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좌담] 민주주의 퇴행, 어디까지 갈 것인가

노동사회

[신년 좌담] 민주주의 퇴행, 어디까지 갈 것인가

구도희 0 5,590 2014.01.02 09:55

일시: 2013년 12월19일 오전 10~12시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참석: 강정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상임대표,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배규식 노동연구원 본부장,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이원보: 근현대사를 보면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민주주의는 역사 발전의 핵심 주제였습니다. 굴곡은 있지만 대부분 민주주의가 발전해왔다고 평가하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실현 여부부터, 얼마나 발전하고 있느냐 까지 논의 중인 좀 특이한 양상입니다. 여기에는 남북관계라는 격동하는 상황까지 결부돼 있어 이를 같이 보지 않으면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면 68년이 지났고,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보면 거의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민주주의를 정치적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산업민주주의로 나누어 본다면 현재 상황은 어떨까요? 우리는 10년의 민주개혁정부를 경험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느냐, 현상이라도 유지되고 있느냐의 논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대선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 복지, 국민 대통합을 주요 의제로 내세웠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정치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 전반의 발전이 정체된 것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민주주의 발전은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선 김동춘 교수님부터 부탁드립니다. 
 
민주주의 발전, 어디까지 와있는가
김동춘: 한국은 지난 자유민주주의 정권 10년 동안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추진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정권은 신자유주의 시기와 맞물려 경제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시기였습니다. 특히 IMF 외환위기와 맞물려 있었기에 민주화의 기억이 대중들에게 더 부정적으로 각인돼 지난 10년의 민주화에 대한 반작용 역시 강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비교해보자면, 미국에는 1960~70년대 초 전 세계적인 신좌파에 대한 반동으로 레이건 정부부터 부시 정부까지 일련의 보수화의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현재 한국의 뉴라이트와 보수화 흐름 역시 지난 10년의 민주화에 대한 역작용, 혹은 반동의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기적으로는 1929년 대공황 이후 파시즘의 대두와 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와 대단히 유사한 형태 같습니다. 동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약간 일상적인 형태로 공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양극화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일상적 공황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안감은 오히려 보수 세력이나 혹은 유사 파시즘 세력을 지지하게 만드는 거죠. 전체적으로 보면 민주화의 퇴행 시기고, 보수 세력의 총체적 반격의 측면도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가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던 가설들이 무너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의 민주화의 후퇴 국면을 과거 극우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가폭력을 자행한 주역 국가정보원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분단체제의 끝장까지 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단체제의 최대 주역이었던 공안기구들 즉, 기무사, 국정원, 경찰 세력이 1987년 이후에 크게 약화되었지만 과거청산이 철저하지 못했고, 이 같은 역작용들로 인해 이 세력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해서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실질적으로 정치를 주도하는 게 지금의 형국이 아닌가 합니다. 
이 같은 상황의 원인이 국면적인 것인지, 아니면 유사 파시즘 형태로 좀 구조적인 것인지 약간의 논란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는 구조적인 측면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광범위한 대중적 측면을 가진 것은 아니기에, 과거의 역사적 파시즘은 아니지만 유사 전체주의적 형태를 보이는 거죠. 예를 들면 국가, 당, 사회가 일체화되는 것을 전체주의로 본다면 한국은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와 여당이 거의 일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들이 언론을 비롯한 사회까지도 거의 장악하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식의 전체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구조적으로는 전체주의의 양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정구: 역사적 반작용이라는 측면에 동의합니다. 얼마 전 CNN에서 ‘미래를 보려면 서울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이 인터넷이라든지 CCTV라든지 정보화 초강국 사회잖아요. 그런데 정보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민주주의 제약을 보여주는 것이 국정원의 대선 및 정치 개입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NSA(국가안보국)가 하루에 50억 건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미국의 철통같은 감시 사회 아래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인민들이 정보의 주체가 되고 통제를 하겠습니까. 이처럼 국가가 NSA나 국정원을 통제 장치로 이용한다면, 향후 정보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근본적인 제약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죠. 처음에는 국정원이 작성·전파한 트위터 글이 5만여 개라고 했다가, 121만 건으로 늘어나고, 지금은 무려 2200만 건이잖아요.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지금은 과거와 달리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같은 것들이 선거운동의 핵심으로 꼽히는데, 국정원이 SNS 분야를 완전히 장악하고 통제도 받지 않는데다, 국가와 경찰, 검찰까지 합심해 대선을 멋대로 끌고 간 겁니다. 
앞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통제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정보를 통제하는 기구에 대한 감시․통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이것이 정착되지 않으면 민주주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이 같은 문제가 전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번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이니, 역사적인 반작용과 신자유주의 경제위기 문제와 더불어 대책을 강구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원보: 민주주의를 제약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SNS의 제도적 장악이라면, SNS가 거꾸로 권력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력도 있는 것 같은데요.
 
강정구: 네 그렇습니다. 어찌됐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와 국정원이 한통속이 되어 정보화를 철저하게 악용했는데, 이에 대한 통제장치가 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제가 되지 않는 한, 시민사회에서 SNS를 활발히 활용하면서 정보가 유통 된다고 할지라도 조지 오웰의 소설『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한테는 당할 재간이 없다고 봅니다. 그게 전형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NSA의 전 세계 주요 국가 원수들에 대한 도청입니다. NSA가 하루에 50억 건의 정보 수집을 하니 여기에 대해 일부 국가차원 뿐만 아니라, UN차원에서 대응을 강구해야 합니다.
 
