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좌담] 제18대 대선 평가와 노동운동의 과제

노동사회

[특집 좌담] 제18대 대선 평가와 노동운동의 과제

이주환 0 3,611 2013.08.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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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임상훈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조희연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장,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사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일시: 2012년 12월27일(목) 11~13시
장소: 서울 서대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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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연말 일정이 바쁘실 텐데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좌담의 주제는 ‘제18대 대선 평가와 노동운동의 과제’입니다.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온 이후 진보개혁 진영은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고, 이렇다 할 전망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냉정한 평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보수 세력의 재집권, 통합민주당 등 자유주의 정당의 석패, 그리고 좌파 정당들의 참패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평가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조희연 교수께서 먼저 총괄적인 평가를 해주시면, 그 뒤에 구체적인 쟁점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18대 대선 결과, 어떻게 봐야 할까

조희연: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잘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재앙과도 같았던 박정희 시대를 상징하는 보수 후보인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이번 선거는 크게 보면 ‘보수의 긴 10년’을 여는 선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52대 48’이라는, 결집된 한국사회 범보수와 범진보의 팽팽한 경쟁구도를 드러낸 선거이기도 합니다. 사실 범진보개혁 진영이 이번처럼 절반에 가까운 역량을 보인 선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될 때나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될 때를 가만히 보면, 보수 쪽이 분열하거나 한 쪽 진영에서 실망 투표를 해서 당선이 결정되는 식이었죠. 이번처럼 힘의 분포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은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범진보개혁 진영이 이번 선거 결과를 비관적이거나 자학적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선거는 범진보개혁 진영의 진보우파와 진보좌파 중에서 진보좌파 세력의 주변화가 두드러졌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준 요인들에 대한 분석과 함께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태현: 대통령의 권력이 막대한 대한민국에서는 대선 국면에서 유리한 쪽으로 응집력이 형성되고 소수 세력에 대한 사표심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나아가 이번 선거에는 그동안 보수 진영의 박근혜 후보가 압도적인 우위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에 진보개혁 세력에게 후보 단일화가 더욱 강하게 요구됐습니다. 진보정치 세력의 주변화라는 현상에는 그런 측면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또한 통합진보당의 분열 사태로 인해 진보 진영 내부의 침체가 심화되면서 진보 진영의 역량을 단결시키기도 어려운 조건이었죠.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진보 진영이 독자적인 입장을 갖고 대선에 대응하지 못하고 흐름에 끌려 다니면서 무능을 드러나고 왜소화됐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든 조직노동자들 상당수가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겠지만, 노조운동은 사실상 손 놓고 구경하고 있었죠. 뼈아픈 부분입니다. 

임상훈: 2000년 이후 선거 때가 되면 시민사회운동 쪽에서 각 후보들의 정책평가 등을 하면서 비판과 지지를 결집하는 사회적 역할을 해왔는데요. 이번 선거에서는 사실 시민사회운동이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정책평가를 제시해도 그걸 펴내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에서 회의가 들 정도로 언론이니 시민들이 호응하는 정도가 현저하게 낮아졌어요. 그런 흐름 속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시민사회운동이 조직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반면 시민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개인의 입장을 확연히 드러내고 개별적으로 각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에 참여하는 정도는 상대적으로 강해졌죠. 시민사회운동은 대선에 개입하지 못했지만, 시민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다보니 운동 차원에서는 별로 한 게 없음에도 활동가들의 선거 패배감은 엄청나게 컸죠. 한편, 저는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진다면 한국 사회 보수 세력 내에서 수구 세력이 약화되고 좀 더 온건하고 합리적인 세력이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수구 세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강력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보수의 전략적 성공, ‘전면적 개혁 대 현실적 개혁’으로 

