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의 외침 “성차별, 노동현장의 차별을 넘어”

노동사회

여성노동자의 외침 “성차별, 노동현장의 차별을 넘어”

구도희 0 7,822 2017.05.11 11:10
   
제19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거리에는 유세차들이 연설과 로고송을 쏟아내고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닌다. 공약으로 대통령을 뽑자고 하지만 공약보다는 네거티브가 관심을 더 끌고 있고, 올해는 미국 대선의 영향인지 가짜뉴스가 SNS를 돌아다니고 있다. 2012년 대선 때는 그래도 TV토론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등장했으며, 보수 후보의 대표주자인 박근혜 후보조차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내걸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물론 지켜지지 않아 공약만 보고 투표할 수는 없다는 교훈을 함께 안겨 주었지만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지난 5년 동안 더 심각해졌지만 이제는 토론의 주요 이슈가 되지 않는 현실이 사실 걱정된다. 그럼에도 이번 대통령 선거에 더 큰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 이번 선거가 지난 10년 동안 더 엉망이 된 나라를 정상화하자는 희망과 어려워진 민생 문제의 해결을 함께 요구하며, 추운 겨울에 주말을 반납한 시민들의 뜨거운 행동으로 만들어 낸 선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어려워졌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에게 여성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물으면 다들 “가장 시급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라고 되묻는다. 그래서 한 가지를 이야기 하면 정말 한 가지 문제의 해답만을 내놓는다. 사실 그동안의 정권들은 모두 여성 고용률 확대-경력단절 해소-,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같은 식의 목적도 원인도 해법도 여성노동자의 요구나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들을 쏟아냈는데, 이는 여성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켰고 차별은 더 강화시켰다. 이런 식으로는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성노동자에게 닥치는 문제는 늘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 복합적인 억압과 차별은 단지 ‘여성이고 노동자라서’ 라는 것으로 요약되고 있다. 올해 초 있었던 두 여성노동자의 죽음도 이 사회의 복합적 차별이 가져 온 것이다.
 
 
두 여성노동자의 죽음에서 본 절망
첫 번째, 2017년 1월15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계단에서 보건복지부 사무관인 30대 여성공무원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새벽 출근과 야간근무를 계속 반복했고 휴일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에 “워킹맘 과로사”라는 제목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녀는 안정적인 고용과 성차별이 매우 적다고 알려져 가장 선망되는 정규직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중앙부처의 사무관이다. 공무원이기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사용이 가능했고 세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비정규직 여성과 소규모 사업장의 여성은 출산휴가도 육아휴직도 그림의 떡이지 않는가. 어쨌든지 그녀는 출산도 육아도 여성의 일도 환영하지 않는 이 사회에서, 또 노동개악으로 성과급이 도입된 현실에서 업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과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대선후보가 “설거지는 하늘에서 정한 여자의 일”이라는 말을 당당히 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사 일, 아이 돌봄에서 놓여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어렵게 확보한 정규직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정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사회, 출산‧육아와 가사 일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독박 육아’의 사회가 함께 저지른 살인이다. 또한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절망적인가를 보여주는 현재의 모습이다.
두 번째, 2017년 1월23일 전주의 LG유플러스 협력업체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H양이 저수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애완동물학과를 전공한 고3 학생이었지만,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콜센터에서 저임금의 강제노동을 했다. 콜센터에서 모두가 꺼리는 해지방어 업무를 맡은 그녀는 할당량을 못 채워 고민했고, 아빠에게 보낸 “아빠, 나 오늘도 콜 수 못 채웠어”라는 문자는 유서가 되었다. 
서비스산업의 확대에 따라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크게 늘어났는데, 업무 특성상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콜센터 업무는 일 자체가 감정소모가 많은데다, 회사가 노동의 양을 측정하기 위해 콜 수, 통화시간 등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관리한다. 또한 대부분 아웃소싱 업체라 임금수준도 낮고 일도 힘들다. 심지어 사고가 터져도 원청업체는 책임지지 않는다. 지난해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외주업체 직원이 겪은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한 감정노동의 외주화’로 이어진다. 그 곳은 2년 전에도 여성노동자의 자살이 있었지만 현장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H양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었다. 무책임하고 실적 위주인 현장실습제도의 문제, 간접고용의 문제, 과도한 감정노동과 노동통제의 문제, 노동의 위계에서 가장 밑인 나이 어린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아직 10대인 H양은 우리의 미래이다. 미래의 여성노동자가 기댈 곳 없이 좌절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 그녀 가까이에 노조가 있었더라면, 2년 전에 더 확실히 함께 싸웠더라면 하는 가정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다. 미래를 지키려면 서둘러야 한다.
 