정태인: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모두 성공한 나라라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겪은 나라 중 한국 정도로 경제성장하고,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는 유일한 것 같습니다. 좌우 경제학자가 다 인정하는 한국의 성공 이유는 지주계급의 소멸입니다. 아무리 불완전했다고 하더라도 농지개혁이 있었고, 6.25 전쟁이 나면서 과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지주계급은 진짜 소멸했거든요. 두 번째 이유는 교육열입니다. 지주계급이 산업과 금융을 다 소유한 틀이 깨졌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만 잘하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가망성에 대한 희망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집중되었고요. 그것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두 개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두 개 모두 깨졌습니다. 
과거의 지주계급이라고 하면 경제력을 이용해서 다른 분야에도 진출할 수 있는 힘을 의미했는데, 지금의 재벌은 땅과 돈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정치를 지배하는 힘 역시 점차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열은 살아있지만 교육에 대한 희망은 없어졌습니다. 교육이 신분상승의 통로가 아니라, 이제는 신분상승을 막는 벽인 거죠. 아직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자녀 교육에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그게 곧 절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구조적 요소들이 지금은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는 거죠. 결국 그것은 지배동맹이 굉장히 강해졌다는 것으로, 제가 청와대에 근무할 때도 한 무리라고 느낀 것이 재벌, 경제관료, 조중동이었습니다. 그게 지금 굉장히 공고해졌는데, 반대쪽에서 저지할 힘은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이 부분은 세대론과도 연결 됩니다. 전체적으로 길게 보는 요소로는 세대가 문제가 되죠. 베이비붐 세대가 1955~1963년생으로, 이들이 1987년에 20대 후반이었거든요. 그 이후 1990년대에 30대를 지나 이제 50대에 접어들었는데, 이들의 노동운동이 1987년부터 빠르게 퍼졌지만, 노동운동 같은 계급적인 민중운동이라고 부르는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 10년, 이른바 민주개혁정권 10년을 지나면서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계급동맹의 한쪽에서는 지배계급이 강화되는 만큼 포섭 역량도 생기고, 상대편에서 저항할 수 있는 노동계급과 시민계급은 굳어져 안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시민이라는 정의되지 않은 광범위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만, 현재 계급동맹은 상당히 강화됐고 상대편은 노쇠한데다 기존 세력의 포섭을 통해 약해지면서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까지 공격하고도 큰 위협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봅니다. 
상황이 계속 그렇게 진행될 것이냐를 본다면, 세대별로는 그렇습니다. 세대별로 점점 더 탐욕스러워지는 거죠. 향후 6~7년 후에 베이비붐 세대가 국민연금을 받는데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면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민주개혁정부 10년 동안 개혁 세력이 수도 적고 힘도 적었다는 것은 인정하는데, 신자유주의 말기였기에 이를 방어하기 급급했던 시기였던 것도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가 무너진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2008년부터 5년이 지났어도 월스트리트의 자본은 여전히 강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위기가 또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쇠퇴한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 모델이 나와야 하는데 대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는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에 의해 세계가 이끌어지고, 동아시아의 모델이 세계의 모델이 될 수도 있는데 중국은 일당독재로 시민사회 세력이 없으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없고, 일본은 너무 노쇠했으며 개혁을 너무 미국 체제에 가깝게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취약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아까 SNS와 시민사회를 말씀하셨는데 그건 가능성이거든요. 저는 지금 시민사회의 역량이 가장 강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에 문제점이 많다고 하지만 아직도 전체를 바꿀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으며, 조직화된 세력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끓어올라 상황을 단번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역량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변화,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량을 봐서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세대부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지배계급의 강화로 야기되는 문제는 일정 정도 돌파할 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내년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지배계급 시스템의 원천도 무너져 가고 있거든요. 이처럼 양쪽이 다 무너져가는 상태인데, 우리에게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으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면 됩니다. 아울러 금융의 효과에 따른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1997년 이후 지배체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재테크,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으로 모조리 포섭됐습니다. 지금은 금융에 의한 생활상의 포섭에서 빠져 나온 것 같습니다. 다시 빠질 수 있지만 금융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것이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금융규제를 통해 다시 지배세력을 분할하고 약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여전히 노동개혁과 정당의 문제가 남습니다만, 이 역시 시민들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통성 부재에서 기인한 박근혜 정권의 행태
이원보: 우리 사회의 가능성, 잠재력이 있음에도 현재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듭니다. 새 대통령에게는 MB 정권이 저지른 과오를 수습하고 새로운 형태의 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 기대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같은 시대적 의제로 나타난 것 같은데, 이게 몇 달 뒤에 바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전공노, 전교조, 철도노조 사태처럼 민중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현재 박근혜 정권이 행하는 정치적 행태에 대한 원인과 배경을 점검해 보죠.
 
