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의 구조

노동사회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감정의 구조

구도희 0 5,623 2014.11.07 03:30
 
최근 한국 사회는 심각한 사회심리적인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높은 자살률의 주된 이유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빈곤, 청년과 노인 실업의 증가 등 사회경제적 구조 탓이다.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의 저자인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2005년 미국 브래들리 대학에서 전 세계 53개국 1만 7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개인의 자부심’에 대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자부심은 44위에 그쳤고,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 36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의 질 수준을 ‘행복지수’로 환산한 결과에서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하위권인 27위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한국인의 낮은 자존감과 행복감은 자기애(自己愛)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여기에는 사회적 신뢰가 현저하게 약화되었고,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하는 피상적인 인간관계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결핍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가장 쉽게 선택하는 방법으로 누군가를 모욕하고 경멸하려 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서 자신의 우월감과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노동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스스로를 특별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부유층 등이 그 예이다. 이는 사회 전체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불평등이 만들어 낸 왜곡된 인정 욕구이다. 
예컨대 국내 여객기에서 기내식에 불만을 품고 여성승무원을 폭행한 대기업 임원(라면상무)을 비롯하여, 차량 이동을 요구한 호텔 지배인에게 폭행을 가한 제빵업체 회장(빵회장), 탑승 예정시간 보다 늦게 도착하고도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는 이유로 항공사 직원을 폭행한 의류업체 회장(신문지회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noblesse oblige)과는 거리가 먼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정당하지 않은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소위 ‘진상고객’은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급속하게 이행하고, 고객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다.
 
한국 사회의 모멸감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을 향한 적의와 분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각 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러한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분석한다. 
먼저 ‘모멸’이 내포하는 의미는 타인을 업신여기거나 낮춰보면서, 모욕과 경멸을 주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지적받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 모멸에 대해 저자는 “인간의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정의한다. 또한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고 말한다. 
이어서 모멸감이 어떻게 우리의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폭력성을 드러내는지를 뉴스,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 시나 소설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살펴본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조선시대에 형성된 귀천의식과 신분관념이 넓고 깊게 뿌리박혀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으로 옮아가서, 그러한 차이를 중심으로 자신과 타인의 귀함과 천함, 위계서열을 정한다. 
저자는 자기정체성의 확립이 취약한 가운데 고립된 개인들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존감을 찾으려 하고, 이들의 오만과 콤플렉스가 한국사회를 천박한 통념과 허위의식에 사로잡히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저자는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다. “자신보다 밑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과 최소한의 접촉도 불쾌해하는 사람은 그러한 신분의식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모멸감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울분을 억누르고 있다가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폭력으로 분출한다.”
 
인간적인 사회를 향하여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인간관계에서 모멸이 작동하는 방식을 일곱 개의 범주로 나누어 정리한다. 이 범주는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모멸감을 화두로 인간 존엄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보길 청한다. 
또한 저자는 사회적으로 만연한 모멸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구조, 문화, 개인 등 세 가지 차원을 소개한다. 우선 구조적 차원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체제, 가령 부의 공정한 분배나 사회 정의 및 복지를 언급하고, 문화적 차원에서는 가치의 다원화를, 개인적 차원에서는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도 위엄을 누릴 수 있는, 자존의 각성과 결단’이라는 내면의 힘을 강조한다. 
결국 노동의 대가를 임금이나 상품의 가격으로만 따질 때 초라해지는 심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에 대한 자기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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