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정 간 대결 양상이 심상치 않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기획재정부 장관과 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공공기관 노동조합에 대한 직접 공격에 뛰어들면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공공기관 노조가 연대해 정상화 개혁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심히 우려스럽고 국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변화의 길에 저항과 연대·시위 등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공공기관 노조의 공동 대응은 우리의 공공부문 노동운동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광범위하게 확대되는 형국이다. 현재 상황에서 공공기관 노조의 연대투쟁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발전할지는 미지수지만, 철도노동조합의 파업 이후 현 단계에서 노정 간 최대 현안인 것은 틀림이 없다. 또한 향후 공공부문 노정․노사관계를 가늠하는 주요한 시금석으로 작용할 듯하다.
1단계로 18개 부채감축 중점관리기관 및 20개 방만경영 중점관리기관 등 38개 중점관리 대상 기관의 노조에서 시작된 연대투쟁은 2월27일 전 공공기관 노조 비상대표자회의를 거쳐, 전 공공기관 노조의 연대투쟁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최근 당선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선거 유세 도중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담긴 정부 지침서를 찢는 퍼포먼스까지 단행한 데는 이러한 공공기관 노조의 당면 투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짧은 시간에 양대 노총을 넘어 전 공공기관 노조에 연대투쟁이 확대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불편한 진실’
지금 공공기관 노조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강하게 맞서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심각한 공기업 부채의 원인이 별도로 존재하는데도, 정부가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공기업 부채를 연결시키면서 정부 책임을 은폐하고, 공공기관 종사자에 대해 부도덕 집단으로 낙인찍는 등 책임 전가를 통해 ‘정치적 반사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프레임을 통해 대선 불공정 여론 및 감세 정책 지속·복지 공약 축소 등에 따른 왜곡된 재정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을 전환시키려 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방향은 기획재정부 국정감사(2013.10.16) → 전 공공기관에 대한 불합리한 단협 조사(10.18) → 20개 중점 공공기관 기관장 회의 및 기획재정부 장관 기자회견(11.14) → 대통령 시정연설(11.18) 및 국무회의 발언(11.25) →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발표(12.11) → 정상화대책 실행계획 발표(12.31) → 정상화 대책 이행실적 발표(2014.2.2) →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 발언(2.10) 등의 흐름을 보면 명백하게 나타난다.
잠시 시계를 뒤로 돌려 18대 대통령 선거 열기가 본격화되던 2012년 9월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기획재정부는 공기업 부채가 심각하다는 일부 야당의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2012년~2016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2012.9.26 발표)을 통해, 전 공공기관의 전체 부채가 2016년도에 이르러 2011년 수준과 유사한 209%대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2012년 공기업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보면, 주요 공기업의 부채관리평가 부문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제시했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MB정권의 정책 실패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공기업 부채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정부 태도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런데 2013년 12월11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방만경영을 연계시키며 부채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대통령까지 연이어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뿌리뽑겠다면서, 정부는 공기업 부채의 원인을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에 연계시키고 있다. 이러한 ‘정상화’ 흐름으로 인해 불과 4개월 전인 7월에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정책운영방향으로 제시한 ‘합리화 정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 같은 정부의 공론화 과정은 결과적으로 공공기관 경영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부족을 근거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번에 부채 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된 12개 공기업의 인건비, 운영비, 영업관리비 등 관리운영비는 전체 부채의 1.26%에 불과하고, 정상화 방안으로 조정된 복리후생비 총액은 0.036%에 불과하다. 즉 공기업 부채와 공공기관 방만경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MB정부 5년간 무려 225조 원의 부채가 급증했는데, 이 부채의 대부분은 정부 정책 수행(보금자리주택, 국민임대,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공적기금 투입 등) 및 요금 정책(철도, 전기, 가스, 도로, 상수원 등)에서 기인했다. 따라서 정부는 정부 정책으로 국민적 부담을 가중시킨 데 대해 국정 책임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공기업 부채와 관련하여 MB정부의 실정(失政)과 관련한 국책사업 및 대기업 특혜 요금 정책은 국민들을 기만한 사안으로써 즉각 국정조사와 검찰 수사가 필요한 사안임에도 정부는 공공기관 방만경영을 앞세워 사실상 이를 은폐하고 있다.