강정구: 박근혜 정권은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바로 드러났잖아요. 정통성을 이야기 할 때, 저는 권력 뿌리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권력 창출의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권력 행사의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 세 가지를 갖춰야 정통성이 확보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을 기반으로 하는 박근혜 정권의 행적을 보면 역사적 정당성, 권력 뿌리의 정당성이 전혀 없습니다. 무려 2200만 건의 트위터 퍼나르기 등 선거조작을 한 것이 드러나 권력 창출의 정당성 자체도 기본적으로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 후보를 찍은 투표자들 중 대선 직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9.7%(11월 조사결과)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고,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답했죠.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해서 계산해보면 105만 표가 박근혜 후보에게서 문재인 후보로 옮겨집니다. 즉,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서경찰서 은폐 사건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탄생해서는 안 될 정부가 탄생한 거죠. 그런데 거기에다가 2200만 건의 트위터 글까지 감안한다면, 권력 창출의 정당성도 사라져 버립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정치 개입이 분명함에도 진상규명을 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검찰총장을 찍어내는 등 국정원 개혁을 하지 않는 권력 집행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국정원을 개혁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정원에 힘을 더 실어주는 식이니까요. 그래서 권력 뿌리의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 창출의 정당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 행사의 정당성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차원에서 볼 때 박근혜 정권은 기본적으로 정통성이 없는 정권입니다. 정통성이 없으면 국민, 민중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통치가 어렵지요. 그러다보니 억압적 통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폭압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 관계를 주목해야 합니다. 정부가 남북관계를 악용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국민들은 권력 창출의 정당성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니 사퇴하라는 요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같은 요구는 쉽게 사라질 성격은 아닌 것 같고, 장기간 지속되며 아마 파동은 계속 깊어질 것 같습니다. 
 
김동춘: 우리가 민주화 이후 상황을 보면 차기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밟고 자기 정당성을 창출해 나갔거든요. 동맹에 의해 선출됐다 하더라도 전 정권의 문제점들을 드러내 희생양을 만들고 새 정권을 창출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에 관련된 사람 중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MB가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할 때부터 사후보장 문제를 내적으로 제기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MB 정권의 사후보장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의 강고한 기득권 유지의 이해관계가 결합된 것이죠. 그런데 만약 박근혜 정권이 MB 정권을 희생양으로 만들 경우 자원외교, 4대강, 민간인 사찰문제와 같은 치명적인 문제들에 대해 일정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한 건도 제대로 건드리지 않은 채 여기까지 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밀약이나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됩니다. MB 정권은 박근혜 정권 창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원하고, 박근혜 정부는 이 모든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것이 오늘날 국가기관 대선개입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 과정에서도 봤지만 박근혜 측 입장에서는 친노가 가장 조직화된 반대세력이고, 이들을 타격할 수 있는 카드는 결국 안보문제입니다. 그래서 NLL 문제를 계속 걸고  넘어지고, 반대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카드로 안보문제를 계속 활용해 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기용한 것이 결정적 계기라고 봅니다. 또한 원세훈 혹은 원세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은 채 상황을 돌파하고, 문제를 다 덮으려다 보니 극단적인 대통령 퇴진 구호까지 나오는 상황인 거죠. 
 
정태인: 박근혜 정권이 아직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않는 것을 보니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여유가 어디서 오는지를 보니 53%의 지지율을 넘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카리스마가 아닌가 합니다. 4대 권력기관을 완전히 장악한 거죠. 그 힘을 가지고 아직 전 정권을 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이 박근혜 정권보다 정당성이 없음에도 18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경제에 목을 매달고 있는 거죠. 경제상황이 잘 안 풀리면 이명박 정권도 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얘기할 때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왜냐면 재벌도 절대권력에게는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죠. 경제가 안 풀리니까 모든 것을 투자 활성화로 바꾸었죠.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투자하면 경제 성장률 그래프가 변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투자는 누가 하느냐. 대기업이 합니다. 그럼 재벌들이 원하는 걸 들어줘야 되는 거죠.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원래 ‘줄푸세’가 자기 철학이었으니, 투자 활성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된 거죠. 재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수도권 규제 완화입니다. 그래서 풀었잖아요. 정부가 2차 투자활성화 대책 때 한 것이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방의 산지규제 완화입니다. 이게 재벌들에게 선물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투자가 일어난 것은 아니죠. 두 번째로 원하는 규제 완화가 공공서비스 규제 완화입니다. 그것도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외국과 연결해서 규제완화를 추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개정을 통해 철도를 민영화하려고 하죠. 
현재 박근혜 정부는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를 늘리고 ‘뭐든지 한다’는 자세입니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안 좋아지고, 양극화가 더 벌어지면 국민들이 과연 그 때도 정부를 지지할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지금 광장에 나오는 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정부를 지지하는 노인들 세대라던가, 가난한 세대가 불만이 생기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세력을 칠 것입니다. 아버지한테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다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경제문제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내부의 취약성 반영하는 보수 정권의 강경노선
이원보: 지금 보수 정권은 역사 왜곡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MB 정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지능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의 독선이라는 것이 모든 권력자들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데다 새누리당은 영향 발휘를 못하고 있고요. 이는 혹시 지배동맹이 강화된 것이 아니라, 위기감을 느껴서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MB정권의 과오가 하도 많아서 그것을 고치기보다는 지배계급과 동맹을 맺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택한 것 같은데요.
 