사회자: 조희연 교수께서 이번 선거가 팽팽한 경쟁구도를 드러낸 것이고 진보개혁 진영이 비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제기하셨지만, 현실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연이은 실정과 그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지배적임에도 정권교체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실망감이 대단히 큰 것 같습니다. 범야권 세력이 유리한 조건에서 왜 이기지 못했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필요할 텐데요. 이에 대해서 답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희연: 이번 선거에서는 범진보개혁 진영의 전략적 실패가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의 전략적 구도를 ‘변신한 보수’ 대 ‘재결집한 진보’의 대결이었다고 표현하는데요. 즉, 박근혜 후보 진영은 이명박의 보수나 박정희의 보수와는 구별되는 변신한 보수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반면, 재결집한 진보는 보수를 압도하는 전략을 선보이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를 테면 기존에는 보수 진영은 복지 반대 세력, 경제 민주화 반대 세력이고 진보 진영은 복지 추진 세력이고 경제 민주화 추진 세력이었는데요. 이러한 ‘개혁 대 반개혁’의 이미지 구도를 ‘전면적 복지 세력’ 대 ‘현실적 복지 세력’의 구도로 치환하는 데 성공한 거죠. 복지나 경제개혁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과 기업의 조건을 고려해서 ‘현실적’으로 하겠다, 공약으로 제시하는 것은 상대방보다 적지만 그만큼 실제로 ‘약속’을 지키겠다, 이런 식으로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형성한 겁니다. 저는 이러한 이미지 전환의 성공이 보수 세력이 중도적 입장을 가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고 이들을 포괄할 수 있도록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 운동 진영의 절망감이 컸던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었는데 결국 졌다는 인식과 함께, 과거에 비해서 운동 세력들이 정당경쟁 구도의 내부 참여자가 되는 비중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보수의 변신’ 혹은 진화가 나타났는데, 이는 우파정부, 즉 이명박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으로 인해 삶이 파괴된 기층 대중들의 분노와 좌절, 절망감이라는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질서가 87년형 민주주의에서 한 단계 나아간 민주주의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 분노와 절망은 사실 진보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계속 악화되고 누적돼 온 것입니다. 그에 대한 신보수주의적 대안을 자처한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더 악화시켰고요.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번 선거는 반독재 중도개혁 세력의 사회문제 해결 능력도 의문시되고 신우파를 표방한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의 능력도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치러진 겁니다. 그러한 조건에서 승리한 해결책이 박정희에 대한 호명이었다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긴 하지만요. 

임상훈: 조희연 선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박근혜 후보 진영의 공약도 거기에 따라갔던 것 같은데 진보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보가 이번에 집권한다면 경제민주화나 복지 정책을 통해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이후 민주정부들의 시행착오와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을 텐데요. 결국 보수 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고 말았죠. 현재는 이들이 정말로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자기 담론으로 하는 진화된 보수 세력인 것인지, 아니면 새 옷을 입은 낡은 보수 세력인 것인지 지켜봐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대중은 민생문제 해결자로서 신뢰성 물은 것 

김태현: 저도 조희연 교수와 비슷한 입장에서 몇 가지 부연해서 말씀드리겠는데요. 대선 전에 진행된 여론조사를 보면, 역설적으로 소득이 낮은 가난한 집단일수록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입장에서는 박정희야말로 실제 먹고사는 문제를 개선해줬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 시대에 선별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복지를 국가가 처음으로 제공해줬다는 거예요. 이를 테면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공공근로의 기초적인 틀이 만들어진 것이 박정희 시대라는 거죠. 이런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이번 대선은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맞붙는 형태가 됐는데요. 문재인 후보 진영의 공약들은 화려하고 풍부하고 민생 문제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지만, 실제 문재인 후보를 통해 표현된 시대정신은 정권 교체, 즉 낡은 87년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반면 박근혜 후보 진영은 굉장히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국민행복 10대 약속’ 이런 식의 간결한 표현 속에서 민생문제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인 약속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프레임 재설정에 성공한 거죠. 문재인 진영 쪽은 내용은 있지만 프레임 구축에 실패했고, 때문에 노무현 정부의 민생문제 해결 실패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결여돼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고 봅니다. 