방만경영 정상화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방만경영 8대 유형 및 58개 점검 체크리스트를 설정하고 ‘정상화 이행계획’을 지난 1월에 집중 점검했는데, 이들 내용의 부분은 공공기관 단체협약의 핵심내용이었다. 더구나 일부 부처의 경우 이행계획 점검을 노무사에게 위임했는데, 이들은 과거 금속노조 사업장의 ‘노조 파괴’ 혐의로 기소되었던 소위 ‘악덕 노무사’였다. 이로써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논의는 공기업 부채 → 공공기관 방만경영 → 공공기관 단체협약 및 노조 무력화 등으로 발전되고 있고, 박근혜 정부 역시 이를 노리고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과거 MB정부가 2009~2010년에 강행했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과 유사한 것으로서, 감사원 특별감사와 기관장 평가 등 갖은 압박수단을 동원해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냈다고 한 발표(2011년 6월 경영평가 결과) 내용을 다시 기획재정부가 뒤집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번 정상화 대책에는 공공기관 비정상의 최대 요인있던 ‘낙하산 인사’에 대한 대책이 결여되어 있는데다, 심지어 부채 및 방만경영 중점 관리기관에도 상당수의 ‘낙하산 인사’가 줄을 잇고 있어 국민을 기만하는 느낌마저 든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및 대선 공약 후퇴로 비정상적 국정 운영에 논란이 집중되는 대통령이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오히려 진두지휘하고 있고, 이에 저항하는 공공기관 노조의 연대에 대해 공공개혁 방해로 간주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현재의 공공기관 정상화 흐름의 본질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개혁 주장 역시 매번 정권 초기에 공공기관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은 ‘비정상적 개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올바른 공공기관 정상화’ 위한 투쟁 방향
결국 공공기관 노조의 강력한 연대투쟁은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적 공공개혁 추진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간 상급단체의 벽, 투쟁전술을 둘러싼 이견과 전술 차이로 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공공기관 노조의 통일·단결을 아이러니하게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 되었다.
MB정부 말기부터 양대 노총을 넘어 2년 여 동안 지속된 공공기관 노조 조직의 연대사업인 ‘양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2013년 말 기획재정부 장관 인터뷰 및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발표되면서 공동투쟁으로 발전한다. 11월28일 공공기관 노조 대표를 직접 만난 현오석 장관은 공기업 부채를 둘러싼 국민들의 비판적 여론으로 인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공공기관 노조가 거리에 나가서 어쩔 수 없다”고 1차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였다. 뒤이어 12월9일 철도노조가 KTX 분할 민영화에 맞서 파업에 돌입한 직후인 12월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전 공공기관에 대한 공격을 전면화했다. 철도공사 영업적자 및 근로조건에 대한 갖은 악성 비방마저 난무했다. 때를 같이하여 공공기관 노조의 전면적 저항이 본격화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발표된 12월11일 공대위는 전 공공기관 노조 비상대표자회의를 통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대한 볼복종 운동을 결의했고, 이후 공대위 사업을 내실있게 점검·집행할 수 있는 기구로 ‘기만적인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분쇄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특별대책위원회는 공대위 소속 조직 대표(임원, 주요 노조 대표) 및 공대위 미소속 노조 일부(한국수력원자력, 예탁결제원 등)로 구성하여, 올해 2월12일까지 4차례 회의를 통해 당면 공동투쟁 세부계획을 논의했다.
1차로 1월23일 38개 중점관리기관 노조 대표자들은 ‘박근혜식 불통 개혁 거부, 국민을 위한 소통개혁 실현을 위한 공동선언’ 발표를 통해 △불통 정책 주도 현오석 장관 퇴진, △낙하산 인사 근절 및 민주적 임명절차 도입, △공공기관제도 및 합리적 복리후생 조정을 위한 노정교섭 등을 요구했고, 기만적인 정상화 대책 추진을 위한 각종 활동에 대한 노조 참여 및 교섭 거부를 결의했다.