김동춘: 강경노선은 언제나 내부의 취약성을 반영하죠. 훨씬 더 유연하게 접근 할 수도 있는데 철도파업에 대한 대량 직위해제나, 교학사 교과서 수정 문제도 그렇고,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는 위기에 대한 공세적인 돌파의 측면입니다. 그리고 교과서 왜곡 문제는 10년 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밖에서 자체 교과서를 만들고, 나중에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제도화해 장기적으로는 자라나는 세대의 역사 인식의 틀을 장악한다는 겁니다. 1차적으로는 언론 장악, 2차적으로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을 장악하는 거죠. 결국 이건 박정희나 이승만 대통령 미화 정도가 아니라, 식민시대 이후 우리 사회 역사 발전의 경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문제까지 장악하려는 프로젝트입니다. 수세에서 나온 공세의 측면이 있지만 말하자면 우익들은 1980년대 이후 민주화세력의 공격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승만이 건국의 영웅이 되면 분단체제 아래 남한체제의 정당성만 사는 것이 아니라 친일세력이 살아납니다. 이는 지난 100년의 외세 의존적인 근대화 프로젝트의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입지 자체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큰 틀로 보면 강경노선은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친일, 친미, 독재, 천민적 자본주의 모두가 정당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 일 못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아무도 모르는 창조경제
이원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 중 경제민주화를 가장 강조했는데, 가장 쉽게 포기했습니다. 배경으로는 재벌들의 투자 활성화 등을 들었죠. 이런 일은 이전 정권에서도 있지 않았나요?
 
정태인: 과거에도 있었죠. 달라졌다면 양적으로는 대기업의 비중이 더 커졌고, 대기업도 상위 5대 재벌로의 집중이 심화됐습니다. 5대 재벌의 설비 투자가 경제성장률 1%를 좌지우지 할 정도까지입니다. 근데 지금은 박근혜 정부가 중소기업을 키우기 보다는 당장 경제성장률 3%를 넘어야겠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습니다. 퇴행인데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합니다. 반면 새누리당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고요. 
역사문제 쪽으로 보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예를 들면 1980년대 중반에는 ‘넘버 원’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플라자 합의 이후 부동산 투기와 엔화 절상으로 무너진 다음부터는 내내 힘없는 사회였다가 최근 아베 총리가 방향을 완벽하게 오른쪽으로 돌려서 미국식으로 가겠다고 했죠. 남한마저 미국식으로 따라 가고, 미국이 전방위적 중국 봉쇄 전략에 돌입하면 전 세계의 세력판도가 뒤흔들릴 겁니다. 물론 동아시아의 생산 네트워크가 저절로 깨지지는 않겠지만요. 미국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중국이 에너지 해상 수송로를 봉쇄하는 건데, 실제 그런 상황이 오면 남북관계고 뭐고 세계경제의 성장이 모두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경제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겠죠. 그리고 우리나라 우파는 이상하잖아요.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신자유주의 시장을 좋아하면서 역사는 회귀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흐름이 그런 쪽으로 거꾸로 가면 장기적으로 굉장히 큰 문제가 될 겁니다. 현재는 자신들 즉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열린 가능성을 닫고 있는 형태라고 봐야겠죠.
 
이원보: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개념을 보면, 어떤 산업을 키워서 성장주의로 가자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복지를 포기한 이유도 같은 측면이 아닐까 하는데요.
 