저는 이렇게 된 데는 전통적으로 민생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온 진보정치 진영이 사분오열되면서 그런 내용을 개혁 세력이 담보하도록 강제하지 못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판단합니다. 크게 보면 보수 대 진보개혁이라고 표방됐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보와 개혁이 자기 내용을 갖고 치열한 상호작용 속에서 연대한 게 아니라 그야말로 고민과 내용이 없는 자족적인 선거운동을 했다는 거죠. 이러한 점은 고려한다면, 앞으로 진보 진영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도 다수를 포괄하는 계급에게 실제적으로 밀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희연: 김태현 원장님 말씀 연장선상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자기혁신과 관련해서 우리가 두 가지 정도를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통치 세력으로서 신뢰성 회복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적 실패가 남긴 그림자일 텐데요. 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 5월 비극적 죽음을 맞음으로써 통치 세력으로서 진보개혁 진영의 진정성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은데, 통치 세력으로 경제적 능력에 대한 신뢰성은 아직 회복이 되질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비화를 깨고 노무현 정부의 한계와 부정적 측면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부 내내 노무현 정부는 ‘위기’라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런 반면 박정희 프레임에 근간한 보수 세력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경제적 리더로서 신뢰성을 풍부하게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투영되었지요. 

다음으로, 어떻게 하면 대중이 우리의 대안을 좀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실 공약의 각론으로 가면 진보개혁 세력의 입장이 보수 세력의 것보다 훨씬 좋아요. 문재인 후보 진영의 각론정책들은 진보개혁적 부문운동들의 입장과 요구를 대거 수용하여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이죠. 보수와 차별성이 명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각론들을 모아서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경제적 운영이 가능한 대안 세력으로 다가서는 것은 아직 미흡한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기존에 제기됐던 공공부문과 국가부문의 확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아래로부터 자조적으로 조직되는 사회적 경제의 흐름을 선도적 포착하고 총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대안적인 경제 운용 세력으로서 진보개혁 진영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점차 늘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어떻게 다를까

사회자: 대선 패배와 관련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각론은 구체적이지만 집중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전달이 안 됐고, 그런 부분이 민생문제의 해결사이자 통치 세력으로서 신뢰성을 주지 못했다는 데 대체적으로 의견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번 선거는 세대 간의 차이와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요. 50대의 불안감을 야권이 받아 안지 못한 것이 선거 패배에서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계신지 조희연 교수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희연: 제가 볼 때 우리 사회에는 크게 세 가지 균열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계급 균열, 지역 균열, 세대 균열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 세 수준이 배타적이거나 대립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세력이, 물론 내적으로 균열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 균열에서 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고, 또한 계급 균열이라는 측면에서 구조적 양극화로 인한 비참함이 누적되고 있음에도 보수 세력이 약자들에게 광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죠. 다만 세대 균열에 있어서는 젊은 세대, 미래 세대에게 진보개혁 세력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는데요. 일각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만 의존하다 보니 전체 여론과 유리됐다는 지적을 제기하는데, 저는 그나마 SNS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신미디어를 통한 젊은 세대의 진보적 소통이 광범하게 존재했다는 것이 52대 48의 팽팽한 긴장 구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거죠. 

