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연재하는 <세상읽기> 2021년 10월 7일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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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가치는 뭔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샤넬, 랑콤, 시세이도, 에스티로더, 디올, 시슬리. 누구나 한번쯤 접해보았을 외국계 화장품 브랜드다. 구인구직사이트 채용정보를 검색해보니 다채롭고 흥미로운 문구가 확인된다. “○○○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의 한국법인”으로 혹은 “전 세계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제품, 트렌드를 선도하는 뷰티 제품”으로 소개한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대부분 유한회사 설립을 통해 한국 진출 30년이 되어 간다. 이들 기업은 지난 수십년 동안 막대한 이윤을 향유했다. 연간 매출 1000억원 남짓부터 1조원 대기업에 버금가는 회사까지 있다. A회사 홈페이지에는 지난 10년 사이 두 배로 증가한 매출액이나 혁신적인 가족 경영 기업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의 노동현실은 암울하다. 유통업 특성상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어야 하기에 20, 30대 청년들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않다. 매장 인력 10명 중 9명은 여성이다. 일과 삶의 균형이 불가능한 구조인지라 대기업보다 2배 이상 퇴사율이 높다. 최근에는 일이 힘들어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일선 현장에서는 본인의 다음달 스케줄이나 휴일휴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예측 가능한 스케줄을 위한 ‘지정휴일제’를 운영하지 않는 곳이 다수다. 선배들은 신입 직원 입사 후 100일을 지나 1년을 버텨준다면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역과 달리 수도권 매장에서 3년을 다니면 ‘고참’ 대열에 진입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이 융합되면서 노동과정의 변화가 쟁점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보다 온라인몰을 통한 구매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에는 전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확대와 함께 판매액이 급증하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 오픈 매출이 백화점 온라인몰이나 자사몰의 판매보다 많다. B회사는 온라인몰 매출이 50%, C회사는 70%나 된다. D회사의 연평균 성장률이 5% 남짓임에도 온라인 채널 매출이 61%를 차지하는 현실을 보면 지각 변동 수준이다. 이미 각 회사 간 온라인 시스템으로의 고객 유입 경쟁이 시작된 지 오래다. E회사는 온라인몰을 통한 첫 구매 시 할인(15∼20%) 행사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온라인 채널의 확산과 융합은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업태 및 기업 간 치열한 시장경쟁을 야기시키고 있다. E회사의 온라인 예약 후 오프라인 서비스 판매 전략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맞물려 고용과 노동조건이 노사 간 쟁점이다. 무엇보다 기존과 다른 업무의 증가다. 온라인 구매 후 제품 문의와 상담부터 테스트와 메이크업 서비스, 샘플링, 반품까지 이전에 없던 일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자사몰 온라인 매출의 증가는 물류센터 확보와 배송 노동 문제와도 연동되어 있다. 반면 매장 인력은 감소 추세다. 외국계 명품 브랜드 6개 회사의 매출 성장과 반비례하게 인력은 최근 2년 사이 감소했다. 매장에서는 인력부족으로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는 곳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수십년 전부터 낮은 기본급에 판매 실적 비중이 높은 성과급 형태의 임금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전월, 전년 대비 목표량에 따른 매장 인력 배치와 인센티브가 결정된다. 잦은 프로모션 행사를 통한 고객 끌어들이기 전략은 관행이다. 우리나라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처럼 서비스의 질과 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있던가. 이제는 디지털화로 초래한 ‘온라인노동’의 성격과 가치를 재논의할 시점이다. 지난 9개월간 외국계 화장품 기업 노사 간 30차례의 교섭과 조정에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업 스스로 디지털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찾듯 노동문제도 새롭게 조응할 필요가 있다. 과연 글로벌 명품 기업들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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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0080300075#csidxd2d0ae9f538a956b4d6fb53f35bdd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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