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의 무역센터와 워싱턴의 펜타곤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무너졌다.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자존심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뉴욕시는 바그다드, 베오그라드, 수단, 팔레스타인, 베트남, 파나마, 히로시마,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스크처럼 변했다. 비록 무역센터와 펜타곤이 미국 금융자본과 제국주의 군사력의 상징이지만, 그 날의 테러 공격에 희생된 사람들은 앞에 열거된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부시 정권은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비극적 사건을 제국주의적 군사 팽창에 이용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 편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
부시 정권의 군사개입과 전쟁 책동에 대해 공화당과 민주당은 모두 한 목소리로 지지하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을 지원하고 감행한 국가, 조직 또는 개인에 대해 모든 필요하고 적절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시에게 부여하는 결의안이 상원에선 만장일치로, 하원에선 단 한 표의 반대로 통과되었다(반대표를 던진 이 흑인 의원은 미국 극우파의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부시는 얼굴 없는 적에 대해 전쟁 선포와 더불어, '테러리즘을 비호하는 국가들을 끝장낼 준비가 되어있다', '미국을 지지하지 않는 나라는 테러리즘을 비호하는 나라로 간주할 테니 알아서 하라' 등의 엄포를 늘어놓고 있다.
펜타곤의 한 고위관리는 “테러리즘을 비호하는 국가들을 끝장낸다”는 의미는 미국에 협력하지 않는 나라들을 쓸어버리겠다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부시는 미 국민에게 이번 전쟁은 단 한번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는 유례 없이 길고 험한 캠페인이 될 것임으로 모두들 맘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희생할 각오를 해야한다고 선언했다.
테러리즘에 대항한 전쟁 선포는 국외적으로는 군사적 위협으로 국내적으로는 제반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방 검찰총장 애쉬크로프트는 테러리스트를 타도하기 위한 반 테러리스트 법안을 의회에 상정하겠다고 나섰다. 이 법안은 FBI 와 경찰이 “국가안보와 이해에 당장의 위험”이 된다고 판단되면 도청과 감시를 법원의 영장 없이 허용하는 것이다. 상원은 9월 13일 이미 이 법안을 가결했다.
소수자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지난 1995년 백인 우월주의자 티모시 맥베이가 오클라호마 시의 연방 정부 건물을 폭발했을 때 클린턴 정권은 반테러리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는 백인우월주의자 조직에 대한 제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 법안 하에서 이민자는 재판 없이 추방될 수 있고, 사형을 선도 받은 사람들의 항소권이 제한되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반테러리즘 법안은 한술 더 떠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되거나 미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이민자들을 재판 없이 무한정 가둬둘 수 있도록 한다. 일부에선 전자주민증 도입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테러리즘에 대항한다는 명목 하에 벌어지는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은 현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날 것이다. 특히 미 정부의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은 미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적 노동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날 것이다. 9월 11일 참사 이전부터 부시 정권은 공공연히 반세계화 운동이 지나치게 폭력화되고 있음을 경고해 왔다.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세계화 운동 시위 이후 미국 내에선 60년대 이후 최대의 급진화 물결이 일고 있다. '반세계화' 또는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불려지는 이 급진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대학생과 노조 활동가들이 다국적 자본의 제3세계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침탈에 반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의문시하고 있다. 미 정부의 “비상사태”를 빌미로 벌이는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은 미 국민이 누리는 언론과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침해 뿐 아니라 모든 소수 민족과 진보 운동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확증은 없지만, '범인은 아랍인'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이번 참사는 엄청난 충격과 공포였다. 역사상 최악의 미 본토에서 일어난 테러공격에 일반시민들은 분노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분노와 공포를 이용하여 정부와 언론은 인종주의적인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있다. 무역센터와 펜타곤이 공격을 당한 직후 미 정부는 일제히 그 책임을 아랍 극단주의자들에게 돌렸다. TV에선 무역센터가 피랍 비행기에 의해 두 동강이 나서 무너지는 모습과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충격에 휩싸인 미 국민들에게 피의 복수를 부추겼다. 이 현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95년 오클라호마 시의 연방정부 건물이 폭파되었을 때도 정부와 언론은 당장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었다. 나중에 백인 극우주의자 티모시 맥베이의 범행임이 밝혀졌지만, 단 며칠 사이에 미국 내 아랍인에 대한 보복과 테러가 2백 건 이상 일어났다.
