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주성' 비판한 박정수 교수와 보수언론의 치명적 오류(2019.6.12)

언론 속 KLSI

[칼럼] '소주성' 비판한 박정수 교수와 보수언론의 치명적 오류(2019.6.12)

김유선 4,099 2019.07.10 01:50
[칼럼] '소주성' 비판한 박정수 교수와 보수언론의 치명적 오류 (오마이뉴스 똑경제,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 문제는 물가통계 아닌 임금통계, 김유선, 2019.6.12)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40여 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노동조합이 가장 잘 나갔을 때가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매년 봄 임금교섭을 '한 해 농사'라 불렀다. 임금교섭 시기만 되면 경총 등 재계에서는 '생산성 오른 만큼만 임금인상 요구하라'고 했다. 노동계는 '생산성 오른 만큼만 임금이 오르면 분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 플러스 알파를 해야 분배구조가 개선된다'고 답했다.
 
 <그림1>은 지난 40년 동안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를 그래프로 그린 것이다. 위쪽 선은 노동생산성 추이를 나타낸 것이고, 아래 선은 실질임금 추이를 나타낸 것이다. 노동생산성은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취업자 수로 나눈 것이고, 실질임금은 한국은행 국민계정에서 피용자보수총액을 구한 뒤 노동자 수와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눈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노동조합이 가장 잘 나갔던 1990년대 초반에도 임금인상률은 생산성증가율에 조금 못 미쳤다. 하지만 그 차이가 크진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뒤로는, 저임금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정규직도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이 이어지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이라 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는 생산성은 증가해도 실질임금은 인상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임금 없는 성장'이라 불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에서 '임금 없는 성장'으로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은 국내외 연구자들 사이에 폭넓게 공유되는,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이런 상식이 통계적 착시에서 비롯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2000년 이후 실질임금인상률이 생산성증가율에 못 미친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는, 실질임금을 계산할 때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눴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명목임금을 생산자물가지수(GDP 디플레이터)로 나누면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이라는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 수립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보수언론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근거가 허물어진 양 보도했고, 진영 논리에 휩싸인 일부 경제학자들은 최소한의 검증 절차조차 없이 이에 편승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실질임금을 계산할 때,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누는 것은 오랜 상식이다. 임금교섭에서 중요한 것은 실질구매력의 유지, 개선이며, 정부와 재계가 주장해 온 생산성임금제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다. 박정수 교수의 결정적인 오류는 생산성은 취업자 통계를 사용하면서, 임금은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통계를 사용한 점이다. 5인 미만 사업체와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임금, 자영업자 등 비임금 근로자의 노동소득은 빠뜨린 채,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임금통계만으로 섣부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으려면, 한국은행 국민계정에서 피용자보수총액을 노동자수로 나누어 피용자 보수(또는 노동자 임금)을 구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 '소주성' 정책 비판 박정수 서강대 교수의 결정적 오류
 
<그림2>에서 왼쪽(A)은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누어 실질임금을 계산했을 때 연도별 추이다. 노동생산성은 증가하고, 피용자 보수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오른쪽(B)은 명목임금을 생산자물가지수로 나누어 실질임금을 계산했을 때 연도별 추이다. 피용자 보수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제자리걸음 하고, 그 뒤로도 생산성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졌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하든 생산자물가지수를 사용하든 피용자 보수 통계를 사용하면,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 임금 없는 성장'이란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은 뚜렷이 관찰된다.
 
 <그림2>에서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추이는 2000년을 기준연도로 한 것이다. 2000년은 실질임금이 크게 하락한 외환위기 직후여서, 그 뒤 임금상승폭이 상대적으로 높게 측정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장기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그림 3>에서 1970년부터 2018년까지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실질임금은, 물가통계로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했느냐 생산자물가지수를 사용했느냐에 관계없이, 큰 틀에서 노동생산성과 동반상승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해서 구한 피용자 보수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부터, 생산자물가지수를 사용해 구한 피용자 보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성장에 못 미치는 임금인상'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선행 연구자들이 물가통계를 잘못 사용해서가 아니라, 박정수 교수가 임금통계를 잘못 사용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Premium/at_pg.aspx?CNTN_CD=A0002544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