정태인: 창조경제도 그냥 말이 좋아서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경제이론이나 산업경제이론을 봐도 재벌구조 속에서 창조가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니치(niche: 틈새)의 공간이 열렸을 때 거기서 창조가 생기는 거죠. 김대중 정부가 가장 잘한 게 문화적 민주주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다양하게 말할 수 있게 한 뒤 영화나 문화 분야가 확 컸거든요. 이런 게 창조경제죠. 기존구조를 더 짜나가면서 거기서 창조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산업 부문에서도 1990년대 중반 삼성이 실리콘밸리에서 배우자며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출근해도 좋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딱 2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전체 틀을 바꾸지 않으면 성과도 나오지 않거든요. 네트워크가 생기고 여러 생태계가 생겨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창조경제는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대통령도 창조경제를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보면, 거대한 조직을 만들고 각 부처에서 엘리트들을 보냈을 것이 뻔하거든요. 그런데 현재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개선 기미 없는 박근혜 임기 내 남북관계
이원보: 이제 남북관계를 논의해 보죠. 북한은 현재 격동의 시기에 있는 거 같은데, 북한에 대해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고, 앞으로 남북관계에서의 변화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정구: 그 얘기에 앞서 경제 문제에 대해 잠시 얘기하겠습니다. 박근혜 임기 동안 경제상황은 조금은 나아질 가능성이 있고 미시적 수준에서는 여러 가지 고용 제도 개선을 통해서 진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는 장기적인 차원입니다.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구조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점을 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얘기가 나왔는데 이제 중국과 끈끈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아시아가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활력소이자 동력의 바탕이라고 얘기하는데, 앞으로 동아시아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경제를 보면 그 활력소를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상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완전히 정치․군사․외교적으로 포위와 봉쇄를 하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통해서 무역까지 봉쇄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 석상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베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세력 교체기에 ‘중국 편을 들지 말고, 자기들한테 줄 서라’는 거거든요. 미국이 혼자 힘으로는 중국을 봉쇄하지 못 하니까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통해서 동태평양 지역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군사적으로 제일 기초가 되는 게 한미일 연합 미사일 방어체계입니다. 여기에 중국은 한국이 미사일 방어체제에 참여하는 것은 마지노선이라며, 이 선을 결코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정부는 한미 연합 MD(미사일방어체제)에 참여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이 아직까지는 박근혜 정부를 끌어들임으로써 삼각동맹을 깨뜨리려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MD가 아주 구체화되고 미사일방어체제에 필요한 중고도용 SM3나 THAAD(싸드) 미사일 요격체제 도입 논의가 구체화되면, 마지노선을 넘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문제가 경제적 관계에 그대로 투영될 것입니다. 한국의 수출 시장이나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 관계가 아주 파괴된다든지, 삐꺽거리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활성화 되겠습니까. 우리가 항아리 안에 개구리를 놓고 불을 서서히 떼면 개구리가 모르잖아요. 한국이 지금 항아리 속 그 개구리의 모습입니다.
또한 민주주의가 파국을 맞을 때 제일 먼저 타격 받는 게 남북관계입니다. 평화통일운동을 하는 진영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습니다. MB 정부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들의 수가 그 전에 비해 2배 이상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3배 이상이 될 것 같습니다. 주위를 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압수수색 당하고 검찰 조사를 받으며, 구속되고 재판 받습니다. 그러니까 평화통일운동은 민주화가 되어야 교원노조라든지 노조들이 민주주의의 세력이 되고, 그 다음에 통일운동이나 평화운동이 활성화 됩니다. 그렇지 않고 국가보안법, 북한과 연계시키면 바로 직격타를 맞습니다. 6월 항쟁도 그런 수순으로 흘렀습니다. 그래서 MB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게 평화통일운동 진영입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 속에서 남북관계는 개선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면 첫 번째, 아까 창조경제가 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는데,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를 신뢰 프로세스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조경제처럼 이게 뭔지 모릅니다. 그저 신비주의에 쌓여 있습니다. 말로는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다 보면, 신뢰가 구축되고 그러다 보면 평화가 구축돼 이후 평화통일 기반이 조성된다며 이것을 지향하는 게 신뢰 프로세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남북관계는 신뢰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있고, 신뢰 문제로 전혀 해결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핵 문제라든지, 남북 군축문제 등은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신뢰의 측면에서도 분명히 추진해야 하지만 평화협정, 군축, 한미군사동맹, 군사훈련 문제는 근본적인 접근을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청사진이 전혀 없습니다. 기껏 있는 게 신뢰 프로세스인데 그것도 불투명합니다. 그러니까 이 정부에서는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내적인 동력의 형성이 안 되고 있는 거죠.
두 번째는 노골적으로는 얘기 하지 않는데 북한에 선 비핵화를 요구 합니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서 선 비핵화 요구해서 진전이 하나도 안 됐습니다. 그럼에도 이걸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게 박근혜 정부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그걸 넘어설 수 없는 한계는 바로 미국의 아·태 재균형전략입니다. 이 전략에 의해 한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에 편입되는 이런 구도가 남북관계나 중국과의 관계의 기본 규정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제는 남쪽 정부가 남북 간의 협력을 진전시키려 해도 신 냉전전략인 아·태 재균형전략이 기본 규정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종합 군사력이 세계 7~8위이고, 우리의 위상이 예전처럼 외세에 의해서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니까, 어느 정도 돌파구를 마련하고 물꼬를 틀 수 있는 자주 역량이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은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화해 협력 구도로 나아가고 힘을 합칠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가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성택 처형 판결문에 보면 ‘전략적 인내 정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 인내 정책이죠. 이명박 정부도 북한에 대해서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 사실 관여 안 하는 게 아니고 북한을 붕괴시키려고 했죠. 어쨌든 그 정책이 기다림의 정책입니다. 북한은 장성택이 철광석 등 광물을 중국에 헐값에 팔았다며 ‘이래서 장성택의 죄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장성택은 유연하고 좀 자유분방한 측면이 있는 사람인데 처형되고 나니까, 그 아래 실무자들은 남북관계나 북중관계에서 숨통을 트이게 할 만한 정책을 낼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래도 조금 희망적인 것은 북측이 장성택을 처형하면서도 경제 개방 등은 계속 하겠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고, 지난 11월21일에는 지방의 경제특구인 경제개발구를 14개 지정했습니다. 김정은 정권도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러한 경제적 요인 때문에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도를 가지고 남쪽에 유화적으로 접근하다고 하더라도 남쪽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나 선 비핵화, 아·태 재균형전략처럼 끊임없이 한반도 위협 요소를 지속하는 기본 규정이 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아시아 전체 보고 남북관계 논의해야 
정태인: 장성택 처형 사건이 나자마자 ‘군부가 개방파를 잡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전에 개성에 갔을 때도 그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한쪽에서는 개성 확대를 반대하는 세력, 특히 군부가 있고 다른 한쪽에선 ‘확대만이 살길이다’ 라고 하는 파가 있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엔 남북관계 자체는 햇볕 정책이 결정판이었습니다. 지금 조건에서 그 이상은 나올 게 없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전체를 보고 그 안에서 국민들에게 남북관계를 얘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북한이 그동안 미국에 압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해온 것을 이해하고 가자는 것은 역효과가 난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전체를 보면, 아까 강정구 선생님께서도 얘기하셨지만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컨게이지먼트’(Congagement: 봉쇄와 포용의 합성어)하잖아요. 군사적으론 컨테인먼트(Containment: 봉쇄)하고 경제에선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포용)해서 시장 경제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게 아닌 상태에서 너무 빨리 커지니까 컨게이지먼트가 변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2008년 금융위기로 미국의 재정 적자가 너무 심해지니까, 중국 봉쇄망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한국, 일본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내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중국이 경제적으로도 저렇게 커지면, 포용해서 바꿔나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모델이 나올 수 있으니 그것도 봉쇄한다는 거죠. 그런데 군사적으로 우리가 돈을 낼 거면 미국 방어망을 뭐 하려고 하나요, 우리가 지역안보체제를 만들면 되지. 사실은 미국하고 중국 서로에게 공격받는 걸 막아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북한이 걸려있는 게 항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길게는 지역안보체제를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북한에도 도움이 되고요, 북한이 어떻게 미국한테 약속을 얻어내겠습니까. 
장성택 문제를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MB가 북한을 봉쇄하는 정책을 쓰니 북한경제가 급속도로 중국에 끌려갔습니다. MB 정부 전까지만 해도 남한이 투자국 1위였는데, 2년 만에 중국이 1위로 넘어서더니, 최근에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어떻게 중국에 저렇게 넘겨주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특구가 중국한테 그냥 넘어간다 싶었는데, 이번 처형으로 그걸 견제한 거 같긴 합니다. 
어쨌든 동아시아 전체에서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양쪽에 끼어있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중국이 2010년에 너무 잘못했죠. 남중국해에서 여러 나라와 갈등을 일으켜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 아세안이 모조리 TPP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경제 봉쇄망이 만들어졌죠. 이제 중국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미국도 사실 그럴 여력이 없고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나라로 러시아, 아세안이 있고 남북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한은 합종을 그리다 여기서 끊기죠. 일본하고 한반도를 빼버리면 별로 힘이 없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를 미국으로부터 지키는 길인 동시에 중국으로부터도 지키는 길입니다. 다만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 정책은 햇볕정책과 다를 건 없는데 실제로 하는 건 봉쇄전략입니다.
 