언론은 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강타한 여객기를 납치한 아랍인들이 지난 몇년동안 미 국내에서 교육받고, 심지어 그들의 아내와 애들까지 데려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적들은 우리 내부에 있음을,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동조자들을 색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9월 11일 이후 단 며칠 동안에 75명의 아랍인들이 뚜렷한 증거도 제시받지 못한 채 이민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한마디로 모든 아랍인을 혐의자 취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反)아랍 인종주의적 마녀사냥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랍인에 대한 테러와 공격이 자행되고 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9월 11일 이후 일반적으로 범죄율이 떨어졌지만 아랍인에 대한 살인, 폭력, 방화, 위협 등 인종주의적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9월 15일 애리조나에서는 한 백인 남자가 시크교도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총격을 가해 그 주인을 살해하고, 또 다른 주유소의 레바논인 종업원에게 21발의 총알을 발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체포 직후 "난 애국자다. 미국을 위해 총을 발사했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승 부리는 백인 우월주의
더욱 우려스런 것은 몇몇 극우분자의 개인적인 테러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집단 행동 가능성이다. 그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9월 12일 시카고의 한 교외에서는 약 350명의 남녀가 아랍인 거주 지역의 이슬람 사원을 향해 반 아랍 구호를 외치면 행진했다. 그 행렬에는 다수의 십대가 끼여있었다.
이런 반 아랍인 마녀사냥 속에서 엉뚱한 희생양은 미국인들 눈에 아랍인으로 보이는 동남아시안들이다. 특히 시크교도들은 아랍인도 아니고 이슬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별개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들이 쓰고 다니는 터반이 TV에 연신 비치는 빈 라덴이 쓰고 있는 터반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슬람과 힌두교도 구분 못하는 무식한 극우분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9월 11일 참사 이후 정치인들은 입을 모아 애국심의 표현으로 성조기를 매달 것을 호소했다. 그 호소가 먹힌 걸까, 가는 곳마다 성조기가 달려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다닌다. 분명 이것은 위험한 제국주의, 국수주의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극우 국수주의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은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가족들의 슬픔에 연대하는 의미로 성조기를 내달았다. 특히 아랍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의 경우에는 성조기 게양은 일종의 보호막과도 같은 것이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인종 테러를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면서 막으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의 다양한 심리상태를 극단적 애국심의 표현으로 밀고 가면서 전면전 군사행동을 전 국민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려는 정부에 있다.
미국, 테러리즘의 본산
모든 책임을 아랍 테러리스트에게 몰아 부치며 전쟁의 광기로 치달으면서도 어떤 정치인이나 대중매체도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세계 민중이 그토록 미국을 증오하게 되었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이 자신의 이해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저질러온 학살과 만행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부시의 터무니없는 거짓말-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그들이 미국 국민이 누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적대시하고 미국의 부를 시기하기 때문이라는- 이 먹히는 듯하다.
지난 20년 동안만 해도 미국은 그레나다, 리비아, 파나마,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에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물론 미국이 직접 나서지 않은 대리전쟁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미국의 중동 정책은 수백만의 아랍인에게 반미 감정을 심어주었다. 미국의 중동 정책은 한마디로 중동에서 미국의 석유 이권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의 이해를 지지하는 정권은 아무리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도 미국의 비호를 받아왔고(예를 들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샤 정권, 쿠웨이트 등), 조금이라도 미국의 이익에 도전하는 정권은 철퇴를 맞았다.
지금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빈 라덴은 80년대에 미국 CIA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 대항시킬 목적으로 훈련하고 자금을 대준 인물이다. 빈 라덴이 소련에 대항해서 테러를 자행할 때 그는 미국의 친구였다. 또 다른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80년대에는 미국 중동 정책의 주요 파트너였다. 후세인이 쿠르드족을 미국이 공급해 준 화학무기로 학살하고 국내 민주세력을 탄압하고, 이웃 나라 이란을 침공할 때도 미국은 후세인과 좋은 친구 사이였다.
1991년 걸프전 동안 적어도 20만의 이라크인이(대부분이 무고한 민간인) 죽었다. 걸프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봉쇄는 한때 아랍권에서 가장 잘 살았던 나라 중 하나였던 이라크를 산업사회 이전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경제봉쇄로 인해 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이라크인이 죽어갔다. 이 희생자들 중 절반은 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다. 기본적인 생필품과 항생제 등의 의약품조차 봉쇄된 가운데 이라크 어린이들은 영양실조, 오염된 물로 인한 설사, 전염병 등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걸프전이 이후에 태어났다.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의 죄는 오직 이라크에서 태어났다는 것 밖에 없다. 1995년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올브라이트는 한 인터뷰에서 경제봉쇄로 인한 이라크 어린이들의 죽음은 이라크가 치러야 할 대가라고 정당화했다.
지난 10년 간 미국과 영국은 경제 봉쇄 외에도 후세인을 제거한다는 명목 하에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감행해 왔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99년 말까지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는 6천 번 이상 출격하여 450개 이상의 목표물을 강타했다. 물론 사상자는 무고한 이라크 민중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은 도리어 이라크 국내에서 후세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왔을 뿐이다.