한편, 이와 관련해서 제가 긍정적으로 보는 또 다른 부분은 신자유주의적 규율양식, 통치성이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른바 개인적인 스펙 쌓기에 열중했었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양식에 대해 집단적으로 인식하고 대응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저는 세대 균열에 있어 진보개혁 진영의 헤게모니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지금까지 제18대 대통령 선거 평가에 대해서 들어봤는데요. 이제 좀 더 당면한 현안들과 과제들과 관련된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운동의 대응 과제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보수 정권으로서 박근혜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논의에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이명박 정부에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부분에서 다르리라 예상되는지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상훈: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대선을 맞아 참여연대에서 각 후보 진영 전반적인 정책평가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복지 등의 영역에서는 박근혜 후보 진영과 문재인 후보 진영의 차이가 드러나고 논쟁이 되기도 했는데, 노동 영역에서는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노동공약이 없어요. 굳이 찾아보면 새누리당에서 이전에 이야기했던 정책들은 있지만, 박근혜 후보 진영이 독자적으로 제기한 노동공약은 전혀 없어요. 결국 박근혜 정부가 복지를 추진하더라도 그건 노동이 없는 복지일 수밖에 없는 거죠. 박근혜 정부는 이전의 보수 정권보다도 더욱 노동이 없는 보수 정부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태현: 임상훈 교수께서 노동이 없는 박근혜 정부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명박 정부에는 노동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노사관계 정책이 없었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편향되어 있었죠. 다만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 박근혜 정부는 선별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점이 차이가 있고, 또 박근혜 정부의 구체적인 노동정책은 대통령직 인수위나 청와대의 인적 구성에서 노동을 누가 맡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특정 청와대 비서관이 초기 노사관계의 방향을 공안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좌지우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는 정책담당자들이 어떤 노선과 입장을 갖고 있느냐가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한편으로는 ‘따뜻한 보수’를 연출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인수위에 일부 극단적인 인물을 임명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어느 쪽으로 귀결될지는 인수위 구성 등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거죠.

임상훈: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가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죠. 이명박 정권은 물론 전체적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 정부였지만, 적어도 정권 초기에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 정도를 완화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 노사발전재단 등의 채널을 통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됐거든요. 그런데 이번 박근혜 정부는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도 없고, 조직노동과의 소통 노력도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노동 정책도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이명박 정권이 ‘반노동 정권’이라면, 박근혜 정부는 ‘무노동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우익 포퓰리즘과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

김태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있는데요. 이명박 정부는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했지만, 전임자 임금 문제라든지 제3노총 건설 등에서 한국노총의 요구와 주장을 무시하고 자기 방침을 일방적으로 관철했죠. 제가 민주노총에 있어서 그렇게 보는 걸 수도 있지만, 한국노총과의 정책연대는 큰 변수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노사민정위원회 등 제도적 기제를 통해 조직노동 일부는 관리하고 일부는 배제하는 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고, 한국노총과 정부와의 관계, 민주노총과 정부와의 관계의 기본 토대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한 박근혜 당선자는 ‘유신 공주’로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하들을 서로 경쟁시키다가 자기 필요나 여론에 따라 쉽게 내치는 식의, 변신에 능한 통치스타일을 보면서 성장했는데요. 그런 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편, 지금 진보개혁 진영에 속한 사람들의 절망이 이렇게 큰 것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억압적일 것이라 예상해서라기보다는, 1987년, 1992년 선거 때와는 달리 대중운동이 갈수록 침체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5년을 더 견뎌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라고 봅니다. 

조희연: 박근혜 정부의 성격이 어떻게 정립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죠. 한편에서는 유사파시즘 정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단과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는데요. 저는 박근혜 정부의 변화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박근혜 당선자는 어느 정도 대중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적인 성향을 보여 왔거든요. 박근혜가 12월18일 선거일 전날 마지막 후보 연설에서 

“저는 가족이 없습니다, 국민이 가족입니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가족과 국가, 그리고 지도자를 가장과 일체화시키는 우익 포퓰리즘의 모습을 강하게 드러낸 것이죠. 어쨌든 통치권자가 국민을 가족이라고 상정했을 때는, 보수적 통합도 하는 것이지만 기대 수준을 높여 놓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 대우를 해주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대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박근혜 정부 앞에는 딜레마가 놓여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이반이 발생했는데요. 노무현 정부의 정책조차 사회주의정책이라 생각하는 보수적 이반이 있고, 내가 뽑은 노무현 정부가 나의 사회적 삶을 개선시켜주지 못한 데서 발생한 진보적인 이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을 이어받은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부로부터의 이반의 양면성을 무시하고 모두 보수적 이반으로 단정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으로 일관했죠. 때문에 사회적 균열과 괴리가 더 커졌습니다. 반면 박근혜 당선자는 진보적 입장에서도 일부 기대를 가질 만큼 포퓰리즘적 기대 수준을 한껏 높여 놨어요. 이를 테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고, 현실적 고려가 전제되지만 재벌개혁을 할 것이고 선택적 복지지만 복지를 하겠다고 했다는 거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이명박 정부에서보다도 사회적 균열과 괴리가 더 커지고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포퓰리즘적 태도가 딜레마를 키운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초기 단계에서는 진보개혁 진영은 박근혜 정권 초기에는 공약을 진정성 있게 지키라고 하는 전략을, 투쟁과 함께 병행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과 조건에서 박근혜 정부가 포퓰리즘적 선택을 강화한다면 좀 더 온정적인 보수 정권의 성격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퇴행하게 되면 노동도 없고 복지도 없는 억압적 정권으로 돌변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박근혜 정권에게 열려 있는 전망의 스펙트럼은 폭이 넓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보인 모습을 본다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귀결될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운동의 투쟁 역량이 그 방향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주리라 생각합니다. 

