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친절 강요보다 고통 해결이 우선이다(한겨레, 2011.09.16)
김종진
0
5,246
2011.09.16 04:06
[한겨레 - 낮은목소리] 친절 강요보다 고통 해결이 우선이다(2011.9.16)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집에서 가족이 불러도, 친구 전화에도, 꿈속에서도 “예! 고객님”을 외치는 사람들. 고객이 화를 내거나 손찌검을 해도 고객은 ‘왕’인지라 절대 찡그리지 않고 “죄송합니다, 손님”이라고 해야 하는 사람들. 회사에 출근해서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 자신의 감정도 사물함에 넣어 둔 사람들. 바로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밝게 웃거나 혹은 무표정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삶이다.
감정노동은 밝은 미소를 지어야 하는 ‘긍정적 감정노동’(서비스·판매직)뿐 아니라 로봇처럼 무표정한 ‘중립적 감정노동’(심판, 카지노 딜러, 장의사 등), 그리고 화난 목소리와 태도를 드러내는 ‘부정적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직업(채권추심원, 조사관, 보안 경비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긍정적 감정노동은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들이 수행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서비스·판매직 종사자 630여만명의 절반이 넘는 380만명이나 된다.
사실 기업은 고객에게 표출하는 감정적 서비스의 양과 질이 ‘매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기업은 고객에게 눈 맞춤(eye contact)은 기본이고 무릎을 꿇고 서비스를 제공(puppydog service)하게끔 한다. 그 순간 고객과 서비스 노동자들은 동등한 인간일 수 없다. 아무리 서비스의 어원이 라틴어 ‘노예’(servus)에서 출발했더라도 강요된 서비스는 비인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 노동의 성격상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감정노동이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적지 않은 건강상의 문제(우울증, 탈모, 공황장애, 자살 등)가 발생한다. 실제 서비스 종사자 10명 가운데 3~4명가량은 “고객한테서 인격무시나 폭언을 경험”하고 있다. 심지어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방문이 필요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비율(26.6%)이 일반 시민(14.3%)에 비해 거의 2배나 높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문제는 감정노동으로 발생하는 감정불일치 상태를 그때그때 해소하지 못하고, 동료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손님의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기업은 감정노동 문제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웃음을 강요하는 친절 매뉴얼과 모니터링은 있으나, 감정노동 고통 해결 매뉴얼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친절교육과 모니터링, 재교육과 인사평가, 유니폼 변경, 고객소리함 설치 등 다차원적인 감정노동 요구와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 바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정부와 기업의 태도가 중요하다.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고려하면 무엇보다 정부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감정노동의 문제점을 알려야 한다. 또한 개별 기업에 감정노동 가이드라인을 제시함과 동시에 실효적인 제도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부 기업(로레알코리아, 인천부평세림병원)처럼 노사 공동으로 감정노동 해소 프로그램 등을 만든 좋은 사례를 정부가 적극 홍보하고 권장해야 한다.
둘째,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유물인 반사회적 노동 행태(감정노동)는 이제 지탄받아야 한다. 또한 이제는 고객들도 이른바 ‘진상 고객’이 아닌 서비스 노동자를 존중하는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내가 제공받는 서비스가 불편하게 느껴져야, 우리는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기업한테 서비스의 불만 사항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감정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휴게공간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결국 감정노동 문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이다. 이것이야말로 서비스 수혜자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감정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