강정구: 북한과의 철도, 도로, 가스관 연결 사업 등은 완전한 블루오션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임에도 현 정부는 그걸 못 해나가고 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추진하려 했으나 미국 제동에 걸려서 못 한 것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아예 구상도 못하고 있죠. 사실은 우리 내부에서 이에 대한 엄청난 동력을 형성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정태인: 박근혜 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진짜 신뢰를 얻고 싶으면 기본적으로 미국을 견제하는 외교적 스탠스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을 따라가고 있죠. 미국을 견제해서 북한이 숨을 쉬게 해야 합니다.
 
사회의 변화 이끌 새 동력은 시민사회로부터
이원보: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올해는 정부가 힘으로 눌렀습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튀는 힘의 강도가 높아질 텐데 말이죠. 요즘 학생들 사이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유행하는데, 이런 현상도 억누르는데 대한 반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년 1년 박근혜 정부는 어떤 행보를 보일까요. 그리고 민중 진보진영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김동춘: 종교계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아직 시민사회는 공식적으로 퇴진 요구를 제기하지는 않은 상태이고요. 대통령이 여전히 50%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 동력이 확 늘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진로는 경제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집권 1년까지는 ‘두고 보자’는 국민 의견이 다수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내년 봄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진전이 보이지 않고, 이런 식의 공안 통치가 계속되면 내년 봄 정도에는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내년도 예산이 아직 결론나지 않았는데 예산을 보면, 박근혜 정부가 뭘 할 수 있고 뭘 하지 못하는지가 보입니다. 창조경제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여기에 어느 정도의 예산과 정부의 힘이 실릴 것인지 대단히 회의적이거든요.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역점을 두는 정책 아젠다라는 게 있는지 굉장히 회의적이고, 그러면 공무원들의 동력도 확 빠질 것입니다. 지금 실질적으로는 공무원들이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얘기도 많이 나옵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예산과 공무원 충성도인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꼭 밑으로부터의 퇴진 요구가 아니더라도 정권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봅니다. 
남북관계도 북쪽이나 남쪽 모두 자기 입지를 좁히는 방향으로 왔고, 보수진영은 당장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떨어뜨리는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입니다. 차기 대선을 생각하면서 잠재적 대선 후보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진보진영에서는 조금 더 두고 보기는 해야 하는데, 최근 학생들이나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지 동력이 안 붙는 이유는 민주당의 무기력 때문이죠. 구심이 없고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진영에서 일종의 시국 대책회의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서 조금 더 적극적인 대안을 제기해야 합니다.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도 남한 시민사회에 있다고 봅니다. 민주당은 어쨌거나 제도화돼서 여당과 적대적 공존을 유지하고 있죠. 그래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동력이 생기긴 어려울 것 같고, 안철수 의원 측도 현재 지지율은 높으나 정당구조를 완전히 개편시킬 정도의 파괴력을 보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동력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태인: 우리 경제가 살 길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입니다. 사회적 경제는 자발적 움직임이니 방해하지 않아야 하고요. 또한 내수를 확대해야 하는데 그걸 성장론으로 얘기하면 ‘소득주도성장론’이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출에 기대를 걸고 재벌의 투자를 기대해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공기업 규제 완화와 민영화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경제정책은 부동산 정책이었습니다. 부동산 가격을 어떻게든 올려보려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건설경기를 올려보려고 했습니다. 서민들에게 돈 빌려줄 테니 집을 사라는 것이 유일한 경제 정책이었죠. 만약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빚을 무리하게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부동산 투기 움직임이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면 경제는 망하는 거예요.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하게 막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의 힘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를 지키지 못하면 아마 하반기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가, 사회는 더 크게 양극화되고 정부는 더 빨리 위기에 직면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굉장히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상황을 수습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어쩌면 파시즘 쪽으로 더 갈 수도 있고요. 지난 정부 때 광우병 촛불시위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이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실 그게 우리 경제를 살린 거예요. 그렇게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내년의 지방선거죠. 이와 연결해서 제동을 걸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굉장히 위험해질 것입니다. 제동을 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겠죠.
 
