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시간선택제 공무원제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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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시간선택제 공무원제도의 민낯

노광표 5,716 2017.08.21 12:34
-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귤이 황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을 꼬집는 비판이다. 시간제 노동 이야기다.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시간제 노동의 활성화를 꾀하였다. 시간제 노동은 전일제 노동에서 벗어나 일·가정 양립을 가능케 하며 경력단절여성에 적합한 일자리로 알려져 왔다. 이명박정부는 민간부문의 시간제노동 확산을, 박근혜정부는 공공부문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추진하였다. 이명박정부의 시간제 노동 정책이 저임금의 비정규직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박근혜정부는 ‘시간선택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정부는 시간선택제 정책을 통해 여성 경력단절 방지, 저출산·고령화 극복, 일자리 창출이 가능함을 역설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 2018년까지 정원의 1% 이상의 시간선택제를 활용하도록 강제하였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으로 공직사회에도 시간선택제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고 채용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3년에 공무원 임용령을 개정하여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임용 근거를 마련하였다. 2014년부터는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하한선을 1%에서 3% 이상으로 높였다. 이 결과 불과 4년 만에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수는 5527명(국가직 1745명, 지방직 3782명)으로 급증하였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채용은 기존의 시간제 계약직 공무원을 대체함과 동시에 고용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성(性)차별적인 나쁜 일자리 양산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일자리임에도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에 대한 당사자들의 불만과 비판이 크게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국민연금을 적용받는다. 공무원으로 임용됐으면 당연히 공무원연금을 적용받아야 하지만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국민연금이 적용된다. 정부는 전일제 공무원만이 공무원연금 적용 대상이라고 현행 공무원연금법을 좁게 해석하여 시간제 공무원을 공무원연금에서 배제하고 있다. 일반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고용보험에 준하는 고용보장을 받지만, 국민연금에 가입한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별도로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나, 고용보험 대상도 안 된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공무원이면서도 공상이나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한편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일반 공무원에게 금지되어 있는 영리업무와 겸직은 허용된다. 공무원이 수행하는 공적 업무의 특성을 감안하여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 제64조에 의하여 영리업무 및 겸직이 금지되어 있다. 반면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25시간 미만으로 보수가 적기 때문에 생활 유지를 위한 다른 영리활동과 겸직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업무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영리활동을 허용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편법이다.
 
더불어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선택의 권한이 없다. 시간제근로는 육아, 건강, 교육 등 개인적인 이유로 전일제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노동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 효과가 현실화하려면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시간제 노동이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시간제 노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시간제 공무원을 선택한다. 시간선택제로 임용된 과반수의 공무원들은 전일제 공무원을 원하지만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시간선택제로 일하고 있다. 시간제 공무원의 비중이 높고, 차별이 없는 동등 대우의 모범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 모델은 세 가지 점에서 좋은 실천 모델로 인정된다. 그 세 가지는 근로조건과 승진 전망에서 시간제 노동자를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 시간제 노동자가 상위 직업수준과 조직계층으로 진입하는 것,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에서 개인이 노동시간을 조정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시간선택제가 공직사회에 도입되었으나 우리의 현실은 네덜란드 모델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은 스스로 자신이 일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할 수 없고,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전환할 권리가 없다.
 
시간선택제 공무원 채용공고문에는 시간제 공무원의 초과근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공무원 일터에서 이들의 초과근무는 다반사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저임금과 하위직 직무에 주로 편중되어 있고, 여성이 대부분이다. 반복적인 단순 민원업무에 주로 배치되어, 비중이 있는 업무에서는 소외돼 있고, 근무시간에 비례해 승진하는 연공서열 문화는 미래의 희망을 빼앗아 간다. 시간선택제도는 공직사회에 도입된 차별적인 임용제도이다. 남아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시간선택제 공무원들에게 적용되는 차별적 제도를 없애거나, 시간선택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다. 박근혜정권이 남긴 공직 임용의 적폐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 이 칼럼은 8월 20일자 뉴스토마토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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