2013년의 ‘민중’은 누구인가

사회자: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이야기했는데요. 우리가 향후 정치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와 더불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제3후보의 등장, 그리고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진보정치의 급격한 몰락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현: 이번 대통령 선거가 보수 진영 대 진보개혁 진영의 구도로 치러졌다고 하지만, 사실 전통적인 진보정치 입장에서는 양자 모두가 보수인 거죠.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보수 양 세력이 채워주지 못하는 기대와 갈망들이 항상 제3후보론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는데요.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그런 기대와 갈망이 진보정치 세력에게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그 선거에서 10석의 의석을 획득했지만, 진보정치는 신뢰를 안정화시키지 못하면서 계속 후퇴를 했고, 결국 안철수 현상이라는 새로운 정체적 실체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한편, 앞에서 조희연 교수께서 젊은 세대의 진보적 성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지만, 사실상 진보정치의 입장에서는 젊은 층의 지지가 집결된 안철수 현상에 보수적인 흐름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안철수를 지지한 다수의 젊은 세대가 과연 진보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갖고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진보는 분열 속에서 제3후보론의 영역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극심한 갈등의 늪에 빠져 있는 조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패권주의와 독선주의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민주주의적으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기 머릿속의 민중이 아니라 더 낮은 곳에 있는 현실의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상훈: 저는 학교에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제가 처음 대학교에 간 게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이었는데요. 그때 대학교 4학년들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이었고, 또 대학 생활 동안의 노동 경험을 물어보면, 해봤다고 답을 하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적고, 내용도 주로 과외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에 같은 질문을 4학년에게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노동 경험이 있고, 그 내용도 대부분 비정규 서비스 일자리와 관련된 것들이에요. 이제 과외 같은 거는 거의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정치적 입장도 훨씬 더 깨어 있습니다.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진보 세력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즉, 주변화된 진보 세력이 다시 서기 위해서는 이 젊은 세대를 껴안아야 한다고 봅니다. 주변화된 진보 세력이 다시 서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주변화된 민중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2012년의 민중은 상당부분 젊은 층에서 구성되고 있다는 거죠. 87년의 틀로 민중을 바라보면 이런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자기 진영 내부만을 바라보며 서로 ‘내가 옳다’고 싸워왔는데, 그러다 보니 이 새로운 민중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지금 상황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싸움이라도 걸면 다행이지만, 만약 주변화된 진보 진영을 아예 무시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면 더 왜소화될 수밖에 없는 거죠. 새로운 민중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사회자: 두 분 말씀을 듣다보니 일본 정치 상황이 겹쳐 보이는데요. 일본에서는 극우적인 정치인이 특정한 분야, 이를 테면 환경 분야에서 진보적인 의제를 실천하면서 자기 색깔을 가리는 사례들이 있더라고요.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범진보개혁 세력의 무능과 주변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조희연: 저는 정치인 안철수와 정치적 현상으로서 안철수 현상을 구분하는데요. 안철수 현상은 진보좌파 진영과 노동정치 진영의 무능이 반영된 것이죠. 저는 단적으로 안철수 현상으로 몰린 관심의 절반가량은 진보좌파 진영이 과거 담지하고 있었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의 맥락에서 보면 민주노동당이 ‘급진적인 안철수’였던 겁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진보정치 세력의 분열과 대중적 신뢰의 추락이 심화됐습니다. 저는 이른바 2008년 체제, 즉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87년 민주화 체제의 일정한 종언이라고 분석합니다. 

