도를 가지고 있으며, 노조에 소속됐다고 해서 조합원으로서의 이해관계에 일치해서 투표하지 않는다. 때문에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각자의 맥락에 따라 조합원들의 표를 획득하기 위해 상호경쟁하기도 한다.

노동조합은 선거 영역에서 정당의 우위를 인정하는 한편, 정당은 산업 영역에서 노동조합의 우위를 수용하는 ‘교환관계’가 존재한다. 이에 따라 명확하게 책임을 구분하고 양자 간 긴장관계를 잘 관리하는 ‘역량’의 존재가 노조-정당 간 관계를 성공적으로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러한 역량의 형성은 노동조합이 조합원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또한 이러한 역량을 형성하는 데는 노동조합 조직구조의 집중성과 함께, 조합원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을 필요로 하며, 조직 민주주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한 조합원의 연대의식을 강화하거나, 교섭 및 제반 방침의 결과에 대해 설득하는 지도부의 활동이 중요한데, 지도부의 통일적 행동 또한 이러한 역량에 포함된다.

제2의 정치세력화는 계급의식 육성을 기반으로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아래 [그림]을 봤을 때,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관통해 올라가는 직선을 따라갈수록 민주노총 정치세력화는 성공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현 상태를 개인적인 경험적 판단에 근거해 진단해보면, 과도한 평가일지 모르지만, 조합원의 상태는 실리주의와 개인주의적 경향에 경도된 왼쪽 하단에 존재한다. 또한 활동가와 간부들은 의식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을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조합원을 계급 간 연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활동에서도 계급 간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구호가 바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 이기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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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와 계급연대의 스펙트럼인 종축(계급연대의식)에서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의 집합적 의식이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노동조합운동이 책임지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정치조직활동 영역에 속하는 횡축의 경우는 정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지원과 지지, 그리고 조합원의 정당 가입을 통한 정치활동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종축에서 계급연대의식이 높아질수록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을 활발히 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은 계급의식을 키워 조직적으로 정당 가입을 유도하는 매체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는 첫째, 조합원의 계급적 의식 강화와 이에 기반한 노동자계급의 선도적 역할 즉, 전체 민중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집합체로서의 역할 충실히 하는 것이며, 둘째, 정책연대에서 독자 정당 건설까지 정당세력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민중의 이익을 위해 정책형성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과정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조직적 통제력을 갖는 것이다.

이상의 인식에 기초한다면, 향후 새롭게 시작될 이른바 ‘제2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방향은 정당과의 관계 설정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조합원의 노동계급적 자각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지켜줄 정치적 대리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당을 만들거나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나서서 연대전략의 주체로서 실천한 결과로 노동자 정당의 지지 세력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이라는 원칙 되새겨야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이른바 민족해방계열(자주파)과 민중민주계열(평등파)의 양대 세력이 연합한 결과물이었다(정영태, 2011). 정영태는 이렇듯 ‘정파연합당’이 탄생한 배경으로, 양 정파 간 이념과 노선의 유사성 증가, 현실적인 이해관계 일치, 혁명적 사회주의의 대중적 설득력 약화, 조직 통합을 통한 생존과 발전전략 모색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노선-정책의 차이나, 과거의 격렬한 대립과 경쟁으로 인한 상호불신과 부정적인 이미지 등을 해결할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 분파 간의 경쟁과 갈등으로 당이 분열되었다고 지적한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른바 ‘종북주의 논쟁’이나 ‘2007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 차이’ 등 표면적인 원인을 관통하는 것은 조직 내 파벌들 간 권력 갈등이라는 지적이 많다. 종북주의 논쟁, 대선결과 평가는 모두 파벌들 간 세력관계나 주도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기였다. 이러한 계기들 속에서 한 쪽에서는, 상대편 의견에 따르면, 상식적이지 못한 패권주의적 행태와 연합전술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승자독식주의가 난무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조직을 뛰쳐나가서도 충분히 생존가능하다는 정치공학적 판단이 우세했다. 이러한 양 측면이 맞물린 결과가 분당인 것이다. 

결국 정당 내부의 분파적 이해관계가 분당을 야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듯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을 가능하게 했던 정파연합이 붕괴된 상태에서, 배타적 지지방침을 둘러싸고 정파들이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둘러싼 논쟁은 정당과 노조를 연결하는 정파들 간에 진행되는 것으로, 정당의 주된 분파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프랙션(fraction) 활동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정파적 입장과 노선에 따라 조직을 분열시키는 거을 원하는 게 아니면, 진보정당의 영역에 속한다고 규정한 모든 정당들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고 그 안에서 조합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대상화 극복과 정파 간 균형 회복이 요구돼

민주노총의 정치적 지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내부 정파들 간 세력이 불균형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끊임없이 대중적 토대를 확대해온 정파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정파의 간의 문제일 터다. 구체적으로 말해, 현실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이른바 ‘범좌파’의 대동단결과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일부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혁명적 사회주의 이상’은 좋은 것이지만, 대중을 전취하지 못하는 고고함은 현실을 바꾸기에는 부족하다. 대중을 객체화시키는 선전선동만 할 것이 아니라, 조합주의가 됐건 의회주의가 됐건 진흙탕에서 대중과 함께 굴러보는 것은 어떤가? 특히 패권적 행태를 견제하기 위한 주체로서 대중을 전취하는 일은, 지금처럼 따로 모여 제각각 자기주장만 해서는 부족할 듯하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정파구도를 크게 민족해방(자주파)과 민중민주(평등파) 계열로 구분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군소조직으로 분열되어 있는가? 정치영역에서 좌우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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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민주노총 안에는 정파적 이해에 휘둘리기 쉬운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영역에서의 분열이 노동조합의 분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지막 보루는, 민주노총이 ‘조합원 중심의 대중조직’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기반으로 정치영역에서 정파연합을 복원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정치적 분할 구조 아래서는 민주노총은 정치방침을 결정할 때마다 갈등과 반목을 반복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상화된 조합원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아예 접을 것이다.

