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경향신문 <세상읽기>의 2020년 12월 4일자 칼럼입니다.
[세상읽기] 청년유니온14, 고장난 사회를 바꾸다!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청년유니온 출발 어느덧 10년이다. 1기부터 6기 집행부와 대의원들까지. 몇몇은 활동가로, 일부는 정부와 의회로, 다수는 각기 일터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언론과 대외활동을 통해 청년유니온을 아는 이들이 많지만, 10년 전 그 출발은 밝지 않았다. 2010년 3월13일 청년유니온은 청년세대라면 직업이나 고용형태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세대별 노조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그러나 창립 총회 이후 전국 단위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교부받는 데 1145일 시간이 필요했다. ‘5전6기’ 끝에 성공의 결실이다.
당시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가 반려된 이유는 “구직자를 조합 가입대상으로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청년유니온은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기획한다. ‘구직자 1인+취업자 1인’이라는 2인 노동조합 모델의 제안이다. 청년유니온1, 청년유니온2, 청년유니온3부터 청년유니온27까지 전국 지자체 27곳의 행정기관에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 제출 전략을 기획했다. 모두 반려처분받았지만 청년유니온14가 제기한 행정소송이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서 법내 노조의 길을 열게 되었다. 그 후 세대별 청년노동조합으로서 첫 노동조합 설립 신고 필증(2012·3·14)을 서울시청이 발급했고, 서울시와 첫 사회적 교섭의 결실을 맺기까지 노조 설립 후 1053일의 시간이 걸렸다.
청년유니온 출범 당시 그 누구도 지난 10년의 궤적은 생각하지 못했다. ‘원두의 미래를 고민하다!’(커피 전문점 주휴수당), ‘가격을 매긴 이력서’(토익 어학시험 불공정 약관 시정), ‘따뜻한 피자보다 안전한 피자를’(30분 배달제 폐지), ‘레드카펫 뒤의 노동’(국제영화제 스태프 임금 체불)과 같은 이슈로 노동문제를 고민했다. 편의점 최저임금 미지급 문제부터, 인턴 열정페이와 산학협력 현장실습까지.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슬로건으로 청년유니온은 청년의 삶과 일터에 변화를 일으켰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시절 용기 있는 행동들이다. 청년유니온의 발자취는 노동운동이 놓친 사각지대를 촘촘하게 메꾸어주었다.
2009년 4월 첫 모임 이후 창립 당시 60명이었던 조합원이 현재 2048명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노동상담 4174건, 언론보도 1만1369건, 체불임금 2건의 11억원 해결 사례 등은 의미 있는 성과다. 전국 권역별 청년유니온 지부는 과도기적 노동문제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영역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특히 민달팽이유니온이나 청년연대은행 토닥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청년 문제를 ‘취업과 실업’에서, ‘주거’와 ‘금융’ 의제까지 확장시켰다. 청년의 삶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에서, 이제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국 200여곳의 지자체에 청년기본조례가 만들어지고, 지난 8월 청년기본법 시행에는 청년유니온의 역할이 매우 컸다. 최근에는 청년과 가까이, 현실 사례에 기반한 노동교육과 상담·연구 활동을 위해 부설 센터도 설립했다.
사실 노동운동이라는 낯선 단어와 경직된 조직활동에 고집하지 않는 것은 청년유니온의 장점이다. 이것은 기존 노동운동과 다른 노동조합 활동의 생경함이자 신선함이다. ‘우리동네 소모임’ ‘강강수월례 모임’ ‘홍팔롱’ ‘내일을 위한 보드게임’ ‘가위손 TF’ 등과 같은 일상적 소규모 조합원 모임은 세대별 특성이 반영된 청년노동운동의 모습들이다. 청년유니온 10년은 전태일 50주기와 조우한다. 1969년 전태일이 외친 노동의 의미와 2020년 청년유니온이 맞이한 노동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10년 보수정부 시기 여러 난관에도 잘 버텨왔다. ‘세상의 냉소를 넘어 우리가 만드는 다음’이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청년유니온의 다음 10년. 좌충우돌하더라도 그네들에게 지지를 보낸다.
[원문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040300055&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