민주화 체제의 핵심적인 정치적 특성은 반독재 중도개혁 정치세력, 즉 민주당의 헤게모니 혹은 리더십의 존재입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그런 헤게모니가 균열된 거죠. 이에 따라 대중들의 정치성을 담지하기 위한 각축의 공간, 진보좌파 정치세력 입장에서는 대약진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열렸던 겁니다. 그런데 주체적인 전략적 오류로 인해 진보좌파 정치세력은 스스로 틈새에 끼이고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더 주변화되는 길을 밟아간 거죠. 

한편, 안철수 현상에 담지되는 흐름을 저는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대중의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에서 유래하는 기성 정당에 대한 ‘묻지 마 불신’입니다. 다음으로, 대중들이 자기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제기하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요구들의 복합이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제3의 정치성’이라고 표현하는데, 기존의 반독재 세력이나 노동정치 세력이 인식하지 못하는, 즉 반독재 민주정치와 이른바 계급정치로 담아내지 못하는 새로운 정치성과 정치적 요구들입니다.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지식정보사회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죠. 

첫 번째 흐름, 즉 기성 정당에 대한 묻지 마 불신이 있다는 것은 사실 진보좌파 세력에게는 어쨌든 유리한 겁니다. 이러한 흐름을 받아 안기 위해서는 진보좌파가 기성 정당을 넘어서는 선도적인 급진민주주의 세력으로서 자기 위치와 이미지를 지속해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흐름을 받아 안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긴 말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한편, 마지막 흐름과 관련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갱신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독재 세력과 계급정치 세력이 낡은 것으로 비춰지는 측면을 극복해야 합니다. 구좌파의 합리적 핵심을 견지하면서도, 새로운 정치성들을 좌파적으로 재구성해내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왜소화된 진보 정치,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사회자: 진보정치 세력의 현실에 대해서 다양한 진단을 해주셨는데요. 진단에 대해서는 풍부한 주장이 제기되고 동의와 공감이 쉽게 모이기도 하지만, 갈래갈래 나뉜 진보좌파 세력들이 통합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이제 노동운동과 진보정치가 박근혜 시대에 어떤 전망을 가질 것인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상훈: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박근혜가 진보정치 세력에게 싸움을 안 걸어오면 어떡하나, 정말로 복지를 호혜적으로 해나가면 어떻게 될까 고민합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진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죠. 이렇게 된 데는 진보 내부 문제의 영향도 있습니다. 과연 지금 진보가 꿈꾸는 세상이 2012년, 2013년의 상황 속에서 구성된 것인지, 혹은 이미 장년층에 들어선 이들이 젊었을 때 꾸었던 꿈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민중성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한동안 이른바 ‘88만 원 세대’라는 담론이 유행을 했는데요. 이걸 세대 문제로 봐야 할지, 계급 문제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진보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이들과 맞춰가기 어려울 거고, 그러면 다시 살아나기 어려울 겁니다. 더욱이 저는 안철수가 곧 정치현장에 다시 등장할 거라고 봅니다. 젊은 층은 안철수 세력으로 쏠릴 텐데요. 그 후에 진보정치 세력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안철수와 연대할 것인가 민주당과 연대할 것인가, 독자적으로 갈 것인가를 모색해야 하겠죠. 물론 독자적으로 갈 수 있으면 가장 좋은데, 2013년의 민중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희연: 정치란 절망하고 있는 대중에게 누가 희망이 될 것인가를 두고서 각축하는 것일 텐데요. 이번 대선에서는 결국 박근혜를 중심으로 하는 변신한 보수가 희망의 세력처럼 비춰진 것이지만, 그러한 각축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편, 안철수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공화주의 미덕을 갖고 있는 성공한 기업 엘리트일 텐데요. 사실 이는 합리적 보수 내지는 온건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에 위치하는 겁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는 대중의 좌절과 분노를 두고, 그 세력과 급진진보 세력들이 각축하게 되는 거죠. 누가 제대로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가 중요할 겁니다. 