배타적 지지가 아니라 ‘포괄적 지지’로 전환해야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정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논란과 쟁점이 제기될 것이다. 당장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놓고 토론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장기적인 전망을 찾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제안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총과 정당의 관계는 배타적이기보다는 ‘포괄적’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노총이 취하고 있는 방식을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에 대한 지원과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이 왜 나쁜가에 대해, 추상적 잣대가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을 들이댈 필요가 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현실적으로 민주노총 지역본부들도 자기 지역에서, 공동정부가 됐든 연합정부가 됐든, 정책과 제도의 결정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또 독립적인 정부기구를 장악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양보하고 양보받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정당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에 대한 지지 원칙,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른바 ‘야권연대’를 위한 민주노총의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입각해 정당들과의 포괄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둘째, 조합원의 정치참여를 조직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조합원이 지역에서 일상적인 정치활동에 참여하도록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정치교육, 문화활동 등을 통합한 조직기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마다 특정 공간을 마련해 강사단, 조직단, 자원봉사단 등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을 이곳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노조와 지역공동체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공장과 지역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일깨움으로써, 정규와 비정규, 업종과 성별, 소속 조직 등에 따른 격차와 차별이 지역 내 정치활동에서 균열을 가져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이라는 시공간에서의 공동 관심사와 현안에 대해서 공동 대응하고 실천을 하면서 역으로 사업장 내에서의 균열을 봉합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사업장에 매어 있는 조건에서 지역활동은 “남의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역현안과 정당활동은 극소수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당원들의 일이 되고, 나머지는 구경하면서 필요하면 한 표 쥐어주는 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업은 쉽지 않으며, 장기적인 관점과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지역단위 자율적 정치활동과 정치교육을 활성화해야 

셋째, 앞에서 제기한 사업장별 고립분산성의 극복은 ‘지역’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거 전노협 당시의 지역은 공장 단위를 엮어주고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대응하는 수동적인 연대 공간의 의미가 컸다. 그런데 민주노총 출범 이후 기업별노조 체제의 극복을 위해 조직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산업․업종별 단결’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지역 수준에서의 산업․업종 간 단결의 구심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구체적으로 말해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상급단체로서의 기능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전국조직의 중앙 상층 중심주의에 빠지게 된다는 점은 광역도단위 이외의 지역에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수년 전 노동조합 간부 교육차 안동지역에 내려갔을 때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다. 극단적인 예일 수도 있지만 당시 안동지역의 노동조합은 소규모 병원노조, 택시노조, 레미콘노조, 시멘트노조, 공무원노조 등으로 산업․업종별 구분이 전혀 의미가 없는 상태로 존재했고 이들을 관할하는 민주노총 지구협의회는 사실상 ‘연합노조’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공장단위로 공단에 밀집한 금속노조를 제외하면, 실제 지역단위로 생존과 활동이 가능한 산별노조 산하조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지역본부는 조직노동자 중심의 활동을 넘어 지역의 현안과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이들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영역에서의 지지 세력을 넓히는 활동은 조직 활동에 밀려 침체되고 있다. 사업장 내의 정치활동은 공장 벽을 넘지 못하고, 지역의 정치활동은 소수 활동가와 정치 영역으로 신분 이동을 꾀하는 당원의 몫으로 넘겨졌다. 이러한 조직노동 중심적 정치활동은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이 진보정당 지지에 소극적이게 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다.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해당 지역 내 소규모 산업․업종별 조직을 아우르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지역 내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과의 연계를 맺는 방식의 운동과 정치의 결합을 주도하는 구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넷째,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구체적인 정치방침에 대한 요구가 여기저기서 들끓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으나, 권력교체기에 민주노총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고 실제로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진보신당의 존재는 과거 정파연합에 의한 지지를 결정하던 시절과는 조건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설혹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다수의 우격다짐으로 그러한 결정을 하더라도,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의 결정사항을 일사불란하게 집행하는 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이처럼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민주노총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지역별로 가능한 수준의 대응을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대략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해보면, 권력교체기의 중요성과 최근 영남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아성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볼 때, 지난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경험을 원용하면 될 것이다. 경남, 인천, 충남에서의 연합전선의 승리, 광주에서의 독자후보 전술의 실패를 거울삼으면, 절차와 과정은 조금 복잡하겠지만, 민주노총이 대중조직으로서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전술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급한 불을 끄는 양동이 물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선거의 지역별 선거전략들을 성찰해야

민주노총이 새롭게 추구해야 할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의 사업이 필요하다. 실제로 상당히 장기적인 사업이 실천되고 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장기적인 사업들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면서 정치적 구심체를 만들기 위해 민주노총은 당면한 정치적 현실과 지형에서 최대한의 보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현안을 점검하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미와 방향부터 새롭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아마 정치세력화의 가장 중요한 키는 ‘민주노총이 조직적 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될 터다. 민주노총 방침에 따라 지지 정당이나 지지 후보를 결정하면, 조합원을 포함한 가족까지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타당성을 갖도록 하는 것, 정당의 배신을 응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과 동시에 지지하는 정당의 대중적 토대를 넓히고 강화시킬 수 있는 연대전략의 실행 주체로서 조합원을 각성시키는 것,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에 국한된 의회주의적 사고를 뛰어넘어, 조합원을 주체로 세우는 정치세력화의 가장 효과적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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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