진보진영 재구성 통해 대안 제시해야
강정구: 요즘 걱정이 굉장히 많습니다. 향후 20~40년 사이에 틀림없이 세계 질서가 재편될 것이고, 중미 간 세력 교체가 될 거예요. 지금은 단기적으로 보면 신 냉전 이행기와 공고화 기간입니다. 한 5년 정도가 신 냉전 이행기와 공고화하기 시기인데, 향후 20년 사이에는 세력 교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그걸 저는 역류기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미국이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상황을 역류시키려 발버둥을 치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이때가 제일 위험합니다. 중국과 미국이 맞붙기는 힘드니까 그 사이에 있는 한반도나 댜오위다오 분쟁 등 세력 교체 시기에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있죠. 그런 구도 속에 우리가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이 한국, 일본을 신 냉전의 전초기지화 하는 것으로 봅니다. 평택미군기지 이전이나 강정 해군기지, 그리고 F-35 도입도 그런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지금 군사무기 도입 예정 비용이 2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고, MD까지 합치면 40~50조 원 이상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반도 내에는 천안함 사건 이후에 한미연합군사훈련 또는 전쟁연습이 거의 사흘에 한번 꼴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MD를 추가하면 아까 얘기한 것처럼 서서히 끓는 물속에 있는 개구리 신세가 돼서 죽는 줄도 모르고 죽게 될 겁니다. 정신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 이 같은 함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게 현재 한반도가 아닌가 합니다.
이건 정권교체를 해서 남북관계에 제2의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외세가 개입할 여지를 없애는 정책으로 나아가야만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북쪽의 김정은 집권 초기에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서 남쪽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살 수 있겠구나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장성택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나니까 남북이 함께 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어졌습니다. 아·태균형전략이 계속 강조되면서 일본이나 한국은 사실상 미국의 ‘앵벌이’가 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세력교체기에 우리가 완전히 항아리 속 개구리 신세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은 명나라·청나라 세력교체기에 생긴 일입니다. 앞으로 중·미 세력 교체기에 자칫 잘못하면 제2의 병자호란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이 우려를 예방하는 데 전력을 부어야 하는데 과연 이런 그림을 누가 제시하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를 보면, 그래도 믿을 곳은 역시 진보진영밖에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앞으로 진보진영의 재구성을 통해서, 거시적인 안목을 갖고 대안도 제시하고 터전을 마련하는 작업을 향후 2~3년 동안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동춘: 사실 저도 현재가 구한말 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북한 정권이나 남한 정권의 행동이 조선시대 노론이 하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봅니다. 적대적 공존 측면이 있고, 입지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정책 선택의 폭이 훨씬 좁고 강경합니다. 특히 남한에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노론계가 대안 없이 체제 유지로 나가면서, 동학군과 개화파를 다 진압하고 끝내는 세력 개편기에 제국주의 먹이가 돼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때보다 현재가 나은 점이 있다면 남한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 선택의 입지가 넓다는 겁니다. 과거의 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양쪽 정권에 “이러면 양쪽 다 죽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남한 시민사회가 내부의 양심적인 세력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원보: 그런데 지금까지의 기조대로라면 정부는 경제성장, 활성화 쪽으로 계속 가지 않을까요?
 
