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말 사람이 미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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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말 사람이 미래였던가

김종진 0 6,574 2015.12.23 01:44
<대기업 희망퇴직은 피할 수 없는가>

* 이 글은 2015년 12월 23일 중앙일보의 전문가 찬반 칼럼의 필자 원고입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정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찬성입장에서, 저는 반대입장에서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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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람이 미래였던가
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두산인프라코어 희망퇴직자의 면담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이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의 방송 홍보(CF) 시간과 딱 맞는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뭇매를 맞고 있는 두산그룹 희망퇴직은 ‘20대 신입사원’ ‘출산육아휴직 여성’ ‘정규직 전환자’까지 포함됐다. 언제부터인가 ‘명예퇴직’이라는 말도 ‘희망퇴직’으로 바뀌면서 이제 갓 취업한 20대까지 정리해고 대상이다.

 박용만 그룹회장의 지시로 1∼2년 차는 제외했다고는 하나, 3∼5년 차 거의 대부분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난 것이다. 직장을 떠나야 할 사람 중에는 올해 결혼한 신혼, 새해를 맞이하면서 첫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도 있다. 한 부서가 통으로 해체된 곳도 있으니, 남아 있는 사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희망퇴직 과정에서 직원을 존중하는 시스템은 두산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지난 2년 사이 두산은 계열사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한 전례가 있다. 그런데 올 들어 벌써 네 번째 희망퇴직을 진행하면서 1500명이 넘는 직원이 감원됐다. 문제는 이 기업이 어쩌다 이런 사태까지 왔고, 갑자기 적자를 초래한 원인은 무엇이며, 불가피한 인력 구조조정 과정이었다면 어떻게 풀어 갔는가인데, 회사와 최고경영진은 속 시원한 답변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2007년 경제위기 시 인수한 소형 중장비 업체 ‘밥켓’의 거액 인수와 건설경기 악화가 겹치면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진 것이다. 매년 부채 총액의 6% 이상을 이자로 내고 있고, 내년에는 원금 상환 압박까지 받게 된다. 거액의 무리한 인수합병(M&A)은 기업 핵심 사업부문인 공작기계 매각까지 초래했고, 향후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자리 잡을지 의구심이 든다.

 문제는 외부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회사와 최고경영진이 보인 안이한 경영 행태다. 기업 ‘영업’ 부문에서는 이익을 내고 있으나, 채무 이자가 대부분인 ‘영업 외’ 손익 부분에서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모기업인 (주)두산에는 당기순이익보다 높은 배당을 하고 있다. 기업의 존속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창업가 가족들이 주식을 많이 보유한 (주)두산에는 이익을 몰아주고 있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희망퇴직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산의 인력 구조는 사무직과 생산직으로 나뉜다. 문제는 4년제 대졸 공채 직군과 2∼3년제 초대졸 직군으로 이원화된 사무직군 중 지방대나 초대졸 출신이 이번에 ‘찍퇴’와 ‘강퇴’로 표현되듯 희망퇴직 주 대상이었다. 두산의 차별적인 인사시스템은 소위 ‘흙수저’도 물고 나오지 못한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초대졸 출신을 대상자로 한 것이다.

 애초부터 희망퇴직 명단은 정해져 있었고, 몇 분간의 면담이 전부였다. 두산은 올해 6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신규 채용을 늘린 모범 기업이라고 소개됐다. 하지만 지난해 채용한 358명 중 200여 명이 단기계약직이라고 한다. 반면 경영부실을 초래한 임원이나 팀장급 이상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 일부 임원 자녀들은 사업수익이 안정적인 곳으로 이동했다는 말도 나온다. 회사는 희망퇴직 규모를 줄이고자 계열사에 부탁해 인재들이 이동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희망퇴직’이라는 기업의 간접적 고용조정 방식은 정리해고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 있고, 기업이 원하지 않는 고비용 또는 저효율 노동자를 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으며, 종국적으로 그들을 현직에서 배제하거나 퇴직하도록 함으로써 업무 능력 부족자에 대한 엄격한 해고 제한 요건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겉으로 표방하는 것이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희망 없는 절망퇴직이다. 알려지기론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들에게 자기반성문과 같은 ‘회고록’을 쓰게 하거나, ‘연차휴가는 물론 화장실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과연 두산에만 있는 현실인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출처: 중앙일보] [논쟁] 대기업 희망퇴직은 피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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