 
여성노동자가 끄집어낸 상자 속 희망
2017년 3월8일 오후 3시 광화문에 여성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20대 취업준비생부터 60대 청소용역 노동자들까지 3천명의 여성들이 “3시 STOP”이라고 적힌 피켓을 하나씩 들고 모였다. 평소 같으면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 3시, 나이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른 여성들이 그 곳에 모인 이유는 한 가지다. 더 이상은 차별을 견디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차별인 성별 임금격차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임금은 남성임금의 64%에 불과해, 3시 이후엔 무임금 노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여성노동자들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8일에 일을 멈추고 조기 퇴근해 우리의 요구를 몸으로, 구호로, 노래로 표현하며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행진하였다. 우리에게 광화문은 세종대왕 앞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외쳤던 공간이고,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했던 공간이며 올 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 부도덕하고 무능한 정권의 퇴진과 재벌개혁을 외쳤던 공간이다. 여성노동자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3시 STOP!, 차별을 멈추라!” 비록 조직률은 1%지만 그래도 조직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문제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여성단체들, 청년‧학생들이 의식적으로 희망을 만들기 위한 저항을 시작했다.
 
(2017년 4월15일 광화문에서 열린 ‘2017 페미니스트 직접행동’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성별 임금격차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여성노조)
 
 
왜 성별 임금격차 해소인가?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격차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려 15년 동안 OECD 국가 중 1등을 차지해왔으니 말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62~64%를 오가며 지속되고 있는데, 격차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는 노동현실에서 비롯된다. 여성노동자의 55%가 비정규직이며 대부분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여성노동자의 임금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또 여성노동자가 주로 종사하는 업종의 임금은 낮게 형성되어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탓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남성노동자 임금의 35.8%에 불과하다. 게다가 일하는 여성의 출산과 육아휴직에 너그럽지 않은 성차별적인 기업 관행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은 경력 단절을 겪거나 승진에서 뒤처지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차별이 중첩되어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나는 것이고, 그 해결은 바로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여성이 많이 하는 노동에 대한 존중이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저임금 해소가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 
성별 임금격차 없는 사회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가 함께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노동자에게 좋은 일은 모든 노동자에게 좋다.
 
 
여성노동자가 살 만한 세상을 위한 우리의 요구
이러한 다중적인 차별 속에서 여성노동자의 요구는 많다. 전국여성노동조합도 대선 요구과제를 줄이고 줄여 6개 의제, 29개 요구로 겨우 정리했을 정도이다. 아래에 ‘3시 STOP’을 외치며 많은 여성단체, 노동단체와 개인들이 머리를 모아 시급한 내용이라고 정리한 19대 대선 의제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 의제는 10만 명 서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여성노동자들의 19대 대선 4대 의제 10대 과제
1. 성별임금격차 해소
○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은 60%이며, 최저임금 수혜 노동자 중 여성은 64%로, 최저임금의 인상은 여성의 전체적인 임금인상 효과를 낳는다.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즉각 인상해야 한다.
○ 임금 공시제도 실시: 같은 일터에서도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임금 차별이 발생한다. 실제 어떻게 임금이 책정되는지 밝히는 것만으로도 동일임금 효과를 낳을 수 있다.
○ 돌봄‧서비스노동 가치 재평가를 통한 임금 기준 제시: 보육, 간병을 비롯한 돌봄 노동과 서비스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여 적절한 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2. 일‧돌봄‧쉼의 균형
○ 임금 하락 없는 주 35시간 전면 도입: 여성에게 집중된 돌봄의 책임은 우리 사회의 장시간 노동 탓이다. 주 35시간 노동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고 함께 쉬어야 한다.
○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실효성 강화: 노동법에 보장되어 있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 청구권 등을 일터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높이고 돌봄 책임을 나누기 위해 남성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한다.
 
3.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
○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기업주 책임 강화: 직장 내 성희롱은 기업주의 개입과 책임 하에 예방이 가능하다. 성희롱 예방과 후속조치에 대한 기업주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 감정노동, 근골격계 질환 예방 대책수립으로 건강권 보장: 감정노동 직군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경력단절 이후 노동시장에 진입한 여성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노동시장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감정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입법, 여성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
 
4. 불안정노동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
○ 출산휴가 급여의 불안정 노동자(자영업, 특수고용) 적용 확대: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자영업자,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출산휴가 급여를 전면 적용해야 한다.
○ 고용보험 대상 확대 적용(고용형태 및 퇴사 사유 불문): 정규직 중심의 고용보험 가입으로 인해 비정규직, 특수고용,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주부 등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떠한 고용형태이거나 어떠한 사유로 일을 중단하게 되든지 일정 기간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에 대해서는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하며, 안전한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 밖에도 노조할 권리의 보장을 추가하고 싶다. ‘3시 STOP’도 조직된 여성노동자의 참여덕분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제약하는 두 가지 독소 조항을 폐지해야 여성노동자의 조직화와 권리 찾기가 더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본다.
○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제도 폐지 및 자율교섭 보장: 사용자가 같으면 복수노조의 교섭을 강제로 단일화시키는 현재의 조항은 노조의 기본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특히 간접고용 노동자와 소수 업종의 여성노동자는 교섭권이 박탈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복수노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강제적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금지: 대부분의 노조 투쟁, 특히 해고 반대투쟁을 막기 위해 기업이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은 노조할 권리와 쟁의할 권리를 짓밟는다. 이번 대선에서 이 문제를 확실히 바로잡아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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