정태인: 경제활성화에 별 성공은 못 할 겁니다. 그리고 재벌들이 정말 탐내는 것이 수도권과 공공서비스거든요. 당장 전선을 보면 공공서비스 대 규제완화와 민영화인데, 이는 우리 국민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측면이 분명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측면이 생겼죠. 좀 다른 얘기로 배규식 본부장님 전공입니다만, 어차피 노동운동의 중심은 공공노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금속노조가 노동운동의 중심이던 시기가 있었고 이제는 공공노조로 넘어가야 되는 시기입니다. 정부는 항상 공공부문이 많은 월급을 받고, 비효율적이라면서 민영화 논리, 규제완화 논리, 노조탄압 논리를 댑니다. 그런데 공공성을 강화하면서도 내부혁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면서 철도민영화나 의료민영화에서 전선이 형성되면 민영화를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경제에 관한 정책 파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용시스템의 중요한 전환점에 선 한국
이원보: 자연스럽게 노동 문제로 넘어가네요. 박근혜 정부가 포기했던 노동정책들과 전 정권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이행 과정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상반기 노동정책을 보면 고용률 70% 달성에 모든 것이 집중된 느낌입니다. 향후 전망은 어떤가요. 지금 노동운동의 위기설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권력의 탄압 문제도 있겠지만 노동운동의 책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배규식: 대선에서 제기된 이슈들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노동이슈 말이죠. 아까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도 우리 사회 내부의 압력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보육 서비스, 정년 연장과 같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 압력 때문에 진도가 일정하게 나갈 것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 철도 민영화 문제도 터졌죠. 선진국들의 경우 제2차 대전후 전후체제의 고용시스템에서 보면, 뉴딜체제가 1980년대에 위기를 맞았는데 그 해결의 방향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레이건, 대처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고, 독일도 1989년 통일 이후 독일 고용시스템이 위기를 맞아서 하르츠 개혁을 일정하게 거친 것으로 볼 수 있어요. 네덜란드도 1980년대 초에 전후체제의 고용위기를 맞아서 바세나르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일본도 1980년대까지는 잘 나가다가 결국 1990년대  위기를 맞아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일본적 고용시스템도 비정규직의 비율이 한국만큼 크게 늘고, 종신고용 대신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청년니트족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산업화 시기 때 만들어진 고용시스템이 1987~88년 노동자들의 대투쟁을 맞아 일정하게 변화를 겪고, 1997~98년 IMF 금융위기를 맞아 또 다시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기본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이제 우리의 현 고용시스템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고용 시스템이 대졸자를 기준으로 보면 0세부터 27세까지 배우고, 부모님에 기대서 교육을 받아요. 27세부터 55세에 퇴직하면 85세까지 30년을 지내야 되요. 일생 가운데 3분의 1만 일을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고 우리 고용시스템의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이것 때문에 정년연장을 60세까지 늦추자는 건데, 이것도 과도기적 조치에 불과하고 앞으로는 65세까지 정년을 늘려야 합니다. 그 다음 근로시간 문제의 경우도 지금과 같이는 갈 수 없거든요. 젊었을 때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조기퇴직 시킬 뿐 아니라,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일자리를 독점하는 문제도 있고, 전일제 고용이 사회적으로 강한 규범이 되어 정규직으로서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근무시간을 줄여서 시간제로 근무할 수 있다는지 좀 더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도 지나치게 경직적입니다. 
이번에 통상임금 문제가 터졌는데 사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기형적 임금체계, 즉 기본급은 매우 낮고 포도송이처럼 온갖 이름의 수당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고정상여금이 400~700%까지 되어 있던 임금체계를 바로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동안 경영계와 정부가 기형적인 임금체계로 임금을 낮게 유지하고 장시간 노동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과거 산업화시절 만들어진 관행을 유지해 왔고 기존 정부들이 이를 합법화, 정당화시켜주어 왔는데, 근로자들의 소송을 계기로 법원이 이것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경영계와 정부가 너무 밀려서 숙제를 한 것이지요. 통상임금 판결도 더 이상 과거에 내려온 임금체계, 연장근로 등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보면, 현 정부가 이것을 국가적이고 사회적 의제로 만든 다음 잘 해결하거나 적어도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는 정부가 인식하든 안하든 어느 정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와있고, 법원 판결이라든지 사회적 압력 때문에 결국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고용률 70%가 알고 보면 고용의 숫자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도록 일생활균형 등을 통해 경력단절을 줄이고, 정규직 시간제 고용을 늘리는 등 고용시스템을 개혁하고 근로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습니다. 현재 고용시스템은 전일제 중심이기에 개혁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가 원하던 원치 않던 정책을 밀고 있으며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용시스템의 중요한 전환점에 와 있는 상황을 인식하고, 양극화된 사회를 보다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면 문제의식이 흐릿하고, 상당히 개별화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가 노동시장에서 노사의 이해관계가 전체적으로 일정한 균형이나 국가의 목표에 맞도록 귄위적인 개입이나 조정을 하였는데, 지금은 국가가 쏙 빠지면서 고용관계의 결정이 개별사업장별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구성의 오류’와 같이 개별 사업장의 노사는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했지만, 우리 고용시스템의 전체 모습은 불공정하고, 격차와 차별이 심하며, 기업규모별로, 원하청관계의 위치에 따라서, 고용계약의 형태에 따라서 울퉁불퉁한 모습을 띠고 있어요. 파편화되고 조율도 안 된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정부가 별개로 고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너무 정치적으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정치가 중요한 부분도 있죠. 저는 너무 정치적으로만 보지 말고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앞으로 미시적인 부분에서 산업민주주의나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동안 이런 측면에 대한 논의가 너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용시스템 개혁의 전제는 전 사회적 대화로부터
이원보: 노동시장의 개혁 과제들은 늘 노동의 유연화 확산 쪽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에도 예를 들면 유연근로시간제를 확대하는 문제들이 꼭 겹쳐 있죠. 고용시스템을 바꾸면서 다른 한쪽은 고용을 유연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배규식: 다른 나라를 보면 이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을 훌쩍 넘는 수준에 달하고, 이때쯤 1년간 근로시간이 1700~1900시간대로 크게 줄어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2만불을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2100시간대이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 시기상조론은, 외국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1989년부터 주 44시간제 도입 그리고 2004년부터 주 40시간제 도입으로 1990~2000년대에 근로시간을 계속 줄여 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연장근로의 연간총량한도를 연 220시간으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근로시간 규제에 관한 근로기준법이 아주 느슨하여 연장근로시간 한도의 제한을 받는 근로자수가 전체 근로자수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현재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데, 곧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법제도가 일정하게 도입될 것입니다. 지금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곧 이와 관련해 법원 판결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노동시간 규제는 강화될 것이고 더구나 통상임금 판결로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강력한 기제가 작동될 것으로 봅니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임금이나 근로시간에 유연성을 조금 부여하고, 사용자뿐만 아니라 근로자 입장에서 근로시간을 선택해 필요할 때 일한다는 개념까지 포함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는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입니다.
아울러 지금 철도노조나 공무원노조, 전교조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노동 기본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부가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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