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연재 칼럼인 <세상읽기> 원고(2022.8.12)입니다..
- 아래 -
재벌 유통기업의 ‘노예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정부가 대형마트 정기 의무휴점 폐지를 추진한다. 뜬금없이 국민청원을 통해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시행했는데 어설프기 짝이 없다. 투표 과정에서 조회 및 투표 수 조작 같은 어뷰징 문제가 확인되었다. 준비 없는 정책 결정과정도 문제고, 국가 정책을 인기투표 하듯 진행하는 것도 문제다. 뭐 하나 제대로 신뢰 없는 발표뿐이다. 20대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없었던 사안이다.
사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완화는 지난 6월 윤석열 정부의 소통창구 즉, ‘국민 제안’에 접수된 민원 1만2000여건 중에서 선정했다. 그러나 추진과정이나 배경에 의구심이 든다. 제안 내용 설명과 공청회도 없이 추진하고 있다. 논리가 없지는 않다. 소비자 선택이나 온라인 판매 확대에 따른 변화된 환경 논리를 꺼낸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 동안 호황을 누릴 때는 아무런 이야기를 않다가 이제는 온라인 시장과의 ‘불평등한 경쟁’을 운운한다. 그렇다보니 기업의 민원을 국민투표라는 형식을 취한 것 아닌가.
자칫 의무휴점제 시행 10년 만에 폐지될 수도 있다. 물론 국회 입법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을 통한 우회 방법을 취할지도 모른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시민과 노동자들의 호응이 컸다. 의무휴점제는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월 2회 휴점이 정착되었다. 다만 지자체 조례로 주말과 평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평일에 휴점하는 매장도 있다. 대형쇼핑몰은 물론 연간 총매출액에서 농수산물 비중이 55% 이상인 대규모 점포도 제외된다.
그런데 이조차도 재벌 유통기업들은 수용하지 않고 두 차례 법률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과 같은 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골목 상권과의 상생 발전이라는 공익 증대는 물론 노동자 건강권 보호가 더 크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규제정보포털을 통해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규제심판회의에서 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20여년 전 대형마트 ‘24시간 영업’이나 백화점 ‘연장영업’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렇다보니 유통업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았다. 쉴 시간조차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어깨와 허리·목 등의 근골격계 질환이나 하지정맥류 증상과 같은 업무상 질병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유통업은 파견용역 비정규직이나 입점협력업체 직원이 더 많다. 다수는 중소영세업체 직원들이며, 여성과 중고령층 및 청년도 적지 않다.
현장에서는 인력부족으로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이들이 다수다. 정기휴무까지 사라지면 사실상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라”는 소리다. 공장의 기계가 쉴 틈 없이 돌아가듯, 기업의 매출을 위해서라면 쉬지 않고 일하라는 얘기다. 그간 공룡 유통기업의 성장과 이윤의 향유 속에 숨겨진 은폐된 노동을 살펴봐야 한다. 전 산업 평균보다 높은 저임금 노동자가 3분의 1이나 된다. 영화 <카트>에서 그러했고, 독일의 <인 디 아일>에서도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과 삶은 비슷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마트 노동자들은 쉴 자유조차 없다. 20세기 착취공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2013년 대형마트 의무휴점 시행 첫해 홈플러스 노동자들의 청계산 야유회가 떠오른다. 정기휴점으로 다 함께 야유회를 갈 수 있어 기뻐했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하루는 동료나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인간의 행복과 노동자의 삶의 질보다, 재벌 유통 기업의 이윤이 우선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존권과 존엄성이 보장돼야 한다. ‘규제개혁’ 대상 목록에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건강권이 검토되는 것 자체가 ‘국격의 상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