이와 함께 정상화 대책의 허구성을 알리는 대국민 선전전, 투쟁기금 조성, 대국회 정책사업 등 공대위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공동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 집행을 강요하는 경영평가 거부, 정상화 대책 관련 교섭권의 상급단체 위임, 3월 임금교섭 일제 돌입을 통한 파업투쟁 공간 확보 등의 이후 공동투쟁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아울러 6월 지방선거 시기에 박근혜 정부의 중간 평가의 핵심 의제로 공공부문의 불통 개혁을 전면적으로 제기한다는 방침과 함께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준비하겠다고 결의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공공개혁을 둘러싼 공공기관 노조들의 국민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 공공기관 노조 스스로 소통 개혁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공기업 부채 해결,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혁, 공공기관 일자리 창출, 노정간 협력 패러다임 등을 주체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노력도 곁들일 것이다. 이러한 공공기관 노조의 향후 투쟁 방향은 2월27일 전 공공기관 노조 비상대표자회의를 통해 확정될 것이다.
공공기관 노조의 강력한 공동투쟁 결의 및 양대노총(민주노총의 ‘국민총파업’ 선언, 한국노총의 노정대화 거부)의 저항에 당황한 정부는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 관련 일체의 노사합의 없이 각 기관의 사용자와 짜고 일방적으로 복리후생비 감축안을 내놓는 등 대국민 사기극을 전개하고 있다. 급기야 이제 대통령까지 나서서 공공기관 노조의 개혁 방해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비정상적 대응마저 구체화하고 있다. 이제 공공기관 정상화를 둘러싼 노정 간 갈등은 지난 12월 국민들이 지지한 철도노조 파업에 이어 박근혜 정권의 향후 전망을 가늠하는 풍향계 역할을 할 듯 하다.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의미있는 실험’
공공기관 노조의 이후 공동투쟁은 오는 3월에 구체화될 교섭권 위임·임금교섭 돌입 및 경영평가 공동대응에서 그 전망이 보일 것이다. 3월이면 공공기관, 특히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이 경영실적보고서를 제출하고 경영평가 실사를 준비하는 만큼, 각 기관 경영진은 경영평가에 앞서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 집행을 위한 노사합의, 취업규칙 개정 등 노조의 협조를 줄기차게 요구할 것이다.
최대의 관건은 역시 경영평가에 대한 공동 대응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행동 수단은 3월의 교섭권 위임·임금교섭 돌입과 같은 전 공공기관 노조의 공동 실천이 될 것이다. 과거 공공기관 노조의 연대와 단결 흐름은 항상 경영평가를 둘러싼 기업별 실리주의의 벽에 막히곤 했다. 특히 오는 4월에 진행될 경영평가는 정상화 대책 이행계획의 실적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며 부채 및 방만경영 중점관리 기관의 정상화 대책 미이행시 경영평가 불이익을 공언한 바 있다.
작년 11월부터 4개월 동안 계속되는 공공기관 노조의 공동투쟁 흐름을 되돌아 볼 때, 적어도 2014년 상반기는 공공기관 노조들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비정상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 공공기관 노조들의 연대투쟁 경험으로 인한 자신감 등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영평가를 둘러싼 기업별 장벽의 주원인이었던 경영평가 성과급에 대해서도 올바른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및 경영평가제도 혁신이 수반된다면, 올해 한해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사회적 기금으로 활용하도록 한번 검토해보는 것도 어떤가 하는 제안이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그리고 올해 만큼은 공공기관 노조들이 경영평가 실사 거부 정도는 결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가져본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비정상적 개혁 추진이 불러온 공공기관 노조의 공동투쟁 기운으로 인해 2014년 상반기는 공공개혁 및 공공기관 노정관계를 둘러싼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의미있는 실험’이 역사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