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의 ‘경로의존성’과 ‘퀘렌시아’를 생각한다 - 2020년 전태일 50주기를 지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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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동의 ‘경로의존성’과 ‘퀘렌시아’를 생각한다 - 2020년 전태일 50주기를 지나며 -

강도수 4,050 2020.12.07 09:00

[연구소의 창] 노동의 ‘경로의존성’과 ‘퀘렌시아’를 생각한다 - 2020년 전태일 50주기를 지나며 -
 

작성자: 강도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


전태일 50주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년은 이소선 어머님 10주기라고 합니다. 전태일 50주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고민해봅니다. 코로나19가 삼켜버린 것은 우리의 일상만이 아닙니다. 노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정치적 의제는 여전히 산적해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준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저는 재벌이나 기업에만 가능한 걸로 인식되었던 현금 직접 지원방식을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라는 형식으로 국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시행되었다는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11월 27일 청계피복노조 50주년을 기념하며, 2021년에는 11월 27일을 봉제인의 날로 기념하자는 선언도 있었습니다. 조선노동공제회(1920년 4월 11일) 100년을 넘기지 않고, 지난 12월 7일 전태일재단에서 노동공제회 연합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풀빵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해보다도 전태일 50주기인 2020년에 가장 많이 사용되어진 단어는 ‘연대’, ‘사회적 연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2월 2일과 3일 양일간에 열린 <2020 11회 한겨레 아시아미래사회포럼>에서도 ‘팬데믹 이후의 세계: 연결에서 연대로’라는 주제를 다뤘다고 합니다.  


1970년의 연대와 2020년의 연대를 돌아보기


2020년 전태일 50주기. 그 ‘2020년의 연대’가 50년 전, ‘1970년의 연대‘보다 더 성숙하고 깊어졌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2021년의 연대‘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토론해야 합니다. 그 토론을 위해, 저는 ‘2021년의 연대’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언명(言明)들을 되새깁니다.


“노동운동의 세 부문 -노동조합, 협동조합, 정치조직-은 하나의 노력이 세 국면으로 나타난 것이고, 이 노력은 공통의 필요와 감동에서 우러나오며, 때로는 분열을 겪는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길은 공통의 목적을 향해 뻗어있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닫기를…….”

- 『영국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지음, 김철수 옮김) 중에서 


"노동자라는 말도 근본적으로는 내 인생을 내가 산다는 의미에서 삶의 주체가 아니라 오로지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사는 존재, 자본 아래로 가서 임금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면이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기여나 그 고통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죠.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인간상 자체가 한편으론 노동자, 다른 편으론 소비자입니다. 국가는 납세자를 필요로 하고요. 이런 ‘이름붙이기’로부터 우리 스스로 ‘삶의 주체’로서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봅니다.”

- 『한국경제의 배신』(강수돌, 이정환 지음) 중에서


저는 전태일 50주기를 지나면서 ‘퀘렌시아’와 ‘경로의존성’, 이 두 가지 단어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경로의존성은 자연법칙으로 보면 관성의 법칙처럼 기존에 해왔던 경로를 바꾸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투우장에서 피범벅이 된 채 싸우던 소가 문득 싸움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기운을 모아 다시 싸울 힘을 회복하기 위한, 그 소만 알고 있는 안전한 공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노동의, 노동운동의, 노동조합의 ‘퀘렌시아’는 어디일까요?  


대안을 찾아, 경로 밖으로 


결국 ‘경로의존성’을 넘어 ‘퀘렌시아’를 찾아내는 우리의 핵심 동력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이미 있습니다. 기득권에 중독되지 않고 자신을 기만하지 않고, 우리를 억압하려는 폭력에 굴하지 않고, 인간 본연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힘은 얼마든지 다시 표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의 연대’가 저물어가는 12월에, ‘2021년의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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