그 과정은 중도개혁 세력에게도 어렵지만 진보좌파 진영에게는 정말 답이 안 나오는 상황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1기 진보정치 시기에서 2기 진보정치 시기로 넘어가는 대단히 혼미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민교협 상임의장이어서 이번 대선에서 ‘진보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진보좌파 연합후보를 내기 위한 노력에 참여했다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제가 느낀 건, 우리가 다른 집단이나 개인과의 정치적 이념적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벌써 5년이 됐는데요. 2008년 2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당사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아니면 2011년 9월, 통합이 최종적으로 부결되고 ‘홀로 남은 진보신당’과 ‘자유주의와 진보정치의 연합’인 통합진보당으로 분열하는 시점으로 돌아간다면요. 저는 이러한 분열과 통합 실패의 궤적을 돌이켜보면서 급진진보 진영이 스스로에 대해서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자칫하면 동지들끼리 죽고 죽이는 ‘우치게바’(내부 투쟁)로 몰락한 일본 좌파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올해도 통합진보당 사태가 났을 때, 누구 책임이냐고 묻기 전에, 그로 인해 진보정치 전체의 공신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습할 수 있는 게 ‘진보적 정치력’이었다고 봅니다. 그러지 못하고 사분오열하고, 이번 대선에서 처참한 결과를 낳으면서,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겠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진보정치의 궤적을 성찰하면서, 연대 구조를 복원하고 2기 진보정치를 시작하기 위한 전열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력이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통합진보당이 완전하게 사회적인 낙인이 찍힌 세력이 됐지만, 통합진보세력을 배제하는 우파적 시각을 진보진영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와 함께 통합진보당은 스스로가 ‘악마화’되어 있는 이 구조가 자신들의 전략적 오류가 결합되면서 만들어진 난국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새롭게 스스로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정희 후보가 TV토론에서 선전했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미자주화 세력과 이른바 따옴표 친 ‘종북 세력’은 구분해야 하죠. 반민자주화 세력의 큰 울타리 안에 이른바 따옴표 친 ‘종북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고, 그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김태현: 이어서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조희연 교수와 함께 진보 연석회의에 참여했었는데요. 진보 연석회의의 실패는 1기 민주노동당 실험 실패의 최종 확인일 겁니다. 1기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제 진보정치 세력들이 연합을 해서, 한편으로 정파연합당, 한편으로는 노동중심성을 가진 대중정당으로 출범한 것이었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정당이 제도화에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권력과 자원을 갖게 돼요.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을 통해 성공을 하면서, 그로 인해 생겨난 권력과 자원을 두고 정파들이 각축하는 구도로 변화했는데요. 대중적 노동조합운동으로 이런 부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휘말려들었던 거죠. 

이러한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동 중심의 대중정당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실패를 계속 이야기한다고 폐해가 극복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문제는 폐해를 주변화하고 새로운 질을 만들어내는 건강한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일 텐데요. 지금은 정말 어려운 조건입니다. 이를 테면 지금 조합원들에게 2기 정치 세력화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넌더리를 내요. 이번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만 보더라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수호 후보가 나왔지만, 조합원들을 과거처럼 적극적으로 주체화할 수가 없었어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기 현장에서부터 실질적인 대답과 혁신의 내용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제2의 정치 세력화를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임상훈: 이와 관련해서 저는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서부터 해답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 중앙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분명하고, 지역으로 내려가면 희망이 조금 명확해질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서울시를 비롯해서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동이나 진보와 소통이 되니까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서울 성북구, 도봉구나 울산 북구, 전북 완주 등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좀 더 작은 단위들까지 관계를 맺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 2~3년 상처 입은 진보 세력들이 지역 활동 속에서 자기 치유도 하고 풀뿌리 조직과 관계도 새로 만들고 그러면서, 다시 중앙에서 진보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의제들을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