테러리즘의 쌍생아, 미국과 이스라엘
미국은 또한 중동에서 미국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이스라엘을 각종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원조로 지지해 왔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계속되는 무자비한 탄압은 미국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원조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해 일상적인 테러를 자행해 오고 있다. 1982년 이스라엘 군대가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해 2천 명의 부녀자들을 학살했을 때 미국은 단 한마디의 비난도 하지 않았다. 9월 11일 참사 다음날 당장 이스라엘은 웨스트 뱅크 점령지구의 마을을 탱크로 습격하여 9살 난 소녀를 포함한 8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했다.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는 폭력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맞서 싸우겠다는 부시는 9월 13일에 벌어진 이스라엘의 테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98년 탄자니아와 케냐에 있는 미 대사관에 대한 테러 공격 이후, 당시 미 대통령 클린턴은 수단의 제약회사를 화학무기 제조하는 곳이라고 폭격했다. 물론 나중에 미국 스스로도 시인했듯이 그 제약회사가 화학무기를 제조했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수단에서 대부분의 의약품을 제조해 내던 제약회사가 하루아침에 미국의 폭격으로 사라지고 그 결과 수천의 무고한 아프리카인들이 허무하게 죽어갔다.
이러한 미국의 직간접적인 군사 개입은 비단 중동뿐이 아닌 세계 도처에서 벌어졌다. 베트남 전쟁 동안 4백만 이상의 베트남인들이 학살당했다(이 더러운 전쟁에는 한국도 한 몫 했다).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인도네시아의 수하트로는 1965년 쿠데타 당시 80만 이상의 인도네시아인을 학살했다. 1975년 당시 미 대통령 포드와 국무장관 키신저의 묵인 하에 동티모르에 침공한 수하트로는 25만 이상의 동티모르인을 학살했다.
미국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이나 미국의 비호 아래 자행된 친미 정권의 무고한 양민 학살은 이외에도 1954년 과테말라, 1970년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특히 앙고라), 1973년 칠레, 1980년 광주, 이란, 엘살바도르, 그레나다, 리비아, 소말리아,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수단, 브라질,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2차 대전이후 미국의 개입과 테러에 의해 희생된 전 세계인구는 8백만 명이 넘는다. 물론 이 숫자는 부상당하고,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난민이 된 사람들을 제외한 숫자다.
평화만이 해결책
9월 19일 뉴욕에선 반전을 위한 연대 모임이 열렸다. 9월 11일 이후 자생적으로 생겨난 반전 조직들을 뉴욕시 전체 차원의 연합으로 묶어내려는 첫 모임이었다. 긴급하게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5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70대가 넘어 보이는 노인부터 10대 후반의 대학생까지, 60년대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평화운동가, 지역사회운동 활동가, 학생운동가, 노조 활동가, 환경운동가, 여권운동가,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반자본주의 활동가, 백인, 흑인, 유태인, 아랍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 그야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우선 다음의 다섯 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우리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9월 11일에 벌어진 행위를 비난한다. 둘째, 우리는 반 아랍, 반 이슬람, 반 이민자 그리고 모든 인종, 민족, 종교에 대한 편견과 폭력에 반대한다. 셋째, 우리는 군사적 개입과 전쟁을 원치 않는다. 넷째, 우리는 모든 민주적 권리를 방어한다. 다섯째, 우리는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통한 세계 평화를 지향한다.
이날 모임에선 특히 60년대 벌어진 반전운동이 그 이후 노동자 조직화와 노동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반전운동에 노동계급을 조직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되면서 노조와 노동자들을 반전운동에 끌어들이는 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비록 당장 복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비해선 소수지만, 이러한 자생적인 반전 모임은 시애틀, 포틀랜드, 버클리,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등 다른 도시에서도 진행되었다. 9월 20일에는 미국 36개 주의 150여 대학에서 일제히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의 경우 약 3천 명의 학생, 교수, 일반 시민이 시위에 참석했다. 그 다음날인 21일 뉴욕에서는 5천명이 넘는 시위대가 “전쟁은 해답이 아니다”, “이슬람과 아랍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9월 11일의 비극을 전쟁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타임스퀘어를 향해 행진했다.
필자는 9월 11일 이후 뉴욕에서 벌어진 반전 모임과 시위에 참여하면서 전쟁의 광기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비록 사회적 정치적 인종적 배경은 다르지만 전쟁 반대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중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번 참사는 지난 수십 년 간의 미국 제국주의 대외 정책이 빚어낸 결과다. 또한 이 광기의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노동자 대중이다. 무역센터가 무너질 때 그 안에 갇혀 희생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로 그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무직, 일용직 노동자들과 긴급구조 대원들이었다.
전쟁이 벌어질 경우, 나가서 희생될 사람들도 바로 미국의 노동자 대중이다. 더구나 9월 11일 참사 이후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은 적자를 핑계로 적어도 10만명선의 대규모 감원을 발표했다. 그러지 않아도 침체의 징후를 보이는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빠질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도 바로 노동자 대중이다. 펜타곤의 군비예산 증가는 주택, 교육, 의료 등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필요한 예산의 삭감을 가져올 것이고, 이는 바로 대중의 삶의 질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세력이 미국의 대중과 연대하여 제국주의적 군사팽창에 맞서 싸우는 것이 더 큰 학살과 인류의 고통을 막기 위한 길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는 미국이 자행할 테러를 막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