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SNS가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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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SNS가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

김종진 0 4,406 2018.01.17 07:21
경향신문 [세상읽기]라는 코너에 매월 연재하는 칼럼(2018.1.1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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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

-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카카오톡, 밴드, 텔레그램.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를 침범한 녀석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60개가 넘는 카카오톡 모임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카카오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 문자나 게임, 택시 예약 서비스는 초기 버전이다. 금융 거래와 영화 예매까지 가능하며, ‘헤이 카카오’라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원하는 음악도 들려준다. 곧 정부 고지서나 통지서까지 카카오톡을 통해 등기로 배달된다. 이제 카카오톡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만능 플랫폼이 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그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혜택 받은 세대인 듯도 하다. 그러나 과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은 없는가. 지난 몇 년 사이 ‘카톡 감옥’에 갇힌 직장인들, ‘카톡’이 두려운 노동자들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휴일이나 업무시간 이외에도 연락을 받거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장 급한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 다음날 아침이나 월요일에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소통과 공유를 강조하고, 빠른 정보를 연결하는 수단이지만 직장인들에게 단톡방은 ‘족쇄’나 다름없다. 단톡방 메시지가 업무 관련 내용만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사생활도 많다. 직장에서 업무상 필요로 인해 그룹방(일명 단톡방)을 만들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을까. 업무보고와 지시 때문이라고 하면 거부할 사람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한다. 부서장의 썰렁한 메시지에 아무런 답을 달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도 승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수치도 확인된다. 서비스 노동자 3046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37.5%)이 퇴근 후 SNS, e메일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다. 1주일 평균 2.3회, 87분의 부가적 일을 하고 있는데 1년이면 무려 69.6시간이나 된다. 휴일에도 일일이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고, 퇴근 뒤까지 이어지는 업무지시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선을 허문 지 오래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이렇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나 ‘재택근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 이미 카톡에 갇힌 직장인들의 굴레는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조차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스마트 워크’도 앞다퉈 도입했다.

사실 원격근무(telework)는 ‘멀리서(tele)’ ‘일한다(work)’는 의미다. 1973년 미국에서 나온 신조어인데 45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카톡이나 e메일, 문자 등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기업들 스스로 규제 움직임도 보인다. 밤 10시 이후나 주말에 SNS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한 곳도 있고,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곳도 있다. 이미 유럽의 몇몇 기업은 업무시간 이외에 회사가 보낸 e메일이 도착할 경우 삭제하고 있다. 휴가기간에는 보낸 사람에게 ‘부재 중’이라는 정보와 함께 업무를 대체할 사람의 연락처를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업무종료 30분 이후 업무용 스마트폰은 e메일이 중지되고 다음날 근무시작 30분 전에 서비스가 된다.

최근 20대 국회에서도 퇴근 후 SNS 등을 활용한 업무지시 금지법이 3개나 제출된 바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긴박하고 꼭 필요한 경우’와 같은 단서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분명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퇴근 후 혹은 휴일에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카톡이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112041025&code=990100#csidxcc5dc5288f9f159b748459f8e7acd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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